한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뉴스도 보질 않았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인터넷 창을 열어보는 것 말고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 내렸습니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글로 옮겨보려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결국 지독한 상실감과 무력감뿐이었습니다.
'상실감'과 '무력감', 저 두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무게감이 이렇게 큰 것인 줄 이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아마도 '세월호' 사건의 유가족 분들이 받고 있을 심적 고통 역시 이로부터 기인하고 있을 것입니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된 분들은 물론이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는 가족들을 지척에 두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 기막힌 현실 앞에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극심한 불안감과 스트레스, 억장이 무너질 것 같은 답답함, 끝 모를 분노와 좌절감이 유가족 분들의 심장을 매분 매초 송곳으로 찌르고 있을 겁니다. 만약 지옥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면 바로 이 분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 분들에게 '힘내세요'라는 위로의 말조차 건내기가 무척 조심스러워 집니다. 눈 앞에서 사랑하는 자식과 가족이 죽어가고 있는데 저런 말이 무슨 힘이 될 것이며, 무슨 위로가 되겠습니까. 어쩌면 이같은 말은 저 분들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을 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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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으로 온 나라가 비통에 잠겨있습니다. 어디 우리나라 뿐일까요. 세계 곳곳에서 '세월호'의 침몰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도하면서 안타까움과 함께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한 소녀가수는 이번 주 있을 내한공연을 앞두고 이번 사고에 대한 애도의 의미로 공연수익금을 기부하겠다고 밝혔고, 며칠 전에는 미국프로야구 LA 다저스의 류현진 선수와 텍사스 레인져스의 추신수 선수는 물론이고 같은 팀 동료들도 안타까움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보편적 정서는 국적, 인종, 종교, 이념 등을 떠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파해야 할 때 함께 아파해 주고, 기뻐해야 할 때 함께 기뻐해 줍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본적인 인간의 정서마저 비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성과 인격마저 의심되는 이들의 몰지각한 행동 앞에 유가족들의 가슴은 하늘이 무너지듯 내려 앉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서울 서초갑•을 당협위원회는 지난 17일 시의원과 구의원 경선을 서초구청 대강당에서 예정대로 실시해서 빈축을 샀습니다. 또한 새누리당 세종시장 유한식 후보는 '음주 자제령'이 떨어진 지난 18일 시당 청년 당원들이 포함된 폭탄주 술자리에 참석했습니다. 비록 "술은 마시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세월호'의 대참사 앞에선 초라하고 궁색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그가 술을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정작 자신만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 한기호 최고의원은 '세월호' 침몰 사태에 대한 정부와 관련기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비난과 비판을 '색깔론'으로 물타기하려는 모습마저 보였습니다. 정부당국의 '우왕좌왕' 늑장 대처와 체계없는 재난대응체계가 '세월호'의 대참사를 부추겼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임에도 한기호 의원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유가족 앞에서 저따위 망언이 튀어나왔다면 물병이 아니라 몽둥이 찜질이라도 받아야 했을 겁니다.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정몽준 의원의 막내아들은 또 어떻습니까. 세상물정 모르는 이 치기어린 젊은이의 무모한 객기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졸지에 '미개한' 국민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합리적 판단을 내리기에는 이 젊은이가 살아온 환경은 절대 다수의 서민들이 살아온 그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이런 조건에서라면 이 젊은이가 올바른 가치관을 지닌 청년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인터넷 상에서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향해 입에 담을 수 없는 악담을 늘어 놓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을 하고 있는 일부 악플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모두는 인간이라면 해서는 안될 짓을 서스럼없이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로부터 혹 남아있을지 모르는 일말의 보편적 정서마저 들어내고 나면 과연 무엇이 남게 될까요. 정말이지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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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참으로 야속하게만 느껴집니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 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저는 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감정이입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꾸만 눈물이 흘러 내립니다. 아마도 자식을 키우고 있는 부모들의 마음은 모두 같을 겁니다. 문득 사고현장에 있던 어느 유가족 분이 "대한민국이 이것 밖에는 안돼?"라며 절규하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정말 우리는 이 정도 밖에 안되는 것일까요.
지금 우리가 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함께 슬퍼해주는 것 외에는 별로 없습니다. 함께 울어주고 기적을 염원해 주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진심어린 마음으로 위로하고 생존자들이 심리적 외상으로부터 하루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다가올 지방선거에서의 셈법을 계산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정신나간 색깔론을 제기하고, '미개한 국민' 따위의 헛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말하기 전에 (인간으로서) 우리가 해야 하는 최소한의 것들을 먼저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희생당한 분들과 그 유족들에게 대못을 박는 일이 더는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