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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치에서 ‘사태’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 단어가 지나치게 남용되어왔다는 사실만큼은 어린 시절부터 어렴풋하나마 알 수 있었다. 정치군인들이 획책한 쿠데타로 말미암아 수백 명의 무고한 양민들이 죽고 다친 천인공노할 만행조차도 ‘사태’로 뭉뚱그려 정의할 정도였으니. 비슷한 용법으로 ‘사변’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의 사용 빈도는 예전에 비해 확연히 줄어들었다. 이를테면 지금은 일부 노년층을 제외하고는 ‘6․25 사변’이라는 표현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세상은 확실히 좋아졌고, 사회는 역시나 착실히 진보해왔다. 그 덕택에 무수한 숫자의 인명이 죽어나가는 일들을 ‘사태’로 묘사해가며 그 의미를 애써 축소하는 광경을 최소한 21세기에 들어선 이후의 한국사회에서는 목격하기가 힘들어졌다. 설령 있더라고 올해 수많은 신용카드 사용자들을 놀라게 한 ‘개인정보 유출 사태’ 정도가 고작(?)이다.
그럼에도 신문지면과 방송화면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시끌벅적하다. 사태의 자리에 소동이 들어선 탓이다. 사태가 비극이라면, 소동은 희극이다. 단순한 희극을 뛰어넘어 웃고 나면 왠지 갑자기 슬퍼지고 마는 희비극.
내가 과문해서 확신을 가지고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대학로 무대에 올라간 연극들 중에서 1년 반 가까이 절찬리에 공연을 계속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면 아마도 흥행에 상당히 성공한 히트작임에 틀림없을 게다. 하지만 이번 연극은 관객의 열화와 같은 박수갈채 대신에 험악한 야유소리가 끊임없이 도처에서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장기공연을 강행한 것이 커다란 특징이라고 하겠다.
마침내 연극은 막을 내렸다. 문제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밀려온 허탈감이 가히 범국민적으로 확산됐다는 점이다. 사태가 되기에는 비장미가 모자랐지만, 사건으로 머물기에는 출연자들의 면면이 매우 쟁쟁해서다. 박근혜 대통령, 문재인 의원, 안철수 의원에 더해 김한길 대표, 황우여 대표, 그리고 ‘너나 잘해!'의 최경환 원내대표 등 여야 지도부가 골고루 망라한 이번 무공천 연극은 개그맨들로부터 “제발 우리 밥줄 넘보지 말라”는 풍자적 조롱을 오랫동안 받아온 한국정치가 화룡점정 격으로 내놓은 희대의 블랙 코미디였다.
물론 모든 연루자들을 동일한 무게로 비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공천 방침 번복 소동에서 제일 잘못이 큰 책임자를 꼽으라면 경제민주화 실현과 보편적 복지 시행에 뒤이어 기초자치단체 정당 무공천 관철 약속까지 뒤집음으로써 선거공약 파기만으로 해트트릭의 위업을 달성한 박근혜 대통령이 되어야만 마땅할 것이다. 아주 지독한 친박 성향의 인사들이 아니라면 박 대통령을 ‘신뢰와 원칙’의 정치인으로 부르는 것이 이제는 엄청 민망하게 느껴질 터.
박근혜 대통령의 양두구육만은 못할지언정 문재인 의원은 대통령 후보 시절의 대표적 공약 사항을 얼굴색조차 바꾸지 않고 내버렸다는 점에서 그가 기존에 자랑해온 신사 이미지를 계속 유지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 의원과 그의 열혈 지지자들이 무슨 핑계를 둘러대든 문재인 또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전형적 구태정치를 되풀이한 셈이다.
안철수는 억울하다. 나름 신의를 지키려고 노력했건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싸늘한 냉소와 보수언론과 진보매체가 합심해 가한 유례없는 일방적 이지메뿐인 이유에서이다. 그런데 안철수의 억울함에 대한 동정여론은 별달리 높거나 크지 않다. 그는 선의와 무지가 반반씩 섞인 맹목적 행동이 얼마나 치명적인 정치적 자충수가 되는지를 자기 스스로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소한 문제에 목숨을 걸은 후과이자 대가였다.
왜 인간은, 좀 더 범위를 좁히면 정치인은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다가 자업자득의 부메랑에 직격당하기 일쑤일까? 그 근본원인은 시대가 제기하는 진정으로 중차대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이 부족한 데 있다.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세 가지 커다란 위기는 생전의 김대중 대통령이 이미 몇 년 전에 명확하게 정리해낸 바가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 민생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가 그것이다.
기초선거 무공천이 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이 될 뻔한 사람, 그리고 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이 될 뻔한 사람의 간담을 두루 서늘하게 만든 인물 모두가 목숨 걸고 달려들 만큼 가치 있고 중차대한 시대적 과제인지는 솔직히 미지수이다. 정치인들이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동안 나라의 존립과 국민의 생존이 점점 더 위태로운 처지로 내몰리기 마련이기에. 사태가 사라진 곳을 은근슬쩍 소동이 차고앉아야 되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