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가라 하와이"
영화 '친구'에 등장하는 귀에 익은 대사다. 지난 12일과 13일 SNS에서는 새누리당의 김진태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청래 의원 사이에 저 낯익은 대사가 연상되는 설전이 오가며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먼저 포문을 연 쪽은 김진태 의원이었다. 그는 공안검사 출신답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무인기와 관련, 이것이
"북한의 소행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정청래 의원을 겨냥해 "미치도록 친북이 하고 싶다. 최고 존엄이 다스리는 주체의 나라에서 이런 짓을 할 일이 없다. 미치도록 대한민국이 싫다. 대한민국 정부가 하는 건 다 조작이다 - 정청래 생각, 너의 조국으로 가라 - 김진태 생각"이란 트윗을 날렸다.
이에 정청래 의원은
"김진태 의원, 미치도록 감방에 가고 싶나? 안식처 감방으로 보내주마. 깐죽대는 너의 입을 원망해라. 법대로 처리해 줄 테니. 너의 감옥으로 가거라"라는 글을 올림으로써 법적인 대응을 할 것임을 시사했다. 때 아닌 무인기 논란이 대한민국 정치의 헤묵은 이념논쟁으로 번져가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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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공안검사 출신의 고위공직자, 국회의원들을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막후 실세 김기춘 비서실장, 황교안 법무부장관, 새누리당 출신의 정형근 전 의원과 '대구 밤문화'로 유명한 주성영 전 의원도 공안검사 출신이고, 영화 변호인으로 다시 한번 주목을 받은 최병국 전 새누리당 의원 역시 유명한 공안검사 출신이었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역시 공안검사 출신인 것을 보면 공안검사야말로 출세를 위한 필수코스라 불리워도 무방할 정도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김진태 의원 역시 이 코스를 충실히 밟은 새누리당의 공안통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지난 해부터 언론에 노출된 공안통으로서의 그의 모습은 눈이 부실 정도다.
지난해 4월 25일 그는 국회대정부질문에서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고 했다"며 일부 야당의원들을
"종북성향 의원들"로 규정했다. 또 6월 17일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당시 국정원의 선거개입의혹사건을 수사한 진재선 주임검사의 공소장을 문제삼았다.
"공소장을 보면 과연 대한민국 검찰의 공소장인지 걱정됐는데 의문이 풀렸다. 주임검사는 서울대 법대 92학번으로 96년 서울대 부총학생회장을 지낸 PD계열 출신이다. 총학생회 부총학생회장에 운동권 출신, 그러니까 공소장이 이렇게 나오는 것이다" |
공안검사에게 색깔론은 마치 수학의 정석이요, 성문종합영어와 같은 반드시 마스터해야 할 교본이자 지침이다. 그들은 언제 어떻게 색깔론을 꺼내들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자들이다. 따라서 국정원의 선거개입의혹이라는 난관을
'운동권 출신 검사가 작성한 공소장'이란 색깔론으로 해쳐나가는 일은 이 자들에게는 땅짚고 헤엄치는 겪에 다름 아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공안검사 시절 정권과 체제유지를 위해 운동권 출신의 학생들을 솎아내던 자가 이제는 대한민국 국회에서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씁쓸한 장면을 지켜봐야만 한다. 수십년의 세월이 흘렸지만 장소만 바뀌었을뿐 위험한 사상에 휩싸여 불순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색출해야 한다는 강박이 여전히 그의 머리속을 지배하고 있다. 지고지순한 사랑도 변하는 세상인데, 그의 인식은 도무지 변할 줄을 모른다.
운동권 출신의 검사가 만든 공소장이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방해한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이 완고한 사내는 정부정책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합리적 의심,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정부여당의 독선에 대한 항의를 정권과 체제의 권위에 대한 위협과 도전으로 인식한다. 이런 자에게 정청래 의원의 발언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체제전복의 언어이자 도발행위와 같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동료의원을 향해
"(차라리) 너의 조국으로 가라"는 참으로 유치찬란하고 저급한 언사를 날릴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필자는 그의 발언 속에서 어떠한 합리적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불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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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의원이 미치도록 친북을 하고 싶은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나 그가 무인기 사건에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정 의원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과 관련해서 국방부와 정부의 대응과정에 석연치않는 점을 지적하는 국민들도 상당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라면 시민들은 언제든 국가정책과 국정운영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해명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것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국가라 불릴 수 없다.
그러나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민주주의 국가가 보장하는 시민의 권리를 색깔론으로 매도하고 억압하는 나라는 오직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이 자의 주장대로라면
<북한 추정 무인비행기, 한국에 위협이 되나>는 기사를 작성한 미국 CNN도 대한민국이 미치도록 싫은 종북세력에 포함시켜야만 한다. 과연 이 자가 미국 CNN을 상대로도 "너의 조국으로 가라"라며 호기롭게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치도록 친북이 하고 싶다. 최고 존엄이 다스리는 주체의 나라에서 이런 짓을 할 일이 없다. 미치도록 대한민국이 싫다. 대한민국 정부가 하는 건 다 조작이다 - 정청래 생각, 너의 조국으로 가라 - 김진태 생각"
"대한민국에서 하는 건 다 조작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정청래 의원이라 지칭하고 있지만 사실 이는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일반시민들까지 포함된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필자는 지금껏 누구도 "대한민국에서 하는 건 다 조작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 보지 못했다. 아마 그런 사람이 있다면 불평과 불만에 가득찬 반사회주의자이거나 김진태 의원의 말대로 진짜 친북·종북주의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청래 의원과 시민들이 지적하고 있는 본질은 이 정부와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의 문제를 의미하는 것임을 공안검사 출신의 이 고루한 사내가 알 턱이 없다.
우리는 이런 볼쌍사나운 추태가 1960~70년대가 아닌 2014년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 깊이 책임을 통감해야만 한다. 진작에 사라졌어야 할 구시대의 망령이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해야만 한다. 아울러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존엄과 빛나는 가치를 과연 누가 위협하고 있는가를 반드시 직시해야만 한다. 정권과 체제 그리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색깔론으로 덧칠하는 자들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활개를 치는 한,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 일은 요원한 일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