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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정극을 보게 되었다. 연극 구경을 자주 못 한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10여 년 전 연극 체험 단을 이끌고 대학로에서 ‘마당을 나온 암탉’을 관람한 후 이후 처음이다.
그때 정극 연극인들이 거리로 나와서 ‘개그맨들의 대학로 진출을 절대 반대한다.’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광경을 본 기억이 난다. 그 이후 대학로는 오랫동안 개그나 코미디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때문에 핑계 김에 연극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져 있었는데 다시 찾은 곳이 혜화동 로터리 건너 편, 명륜동에 있는 눈빛극장이다. 눈빛극장은 규모 300석의 중규모 극장인데 '상처꽃-울릉도 1974년'이라는 연극이 4월 2일 목요일부터 상연되고 있었다.
연극의 내용은 울릉도조작간첩단 사건으로 인해서 간첩의 누명을 쓴 사람들의 이야기다. 임 진택 감독은 [김근태기념치유센터] 개소식에서 ‘울릉도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들이 ‘인권의학연구소’에서 치유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듣게 됐고, 이들을 인터뷰해서 르뽀 형식으로 써낸 ‘울릉도 간첩단 조작사건’ 책도 전달받았다 한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한동안 주춤했던 연극 창작의 신명이 비로소 마구 일어나는 감정이 일어난 것이어서 이를 계기로 그동안 독재정부에 의해 자행되었던 수많은 조작간첩단 사건을 한데 녹여서 <서사치유연극>을 선보이기로 결심을 하게 됐단다.
[상처꽃-울릉도 1974년]은 총 59회 공연이 예정돼 있는 가운데 매회 각기 다른 까메오가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개막식 공연에는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숨’을 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함세웅 신부였고 6인의 가톨릭 신부를 비롯하여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 그리고 민주화에 공헌한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총 망라돼 있다. 오늘 관람한 이 연극의 11회 차 공연에는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이 출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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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11회 차 공연을 관람한 데는 마침 당시의 피해자이며 이 연극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전북대 이성희 교수가 부인과 함께 나왔고, 죽은 형을 대신하여 또 다른 피해자 형제가 나와 관객 인사를 하는 순서가 마련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까메오는 극의 서두에 판사로 등장하여 ‘울릉도 간첩단 사건’의 재심을 결정하는 판결을 내리는 역할이다. 주심 재판장의 망치소리를 신호로 극이 전개된다. 그럼 그 많던 조작간첩 피해자들은 누구로부터 어떻게 왜 당했으며 무엇이 그들을 더 외롭게 했는가. 이 연극 <상처꽃-울릉도 1974년>을 보는 동안에 그에 대한 진면목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당시의 피해자들은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남산으로 남영동으로 끌려간다. 그 순간부터 죄인이 되어 고문과 폭력에 파괴당하고 끝내는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면서 비극에 함몰된다. 이들의 가족은 가족대로 병들고 핍박받고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가운데 그 충격으로 병자가 되고 폐인이 되고 사망에 이르는 사람도 생긴다.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과 사망자들의 후손들은 국가를 상대로 재심청구를 하게 된다. 이들은 재판에 잘 대응하기위해서 생각하기도 싫은 당시의 상황을 되살려야 했다. 무섭고 싫지만 치유프로그램을 통하여 역할극을 통하여 당시의 상황과 고문의 순간을 기억해 낸다. 그리고 마침내 되살린 증언을 통해서 법정에서 피해자 증언을 하고 끝내는 무죄판결을 받아낸다.
참고로 <상처꽃-울릉도 1974년> 사건의 희생자는 모두 40여명이고 이중에서 3명은 사형을 당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17년, 15년, 10년, 5년 형을 각각 언도 받고 복역한다. 당시 전북대 학생처장이었던 이성희 교수도 피해자의 한 사람이다. 배를 부리는 선주, 주부, 재일동포 사업가를 형으로 둔 평범한 공무원 같은 이들이 간첩의 누명을 뒤집어쓰고 무너진다. 유신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라면 국민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마저 금지곡으로 묶고, 걸핏하면 조작간첩을 양산해서 공포정치를 일삼던 유신독재자들에 의해서 말이다.
헌데 유신의 망령은 현재 진행형이다. 함세웅 신부는 “억울한 형제자매들에 대한 사랑과 약자에 대한 관심이 바로 구원의 핵심이다”라고 말한다. “수많은 조작간첩사건은 억울한 몇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나치 시대를 산 독일의 에밀 구스타프 마틴 니묄러의 [시] ‘나는 침묵했습니다.’가 오늘날의 우리들의 양심을 찌른다.
마침 이 연극 [상처꽃-울릉도 1974년] 에서 재구성되어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대사로 인용됐다.
처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이었기 때문입니다.
중략....
그리고 어느 날부터 내 이웃들이 잡혀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하였습니다.왜냐하면,
나는 그들이 잡혀가는 것은뭔가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은 내 친구들이 잡혀갔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나는 침묵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 가족들이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그
러던 어느 날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내 주위에는 나를 위해
이야기해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박정례 : 기자/ 르뽀작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