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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근래 우리 정치권에 최대 화두로 대두된 바 있는 안철수 현상의 배경에는 그럴만한 충분한 근거가 자리하고 있다. 기실 그 이전에 문국현 현상이 태동되기도 했으나 미완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이를 논하기에 앞서 지난 15~18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투표율과 각 후보별 득표율을 살펴보는 것도 적잖이 유의미한 일이라 여긴다....
SNS 급속 보급과 전후 세대 감소 따른 개혁 지향성 증가 15대 대선 투표율의 최종 수치는 69.3%였다.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40.3%,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38.7%,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가 19.2%를 차지했다. 16대 대선 투표율은 70.8%를 보였다.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48.9%,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46.6%를 얻었다. 17대 대선 투표율은 63.1%로 역대 대통령 선거 가운데 가장 저조한 기록을 나타내며 마감됐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48.7%, 민주당 정영동 후보 26.1%, 무소속 이회창 후보 15.1%,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5.8%,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3%를 득표했다. 18대 대선 투표율은 75.8%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51.6%,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48%로 당락의 희비가 엇갈렸다.
이를 보다 세심히 짚어 보자. 15대 대선은 김대중 후보가 보수 정객인 김종필 자민당 총재의 협력 그리고 이인제 후보가 보수표를 잠식하는 가운데 치룬 선거였음에도 아주 근소한 차이로 진보 진영이 승리하게 된다. 이 당시만해도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보수성이 강했음을 입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후 양자 대결로 치루어진 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승리를 거머쥔다. 보수 세력과의 연합도 없었다. 그렇다고 보수 후보가 선거에 나와서 상대 후보의 표를 잠식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 후보의 승리로 귀결됐다. 다자 구도로 펼쳐진 17대 대선에서는 정동영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22% 이상 득표율 차이를 보이며 처참한 패배를 당했다. 보수 정객인 이회창 후보가 15% 이상 득표했음을 감안할 때 이는 사실상 진보 진영의 몰락에 가까운 패퇴다.
진보 진영 후보군이었던 문국현, 권영길 후보의 합산 득표율 9% 가량을 정동영 후보가 그대로 흡수한다고 가정할지라도, 이는 이명박 후보와의 현격한 격차를 좁히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수치다. 더욱이 보수 정객인 이회창 후보가 잠식한 득표율까지 감안한다면 진보 진영으로서는 처참한 결과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18대 대선에서는 진보와 보수 세력 간의 맞대결로 펼쳐졌다. 결과는 비교적 근소한 차이로 박근혜 후보가 승리한다. 이는 정부 조직이 대대적으로 개입된 관권 부정선거였음을 염두에 둘 때, 사실상 진보 진영의 승리로 해석할 수 있다. SNS 등의 급속한 보급, 그리고 전후 세대가 날로 줄면서 그만큼 우리 사회의 개혁성이 강화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참여정부의 개혁 및 민생 기만에 대한 심판
여기서 거듭 17대 대선 결과에 대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왜 투표율이 역대 대통령 선거 가운데 가장 낮았는지, 아울러 사상 최악의 표차로 보수 진영 후보에게 패했는지, 그에 대한 진보 진영의 뼈를 깎는 자성이 요구된다. 이를 명확히 파악해서 현장 정치에 적극 반영할 수 있어야만, 향후 대선에서 진보 진영의 승리를 가늠할 수 있겠기에 그렇다.
17대 대선 결과는 사실상 노무현 정권 5년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했다. 참여정부의 거듭되는 우향우 정책으로 인한 지지층의 거듭되는 이탈은 정권 말기 지지율이 한자릿수까지 떨어지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그러한 가운데 치루어진 대선에서 진보 진영의 승리를 기대하기란 매우 난감한 전망이었다. 무엇보다도 실망한 주된 유권층이 적잖이 투표장을 찾지 않았던 점이 가장 큰 패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아울러 일부 표심은 분풀이 성격의 역선택을 했을 개연성도 다분하다. 정당 충성도가 옅은 중도층의 민심 이반 또한 컸다. 어느 누가 후보로 나서도 승리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말로는 개혁과 사회정의 그리고 서민을 외치면서도 정작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못한 측면이 강했다. 오히려 정책의 잦은 혼선과 오락가락으로 인해 우리사회의 건강한 미래상마저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만들었다.
실제 참여정부 당시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통계를 작성한 이래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최대치를 기록했다. 성장률도 OECD 평균을 밑돌았으며, 수출마저 한 자릿수를 보였다. 내수경기 진작을 가늠할 수 있는 소비자 기대지수도 낮게 나타났으며, 기업의 투자의욕과 관련된 경기실사지수 또한 악화됐다. 여기에 각종 명목의 세금 인상은 근로자의 소득증가에 비해 무려 4배나 늘었다. 그렇다고 국민 일반에 대한 의료 및 서비스 질이 크게 개선된 것도 거의 없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가계의 소비지출은 더욱 줄게 되고 빈곤층의 고통 또한 가중되었다. 특수층 일부를 제외한 많은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맸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가구의 32% 가량이 적자 가구로 나타났다. 최하위 소득계층의 참혹한 생활상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능히 가늠할 수 있다.
기실 참여정부 태동과 함께 무섭게 전개된 대북정책 특검은 노무현 정권의 불운한 미래를 예고하는 서막이었다. 이에 더해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평균 3배 가량 오른 수도권 아파트값은 가히 충격적인 기록으로 남아 있다. 아파트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부자에게는 한없는 축복이었으나, 집없는 서민에게는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였다. 심각한 규모의 청년실업과 살인적 노동 정책은 사회 불안의 또 다른 축이었다. 가장 많은 노동자 구속, 가장 많은 노동자 해고, 가장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함으로서 내수 시장마저 더욱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미 FTA 추진, 철도민영화 1단계 완료, 의료사영화 추진, 대추리 살인진압, 부안 몽둥이 진압, 이라크 2차 파병, 인터넷 종량제 미수 등을 비롯해 숱한 우편향 정책은 곧장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 여당에 대한 개혁 대중의 심각한 불신으로 귀착됐다. 개혁과 서민대중을 참칭하면서도 정작 실천에 있어서는 오히려 개혁을 능멸하고 또 서민 등골 뽑는 정책으로 일관됐다. 참여정부를 일컬어 인구 사이에서 삼성 공화국이란 비아냥으로 회자되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렇듯 온갖 사이비 개혁놀이에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다수 국민은 끝모를 절망 속으로 침몰했다. 폭발일로의 원성 또한 차곡차곡 쌓여 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집권당 정동영 후보의 입에서 나오는 그 어떤 말도 모두가 공허하게만 들릴 뿐이었다. 선거 전략 또한 민주와 반민주 식의 닳고 낡아빠진 구도로 몰고 갔으니 그저 세간의 비웃음만 불러 올 따름이었다. 도대체 그들과 저들이 어떻게 구별되며 또 무엇이 다른지 도통 구분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오로지 권력 다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비춰졌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크고 작은 도덕적 하자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선에서 압승을 거둔 것은 어쩌면 당연시 읽히는 대목이다. 이후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제반 사정은 더욱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그런데 민주당 또한 이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기는커녕 오히려 끝모를 무기력증을 앓았다.
민주당의 우편향과 지지부진이 초래한 안철수 현상
문국현 현상이 정치권에 드러난 것도 실상 친노 세력에 대한 반동 심리였다. 그러나 이는 찻잔 속의 미풍으로 그치고 말았다. 비록 초라한 미완으로 끝났지만 민주당 또한 여전히 위기 상황이었다. 이에 친노 세력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상쇄할 요량으로 비노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인 김한길을 대표로 세웠으나, 그 또한 오히려 우편향을 더 강화했다. 정치 쇄신과 민주당의 정체성 확립을 이루기는커녕 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