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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김한길이 ‘새정치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정치’라는 대의명분을 걸고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이 전격적인 합당을 선언하였다. 전국을 돌면서 국민 앞에 그 약속 말을 걸어 놓고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한 지 한 달여 만에, 창당정신의 존치여부를 여론조사에 붙여 결국 폐기하기로 함으로써, 새정치민주연합 창당정신은 사실상 폐기되었다. 따라서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은 당의 정신이 상실된 채 당의 형체만 유지되는 참으로 기묘한 정당이다.
당원투표의 경우 기초선거에 '공천해야 한다'는 견해가 57.14%, '공천하지 않아야 한다'(42.86%)였으나, 국민여론조사에서는 오히려 '공천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이 50.25%로, '공천해야 한다'는 의견(49.75%)을 약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이전에 당에서 비밀리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여론은 무공천 지지가 약 20% 이상 높았기 때문에 무공천으로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해서, 여론조사 방식으로 최종 결정했다고 변명을 하고는 있으나, 우리나라의 여론조사는 여론조사 기관과 방식에 따라 들쭉날쭉하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안-김 두 대표가 여론조사 방식을 결정한 순간 이미 합당의 대의명분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왜 안-김 양 대표는 두 사람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할지도 모를 여론조사 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을까?
1. 바지 사장 김한길과 회사의 운명을 결정한 진짜 사장 안철수
현재의 민주당은 철저히 계파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지난 민주당 대표 선거 당시 친노 후보 이용섭에 맞섰던 김한길 캠프의 인적 구성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정동영과 손학규는 당내 천적 관계이기 때문에 양 세력이 연합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했지만, 패거리 정치로 총선, 대선 실패를 자초한 친노로 부터 당권을 찾아와야 한다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다. 양 세력이 연합하지 않고도 단일 후보를 내는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에 가장 합당한 후보가 그전 당 대표 선거에서 아깝게 분패한 김한길이었다.
김한길에게는 당 대표 선거를 치룰 만한 독자 조직이 없었다. 그가 당 대표 선거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은 양 계파의 조직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계파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결합되어 김한길 당 대표 체제가 탄생하였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김한길 의원 보좌관의 대부분이 손학규가 의원시절 데리고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김한길은 손학규의 참모들을 데리고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더 재미있는 점은 김한길 캠프의 조직 구성을 보면 정동영계, 손학규계, 김두관계 등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캠프를 옥상옥 역할을 한 김한길 의원실에서 총괄했기 때문에 당 대표 선거운동을 사실상 손학규계가 주도했다고 보아야 한다.
선거 후 논공행상에서 사무부총장 3인이 임명되었는데, 모두 정동영계였고, 손학규계는 당 대표 비서실 1, 2차장에 임명되었다. 얼핏 보아서는 정동영계가 득세한 것으로 보이지만, 당 대표의 손발 노릇은 손학규계가 하고 있다. 당 고위직의 경우는 정동영계 의원들이 많다고 본다.
이처럼 김한길은 명색이 당 대표로 선출되기는 했지만, 핵심 요직에 단한명의 자기 사람도 없을 정도로 실권 없는 당 대표이다. 말 그대로 손학규, 정동영, 김두관의 묵계로 임시방편에 의해 잠시 앉혀 놓은 바지 당 대표인 셈이다.
한쪽으로는 친노에게 휘둘림 당하고, 또 한편으로는 실제 사장들 눈치를 봐야하는 신세가 된 김한길의 운신이 얼마나 힘들었겠는지를 이로써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탈출구가 필요했다. 거기에서 찾아낸 묘수가 안철수 신당과의 합당이었다.
민주당 측은 새정치연합의 출범과 더불어 전국 여러 광역, 기초선거에서 단 한 석의 당선자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원래 민주당의 오랜 노림수가, 모든 선거에서 민주당의 당선 가능 지지율을 흡수해 버리는 블랙홀 안철수를 무슨 조건을 제시하고라도 민주당에 흡수를 해야 만이 차기 총선이든, 대선이든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친노나 비노나 조건에 구애 받지 않고 안철수 신당과의 합당을 대환영하였다.
자기 조직이 없는 김한길에게도 안철수는 큰 기회였다. 양당 합당 전, 민주당 당원들의 안철수 지지율은 여러 여론조사를 종합해 볼 때, 대략 35~40% 정도였다. 거기에 안철수 자신의 고유한 무당파, 보수층 지지자들 까지 계산에 넣었을 때, 안철수와 그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한, 야권 최대 조직을 공동운영한다는 것을 뜻했다. 안철수 이후까지도 생각했을 수 있다.
새정치연합 창당선언은 했으나, 실제 창당하는 과정에서 인물 영입난과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던 안철수에게도 통합은 꿀 같은 유혹이었다. 더군다나 의원수 126석을 가진 제일 야당 대표직과 더불어 5대5 지분, 그리고 당의 정강정책 결정에서의 전권 까지 부여 받자, 당 대표가 되면 당에서 전권을 받을 걸로 착각하고서 합당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는 김한길이 바지 대표라는 사실을 몰랐다. 기가 막힐 일이다.
일단 당 대표가 되자, 민주당의 실권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재인이 무공천 원칙을 여론에 물어봐야 한다고 건들었다. 정동영은 무공천은 지방선거를 망치고, 당을 식물정당으로 만드는 일이라면서 흔들어 댔다. 정동영의 수족과도 같았던 정청래는 소총수를 자임하며 끊임없이 안철수-김한길을 향해 총을 쏘아댔다. 정청래는 친노라기 보다는 정동영 조직을 총괄했던 핵심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 정동영과 전주고 동기동창이고, 서울대 동창이며, MBC 입사동기인 신경민도 합세했다. 정동영 자신의 경우도, 그 자신이 김한길과 오랜 정치적 동반자 사이인데, 왜 그리 흔들어 댔는지 모르겠다. 정치권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말이 실감이 간다.
사실 안철수만 낙마하면 문재인에게도, 손학규에게도, 정동영에게도 차기 대권이 그만큼 더 가까워져 오는 것이다. 안철수측이 민주당의 이런 내부사정에 대한 사전 정보가 조금만 있었더라도 합당은 안했을 것이다. 비밀협상은 상대방의 모든 정보와 카드를 요모조모 살피고 나서 하는 것이다.
2. 안철수는 일단 신당 창당을 했어야 했다.
안철수는 싱당 창당을 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여러 달 동안을 꾸준히 노력해 왔다. 신당 지지율이 한때 새누리당을 위협한 적도 있었다. 안철수가 새정치연합을 창당했을 경우를 가정해서 예상해 보면, 광주시장, 전남, 북 도지사 선거에서는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의 혈전이 예상되고, 부산, 경기에서는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의 단일화를 통해 오거돈, 김상돈 후보가 출마해서, 접전을 벌일 것이고, 서울의 경우는 어찌됐든 박원순 후보가 단일 후보로 결정되었을 것이며, 기타 지역에서도 주고받기에 의한 합종연횡이 이뤄졌을 것이다.
이러한 구도였다면 새정치연합으로서도 전혀 손해될 게 없었으며, 당내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기초선거 공천을 하는 경우가 왔더라도, 이미 민주당이 기초선거 공천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여론의 집중공격 대상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지방선거를 치루면서 완전한 당의 형태를 구비했더라면, 합류하는 인사들이 점증했을 것이고, 만약의 경우에 민주당과 합당을 하는 경우가 오더라도, 모든 상황에 훨씬 능동적이고도, 합리적으로 대응해 갔을 것이다. 신당 창당이 거의 완료된 시점에, 안철수측에 어떤 큰 어려움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창당을 완료하고 나서, 지지자들을 완전히 자기 사람들로 만든 후에, 당원들의 의사를 물어 합당을 하더라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안철수는, 신당창당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던 지지자들의 심정은 전혀 고려치도 않고, 전격적으로 합당을 선언함으로써, 기존 지지층의 대거 이반현상을 가져 왔는데, 바로 이점이 신당 지지율이 답보 상태를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