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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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들어가서 배운 '임을 위한 행진곡' 의 가사입니다. 제 대학 1학년 새내기는 계속되는 충격적인 진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나마 재수 시절을 완충기로 해서 교회 선배들과의 독서토론이나 사회적 현실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 기르기가 미리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새내기때 만났던 그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과 그 뒤에 숨어 있었던 의미들은 저에게 그때까지 제가 갖고 있던 세계관들을 버리거나 혹은 적어도 수정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선배들과 술 마시고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저는 깊은 충격이 만들어낸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습니다. 광주의 참상의 실상을 알게 된 것도 학회실과 총학생회실에 굴러다니다시피 하던, 가톨릭 광주교구에서 발행된 민주항쟁 화보집이었습니다. 총을 맞고 얼굴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시피 했던, 혹은 얼굴의 절반이 날아가 버린 시신들의 참혹한 모습을 보면서 왜 광주의 죄없는 사람들이 저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가야 했는가를 궁금해 했었던 기억이 아직 새롭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민중들에겐 5.17 계엄 전국 확대에 대한 반발, 군부에 대한 반발, 그리고 야당 지도자 탄압 등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서의 운동의 폭발이었지만, 군부의 입장에서는 도시 하나를 찍어 눌러 '본보기'를 만들어 과거 부마항쟁과 같은 일이 일어나 그들의 권력을 위협하는 것을 보지 않겠다는 권력 야욕의 의지가 전두환의 신군부로 하여금 광주에 대한 대대적 진압을 하도록 만든 것임을 알게 되고 나서 받았던 충격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이른바 '서울의 봄'이 신군부의 탄압으로 꺾인 것은 이미 그 전해 12월에 발생한 쿠데타 상황을 그때까지 질질 끌고 온 신군부의 모습을 보았을 때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유신 체제를 지탱해 주던 권력인 중앙정보부와 대통령경호실이라는 두 축이 무너지고 나서 남은 보안사령부의 독주는 이미 박정희가 잘못 끼워 놓은 단추였고, 전두환은 권력에 대한 야욕을 감추지도 않았습니다. 그에겐 뭔가 상황을 반전시킬 '화끈한 한 판'이 필요했고, 그의 욕망에 따라 희생된 건 바로 광주였던 것이지요.
그때 조선일보의 기사를 굳이 다시 꺼내보지는 맙시다. 공수부대원들이 죄없는 광주의 시민들을 학살하는 동안, 그리고 그 진압이 끝났을 때, 그들이 보였던 그 행태는 왜 지금도 그들이 욕먹고 있는가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개로서 그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니까요.
그러나 광주 역시 지금까지 해 보지 못했던 경험을 했습니다. 말 그대로 권력으로부터 해방된 세상을 만들어 보았던 것이지요.며칠간의 해방구로서의 경험은 광주 시민들의 시민의식을 자각시키고 그들이 만들 수 있는 세상에 대해 고민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방구에서 희망을 본 이들은 자신들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 해방구의 깃발을 사수하기 위해 끝까지 도청에 남았고, 그렇게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지킨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희망입니다. 해방구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 희망을 믿게 됩니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 인식되는 프랑스란 나라가 성립된 배경엔, 그들이 쌓아온 바리케이드의 경험, 즉 '반란의 경험'들이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 시민사회의 일원들은 '국가가 압제를 할 때, 거기에 맞서 봉기하는 것은 시민들의 권리이자 의무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오늘날 광주항쟁 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하려고 막아서는 사람들은, 바로 이 '희망'을 두려워하는 겁니다. 이 노래 속에 끓어오르는 해방구로의 열망.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 시민들이 각성해서 '우리도 봉기할 수 있다. 아니, 더 나아가 잘못된 것에 대해 봉기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는 것을 차단하고 싶은 겁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그저 복종입니다. 시민사회로서의 권리 같은 것을 갖는 시민들은 그들에겐 두려운 존재입니다. 바로 그 두려움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 그들은 광주 민주화 항쟁 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지는 것을 막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가 무서우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지배세력이 가진 공포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들이 원래 정통성을 갖고 집권한 세력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그리고 그들의 집권을 위해 얼마나 많은 죄없는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에.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다시 갖고 나와 시민을 억누르는 그 유신의 망령이 시민들의 각성 앞에서는 얼마나 힘없는 너울 같은 존재인가를 알기에 그들은 우리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그 행사장에서 부르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그게 본질입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