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페라는 비극(悲劇)의 미학(美學)이다. 장중한 클래식 선율과 함께 전개되는 ‘노래로 하는 연극’이라서인지 아무래도 해피엔딩보다는 비극이 분위기에 더 잘 어울리기에 오페라는 비극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더 많은것 같다.
한편 오페라 매니아들은 ‘오페라에도 알고보면 막장 설정이 많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기도 한다. 하긴 그러고보면 세계적으로 꽤 알려진 ‘유명 오페라’중에도 내용을 보면 요즘식의 ‘막장 드라마’라 할 수 있는 설정 적잖이 찾아볼수 있다. 가령 1900년대 초엽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감안해야겠지만, 푸치니의 ‘나비부인’의 경우 나이 40의 유부남인 미국인 핑커톤이 15세된 어린 일본인 게이샤를 유혹 함께 결혼해 살게되는 내용이고, 한때 모 광고 배경음악으로 쓰여진 ‘대장간의 합창’으로 유명한 ‘일 트로바토레’는 한 여자를 두고 신분이 전혀 다른 두 남자가 삼각관계가 되는데, 끝에가서 이 둘이 사실은 어릴때 헤어진 친형제지간이었음이 밝혀지기도 한다. 또 ‘돈 카를로스’ 같은 이야기도 있는가하면, 심지어 ‘피가로의 결혼’ 같은 경우엔 주인공인 피가로를 유혹 강제결혼을 하려는 나이든 하녀가 나오는데 나중에 정작 피가로가 이 하녀의 어릴때 잃어버린 친 아들임이 밝혀지는 황당설정도 있다.
오페라에 막장설정이 많은것은 배경이 대개 중세유럽이거나 또는 소재가 유럽의 고대 전설이나 신화(그리스,로마신화를 비롯)등에서 따온것이 많은데서 기인된듯 하다. 하지만 그럴지언정 오페라를 보면서 이것을 요즘의 흔한 그 무슨 ‘막장드라마’처럼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을것이다. 오페라 자체가 주는 장중한 분위기 탓이기도 할 것이고, 작품 자체에서 우러나는 감동이나 슬픔 같은것도 오페라 소재의 ‘막장성’을 어느정도 완화시켜주는 기능을 하는듯 하다. 어떤 의미에선 ‘약간의 막장 극적인 전개 장중한 비극’이 오페라의 감동을 이루는 진정한 3요소라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초창기 ‘창작오페라’가 소재를 ‘춘향전’ 같은 고전이나 ‘시집가는날’ 같은 해피엔딩 희곡을 택하곤 했던것은 오페라의 진정한 묘미를 몰랐던데서 나온 판단착오였던것 같다. 서양 오페라가 대개 비극인 반면 우리나라 창극이나 판소리 소재는 대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흥부놀부전’ 조차도 나중엔 결국 흥부가 형님 놀부를 용서하고 다같이 덩실덩실 춤추며 끝나게 되지 않는가. 오페라적 감동을 제대로 우러나게 하려거든 ‘비극적 소재’중에서 창작오페라를 만들 생각을 했어야하는 것인데, 해피엔딩이 많은 우리나라 고전이나 창극등에서 ‘오페라 소재’를 선택한것은 확실히 실수였던것 같다.
개인적으로 ‘창작 오페라’ 소재로 괜찮은 이야기를 추천한다면 ‘장희빈’이다. 장희빈이야말로 ‘약간의 막장 극적인 반전 장중한 비극’ 모두를 갖출수 있는 가장 절묘한 소재 아닌가. 이렇게 오페라의 비극과 감동을 제대로 우러나게 할수있는 소재가 역사속에 버젓이 존재함에도 ‘춘향전’이니 ‘시집가는날’이니 하는 작품을 초창기 창작오페라 소재로 사용하곤 했던것은 분명 아쉬움이다. (얼마전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북한의 ‘장성택 처형’ 사건도 잘만 만들면 한편의 ‘장중한 비극’ 오페라 소재가 될 수도 있다.)
몇 년전 꽤 논란이 많았던 막장드라마로 인해 이름을 날린 모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도 알고보면 막장인데, 왜 내 작품만 갖고 그러냐 ?”고. 뭐 그와같은 항변 전혀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햄릿’도 따지고보면 동생이 형을 죽이고 그 아내와 결혼하는데서 이야기가 시작되어, 주인공 햄릿은 바로 그 숙부를 살해하게되고, 뿐만 아니라 여자친구 오필리어의 아버지도 살해하고 오빠하고도 칼을 겨누게 된다. 소위 막장성(?)만 따지고 본다면 막장도 이런 막장 스토리가 있을수 없을것이다.
하지만 ‘햄릿’을 막장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그 작품의 깊이 때문이다. 만약 해당 인터뷰의 작가가 정말 햄릿을 ‘막장드라마’라 생각하고 있다면, 그 작가는 진짜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햄릿에는 그 장중한 비극에서 느껴지는 감동과 슬픔,아픔이 있다. 스토리의 공감대와 연극을 지켜보며 느껴지는 삶과 인생의 그 무엇들이 있다. 그래서 우린 햄릿의 막이 내리면 다 함께 감동하여 박수를 치게되는것이다. 그것이 ‘막장 드라마’와 명작의 차이다.
오페라에도 따지고보면 ‘막장’ 설정이 많다지만, 오페라에서의 막장은 알고보면 ‘장중한 비극’을 이끌어내기 위해 장치해 놓는 약간의 ‘양념’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는 단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온갖 소위 ‘막장설정’을 있는대로 동원하기 때문에 그게 문제인것이다. 뿐만 아니다. 심지어 이른바 ‘막장 소재’로 시청률에서 톡톡히 재미를 본 설정이 있으면, 마치 복사기로 유인물 인쇄해내듯이 너도나도 그와같은 비슷한 ‘막장설정’ 드라마를 수없이 만들어낸다. (예를 들자면 어릴때 아이가 뒤바뀌는 ‘출생의 비밀’이라던가 한 형제나 자매가 한 사람을 가운데 두고 벌이는 삼각관계라던가 혹은 어릴때 잃어버린 딸이 며느리가 될 뻔하는 설정 등) 그래서 막장이라고 하는것이다.
어떤이는 그런말을 하기도 했다. “만약 ‘백년의 유산’이나 ‘아내의 유혹’ 같은 막장 드라마로 유명했던 우리나라 작품을 갖고 누군가 시치미 뚝 떼고 오페라로 각색한다면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낼수 있을것.”이라고.
황당하겠지만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아니,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라 ‘매우 가능한 이야기’다. ‘백년의 유산’이나 ‘아내의 유혹’ 같은 드라마로 오페라를 만들자는 소리를 황당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50회,100회짜리 장편의 주말극,일일극을 대체 무슨수로 불과 3-4막 정도의 오페라로 만들 수 있겠나 하는 단순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가능하다. 오페라의 진정한 묘미는 ‘비장미(悲壯美)’와 함께 ‘함축미’에 있기 때문이다.
‘백년의 유산’이 되었든 ‘아내의 유혹’이 되었든 또 다른 장편 드라마이든간에 해당 작품의 중심 테마와 등장인물간의 갈등구도의 핵심적인 요소를 4막의 오페라안에 잘만 축약해서 뽑아내 각색만 한다면 이런 ‘막장드라마’로도 그런대로 괜찮은 ‘오페라’ 작품을 만들어 내는것은 어느정도 가능하다. 다만 이것이 정히 가능하려면 저와같은 ‘막장드라마’들이 갖고있는 핵심테마와 갈등요소를 오페라의 비장미와 함축미로 제대로 담아낼수 있는 작가가 필요할 것이다. 그만한 인재만 한국땅에 있다면 충분히 그와같은 드라마들도 한편의 제대로 된 오페라로 만들어낼수 있다.
막장 드라마가 욕을 먹는 이유는 단지 시청률을 위해 지나치게 극단적인 갈등과 공감대를 느끼기 힘든 설정, 수도없이 반복해서 우려내는 출생의 비밀이나 엽기적인 애정관계, 가족관계(예를 들어 어릴때 잃어버린 딸이 며느리가 될 뻔 한다던가) 이런 보기 불편하고 공감대도 느껴지지 않는 그러한 요소들 때문에 욕을 먹는것이다. 헌데 이런 막장 드라마들을 갖고 어떤어떤 고전이나 명작을 들먹이며 ‘그런 작품도 알고보면 막장 설정이 많소’ 이런식으로 변명을 해대는것은 그야말로 자신들이 만든 드라마가 왜 욕을 먹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데서 나오는 무지와 안일한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막장 드라마와 명작의 차이는 한마디로 감동과 공감대의 차이다. ‘오페라도 알고보면 막장이 많다’지만 오페라의 막장적 요소는 알고보면 장중한 비극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살짝 첨가한 양념과도 같은 존재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는 오직 시청률을 위해 그야말로 ‘막장을 위한 막장’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비난을 받게 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