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작년 박근혜 정부와 지자체, 종편, 일베 등으로부터 참기 힘든 수난과 수모를 겪어야 했다. 국가보훈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리는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했고, 경기도는 자체 제작한 공무원 교재인 <경기도 현대사>를 통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내용을 사실과 다르게 기록함으로써 논란에 불을 붙였다. 당시 김문수 도지사는 "기존의 현대사 책들이 다소 패배주의가 묻어나는 반면 이 책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있어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아주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곳곳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오류와 왜곡이 발견되는 이 책에서 자부심을 느낀다는 그가, 한 때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이 매우 낯설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종편은 아예 작정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날조했다. 당시 'TV조선'과 '채널A'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허위사실을 여과없이 방송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훼손시키고 전두환 신군부의 국기문란 범죄행위를 희석시키려는 이 악의적인 역사왜곡에 국민들은 전율할 수 밖에 없었다.
일베 역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행열에 적극 가담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와 유족들은 마구잡이로 투척되는 이들의 언어폭력에 가슴을 쥐어 뜯어야만 했다. 자신들이 영웅시하는 살인마 전두환이 총칼로 시민들을 학살했던 것처럼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자와 유족들을 향해 인간이라면 해서는 안되는 말들을 무차별 난사했다. 이처럼 위로는 대한민국 정부에서부터 아래로는 일베에 이르기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축소 왜곡하려는 시도가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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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올해 역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수난과 시련을 겪어야 할 듯 보인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를 퇴색시키려는 움직임이 박근혜 정부의 주도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34주년을 한 달여 앞둔 지난 8일 정홍원 국무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에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그 이유를 물으니 '국론분열' 때문이라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과 '국론분열' 사이에 도대체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인지 필자는 도무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날 정 총리의 발언에서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정 총리는 '국론분열'을 언급하며 한쪽에서 워낙 '강한 반대 여론'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그 반대 여론을 주도하는 집단군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이를 조장하는 주체가 바로 박근혜 정부다.
지난해 국회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지정 촉구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지난해 7월 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 "기념곡 지정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이후 돌변한다. 피일차일 미루며 유보하더니 결국 1년 전의 입장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러면서 물밑으로는 정 총리가 말한 '강한 반대 여론'을 만들어내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국가보훈처는 국회의 결의안 촉구 후속조치에 대한 질의 답변에서 기념곡 지정을 반대하는 14개 단체를 공개했다. 이 단체들에는 광복회, 재향군인회, 상이군경회, 전몰군경유족회, 6•25 참전유공자회 등이 포함되어 있다. 모두 국가보훈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이와 잇몸의 관계에 있는 관변단체들이다. 결국 정 총리가 기념곡 지정을 유보하게 된 이유로 내세운 '강한 반대 의견'은 국가보훈처의 의견이었고, '국론분열' 역시 국가보훈처가 그 진원지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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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과 의미를 폄하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박승춘 현 국가보훈처장은 이명박 정부 때 임명되었다. 박근혜 대통령과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캠프에서 활동하며 인연을 맺었고, 새정부의 보훈처장으로 연임되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까지 그가 보훈처장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전형적인 박정희 추종자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박정희를 찬양하는 DVD를 유포하기도 했고, 2011년 12월 광복회 워크샵에서는 공무원 신분임을 망각하고 "이만큼 살게 된 것은 모두 박정희의 공입니다. 누구를 뽑아야 할 지 알지요?"라며 노골적으로 박근혜 후보의 편을 들기도 했다. 이는 명백하게 공무원의 선거개입을 금지하는 관련법률을 위반한 것이다. 그는 "민주화운동은 곧 종북활동"의 다른 이름이라고 믿고 있는 자다. 따라서 이처럼 편향된 인식에 휩싸여있는 그가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하하는 것은 어찌보며 당연한 일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전까지 대통령이 참석하던 국가적 행사였던 5•18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에둘러 그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국가보훈처의 주도 아래 아주 노골적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 유보와 제창을 거부하면서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가치와 의미를 폄하하고 축소시키려 하고 있다.
오늘 글을 포스팅하면서 필자는 한가지 확신이 생겼다. 대한민국의 '국론분열'을 부추기는 세력은 바로 '국민통합'을 부르짖던 박근혜 정부였다. 이 정부의 위선과 기만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착찹함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거친 모래를 씹으면 이런 기분일까?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