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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거주하는 워싱턴주의 와인 판매량이 큰 폭으로 늘어났습니다. 시애틀 타임즈는 4월 5일자에 와인칼럼니스트이며 최근 그레이트 노스웨스트 와인으로 이름을 바꾼 와인 프레스 노스웨스트 잡지의 발행인인 앤디 퍼듀가 쓴 칼럼을 통해 이같은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워싱턴주의 와인 판매량은 무려 80억 달러이며 세계적인 명성까지도 얻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특히 실력 있는 와인메이커들도 늘어난데다, 와인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면서 워싱턴 와인은 붐을 이루기 시작했고, 점점 이름을 알려가던 워싱턴 와인은 콜럼비아 크레스트의 리저브 카버네 소비뇽을 와인스펙테이터 선정 세계 최고 와인으로 알리기도 했었습니다. 아래 시애틀 타임즈의 기사는 샤토 생 미셸, 콜럼비아 크레스트, 스노퀄미 등 워싱턴주 와인들은 물론 빌라 마운트 에덴 등 비교적 잘 알려진 레이블들을 갖고 있는 생 미셸 와인의 테드 베슬러 회장과의 인터뷰도 싣고 있습니다.
원래 카페나 블로그를 통해 워싱턴 와인을 소개하는 데 나름 앞장서 왔다고 생각하는 제 자신으로서는 반가운 기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워싱턴 와인 산업은 캘리포니아의 엄청난 규모에 대면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긴 캘리포니아 주 하나만을 떼어놓고 봐도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에 이어 세계 전체에서 와인 생산량 4위이니, 그 규모는 엄청나다고 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주 와인은 계속해 약진해 왔습니다.
와인 산업이 특별한 이유는 이게 요즘 각광받는 이른바 6차산업이라는 데 있을 것입니다. 6차 산업이라는 말은 같은 지역에서 1차, 2차, 3차 산업이 모두 한번에 이뤄진다는 뜻이라는데, 1=2=3=6, 그리고 1x2x3=6 이라서 6차 산업이라고 불린다는군요. 예를 들어, 와인 산업은 일단 포도를 재배해야 하므로 1차산업의 범주이나, 이것을 포도주로 가공하면 그건 2차 산업이 되는 것이고, 여기에 와인 산지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자연스럽게 서비스업이 발달하게 됩니다. 즉 3차 산업의 기반이 갖춰지는 것이죠. 이래서 한 곳에서 자연스럽게 6차산업이 된다는 겁니다.
하긴 저도 휴가 때 포도 수확을 체험해 본다던지, 와이너리가 많은 지역에 가서 며칠을 보내며 와이너리 투어를 하는 일이 잦으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이같은 일이 가능한 것은 일단 미국 농업의 저력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땅이 넓고, 기계 농업이 발달해 있으며, 산학협동이 매우 잘 되어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만 해도 지금은 잠깐 쉬고 있지만 몇년간 한 학기에 대여섯 학점 정도 듣는 선에서 와인 공부를 하고 있는데, 저처럼 테이스팅 쪽으로 방향을 잡은 학생들은 이른바 소믈리에가 되는 공부를 하던지, 혹은 와이너리에서 블렌딩 담당으로 빠지는 경우들이 많고, 포도 재배 쪽으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당연히 포도원으로, 그리고 와인메이킹 쪽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지금 워싱턴주에 8백개가 넘어갈 정도로 성장한 와이너리들로 흡수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엔 주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성장의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 농업이 정부의 지원을 배제한다고 하는건 솔직히 어폐가 있습니다.
연방정부는 물론 FTA 규정에 의해 개입을 안 하지요. 그러나 정작 미국 농업을 지원하는 건 주정부들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지금 연방정부는 적자가 엄청 쌓여서 농업에 과거처럼 쏟아부을 자금도 없다고 봐야 할 겁니다. 어쨌든 농업이 발달된 주들은 당연히 주정부 차원에서 농업 부문에 어떤 식으로든 지원을 합니다. 그 때문에 미국 같은 나라와 농업이 관련된 FTA 를 맺는다는 것은 사실 분명한 불공정한 무역협정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정부는 FTA 조항에 의해 농민들을 지원하지 못하는데(어차피 지금 정부는 지원할 생각보다는 아예 농업을 없애 버리겠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 정부도 겉으론 어차피 지원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주정부의 지원이 있는 겁니다.
얼마전 캐나다와 FTA를 맺은 한국은 바로 며칠 전 호주와도 FTA를 맺었다고 합니다. 이제 한국에서 축산업은 완전히 망가졌다고 봐야겠지요. 캘리포니아 쌀 들어갈 날도 얼마 안 남은 듯 합니다. 식량이나 다른 농업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기반이 FTA 앞에서 무너지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과거에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이 괜히 생긴게 아닙니다. 식량과 다른 먹거리들을 생산하지 않는 나라가 과연 얼마나 자주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당장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밀 가격이 폭등하면서 이것은 바로 생활에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까? 과자의 포장은 작아지고, 과자를 사는 게 아니라 질소를 산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이지 않습니까? 식량은 금방 무기화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린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를 더 팔겠다며 식량 자급의 기틀을 내어줘버리는 일들은, 도대체 무슨 근시안일까요.
원래 부동산 투기 같은 데도 막차를 타는 사람들은 망가지게 마련입니다. 세계 각국이 신자유주의 기조에서 천천히 빠져나오려고 하는데 지금 우리만 이렇게 그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을 더 허겁지겁 쫓아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농업 기반이 확실해야 우리도 미국이나 유럽의 와이너리처럼 제대로 된 6차산업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 인삼이라던지, 특정 지역의 육가공품이라던지 하는 것들이 있지만, 이런 산업들이 제대로 그 포텐셜을 다 보여줄 수 있습니까? 그나마 정부의 지원이라도 있어야 이들이 자기 잠재력을 다 보여줄텐데, FTA로 발목을 잡힌 영농인들과 관련 산업계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들이 이런 식으로 쓰러져 나가면, 우리는 결국 어떻게 될까요?
아마 이런 식으로는 생각할 수 있겠지요.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이 쌀 재배에까지 뛰어들고 이런 것들이 식량 안보(안보라는 말만 들어가면 눈 뒤집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으니)라며 대기업에게 또 돈벌이감을 몰아주는 식으로... 그러면 이제 대한민국엔 자작농은 남지 않고, 모두가 소작농이 되겠지요. 그럼 이른바 삼정 문란의 시대가 다시 돌아오는 겁니다. 튼튼한 자영농들이 다양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그것을 제값 받으며 파는 나라. 그런 나라가 건강한 겁니다. 자기 먹을거리를 자기가 찾아 만들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장 문만 여는 나라, 과연 건강한 나라인가 자꾸 생각해보게 되네요.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