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을 길들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말을 잘 들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명확하게 구분짓는 것이다. 지시와 명령을 고분고분 따를 경우 칭찬과 함께 좋아하는 먹이를 안겨주고, 반대로 지시와 통제를 제대로 따르지 않을 경우 그에 상응하는 벌을 내림으로써 동물들로 하여금 행위에 대한 결과의 차이를 극명하게 인지하도록 훈련시킨다. 동물의 본능인 두려움을 자극하는 이같은 방법은 동물사육의 고전적 방식으로 오랫동안 활용되어 왔다.
그러나 사실 신상필벌의 이 고전적 사육방식을 가장 잘 이용해 온 부류는 인간, 그 중에서도 정치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특정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두려움과 불안, 공포심을 유발시키는 방식으로 시민들을 통제하고 국가기관 및 관료들의 충성과 복종을 이끌어 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과 권위주의 정부들은 정권과 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해 하나같이 이와 같은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공고한 옹벽을 구축해 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2014년의 대한민국은 수십년 전 군부독재세력이 통치하던 그때와는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사회 곳곳에서 과거의 그때를 연상시키는 징후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국가기관과 관료들의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고전적 방식들은 이 정부에게서 과거의 악몽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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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최근 금융감독원 감사에 안장근 법무부 감찰관을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감사원 출신으로 법무부에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 진상조사를 이끌던 인물이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모두들 알다시피 박근혜 정부에게는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였다. 수차례에 걸친 박근혜 정부의 경고와 외압에도 불구하고 사건수사에 원칙을 고집하던 그는 결국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합작품이었던 혼외아들 의혹으로 사임하고야 말았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퇴진은 국정원 사건 수사의 2막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서곡이었고 이후 수사는 청와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가려움을 긁어준 안장근 법무부 감찰관에게 상급이 내려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우리는 박근혜 정부에서 이와 같은 사례들을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국정원 사건과 관련하여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이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됐고, 이 사건을 수사하던 수사팀에게 사건의 은폐와 축소, 외압을 행사한 의혹을 받고 있던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무죄가 선고됐다. 또한 국정원의 이종명 전 3차장, 민병주 전 심리전 단장, 김 모 심리전단 직원, 외부 조력자 이 모씨 등에 대해서도 전원 기소유예처분이 내려졌다.
김용판 전 청장과 함께 경찰의 사건 은폐와 축소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최현락 당시 수사부장은 이후 경찰청 수사국장으로, 이병하 수사과장은 여주 경찰서장으로 영전했고, 김병찬 수사 2계장은 직급은 유지된 채 인사상 영전처리됐다. 대선을 불과 3일 앞둔 날 밤 11시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경찰의 중간수사발표 기자회견에서
"(댓글이) 삭제된 흔적은 있으나 혐의사실과는 관련이 없다"며 기막히게 줄을 잘 섰던 김수미 분석관 역시 이후 수사관으로 승진됐다. 게다가 국정원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자 베일에 가려진 '좌익효수' 김하영은 대한민국 국회가 가림막까지 설치해가며 신상을 보호해 주는 특혜를 베풀기도 했다. 일반 시민들 중 아직까지 그 누구도 이 희대의 댓글녀 얼굴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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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 이렇듯 성대한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국가권력에 맞서 진실과 부정을 파헤쳤다는 이유로 굴욕과 수난을 겪어야만 하는 이들도 있었다. 애초 국정원의 비밀을 세상 밖으로 꺼낸 국정원내 내부제보자 3인의 공익을 위한 대의는 국정원의 내부색출에 의해 파면이란 최악의 비극으로 끝이 났고, 원리원칙에 입각한 수사를 천명했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석연찮은 혼외아들 의혹과 법무부장관의 감찰지시에 스스로 옷을 벗었다.
윤석열 수사팀장은 정직 3개월 뒤 대구고검으로 좌천당했고, 박형철 수사부팀장 역시 정직 1개월 뒤 대전고검으로 밀려났다. 이로써 국정원 사건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던 검찰조직 3인방이 줄줄이 찍혀나갔다. 어디 이뿐인가. 국정원 댓글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벌이며 살아있는 양심의 뜨거운 기개를 빛냈던 권은희 과장 역시 전보조치 후 승진에서 탈락했다.
이처럼 국정원 사건과 관련해서 정권의 치부를 드러내고 절차와 과정 속의 부정과 불법들을 밝히려 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당한 징계와 납득할 수 없는 불이익을 당했다. 반면에 권력에 아부하고 정권에 충성하는 자들은 모두 그에 걸맞는 전리품들을 하나씩 주머니 속에 챙겨 넣었다. 이쯤 되면 국정원 사건을 둘러싸고 이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한다는 합리적 의심을 가능케 만든다.
또한 이 나라와 현 정부에 우리가 배워 왔고 믿어 왔던 공동체적 가치들이 바로 설 자리가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 사회 정의, 법치주의에 입각한 원칙과 기준, 보편적 상식, 양심, 자유와 평등, 공공의 이익 등의 민주주의적 가치들은 더이상 현실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화석화된 개념일 뿐인 것이다. 국정원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일어난 이 비상식적 상벌이 이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두려움과 불안에 쉽게 노출되는 인간의 본성을 건드리는 이러한 통치 방법은 대단히 비열하고 야만적인 정치의 적나라한 속성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숭고한 민주주의적 가치들을 외면한 채 국가권력에 무조건적인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는 이와 같은 방식은 언급한 바와 같이 과거 군사독재시절과 권위주의 시대에 횡행하던 통치술이다. 박정희 유신독재시절 퍼스트레이디로서 이를 체득했을 박근혜 대통령이 이 방식을 선호하는 것은 그래서 결코 우연이 아니다.
2년 차에 접어든 박근혜 정부의 통치 철학과 국정운영 스타일은 이제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이 명징하다. 사회공동체의 보편적 상식과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무시하는 독단과 독선, 정의와 양심을 우롱하는 국정의 전횡이 대질주를 하고 있다. 세상 어디에 이런 나라와 대통령이 또 있겠나 싶다. 그런 측면에서 국정원 사건의 관련자들이 받은 이 이상한 상벌은 적어도 현 시점에서
'이 나라에 정의는 단연코 없다'는 것을 선언한 대참사에 다름 아니다. 필자는 우리나라가 보다 정의로운 나라가 되기를 희망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정치꾼들이 입에 달고 사는
'죽은 정의'가 아닌 살아있는
'진짜 정의' 말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진짜 정의'를 추구하고 누릴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부디 잊지 않았으면 한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