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손이 조금 화닥화닥.
아침에 늦게 일어나 후다닥 출근하느라 커피를 만들지도 못했고, 당연히 밥도 못 먹고... 아내가 도시락으로 싸준 빵은 고등학교 때 2교시나 3교시 끝나고 미리 까먹는 기분으로 다 먹어 버렸고 - 이런 기분 참 오랜만이야 - 텅텅 빈 보온 커피 머그만 후다닥 챙겨들고 나와서, 블로그 이웃이신 이삐꿀물 님 부부가 운영하시는 토마스 스트릿 델리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시키는데, 늘 그러시는것처럼 커피를 가져가라 하셨고, 기쁘게 한잔 제 머그에 받아 마셨습니다.
그리고 정식으로 점심시간이 왔을 때, 또 그 샌드위치 싸들고 올리브웨이 스타벅스에 찾아왔는데, 항상 저를 보면 커피 가격을 깎아준다던지, 혹은 커피를 리필 가격으로 주곤 하는(이게 큰 것이, 제 컵을 가져가 그냥 커피를 사 마시면 2달러 3센트를 내야 하는데, 리필로 받으면 55센트만 내면 되거든요) 이 스타벅스의 바리스타 아맨다가 마침 카운터에 서 있어서 겨우 55센트 내고 커피 한 잔을 받았는데, 여기에 스위트너 넣으려다가 메고 있던 가방으로 커피 머그를 때리며 손에 커피를 엎었네요. 으으, 그 순간의 쪽팔림이란.
그런데 그 순간 제가 엎은 커피를 닦으려 온 또다른 점원의 한 마디. "손은 괜찮으신가요?"
저는 그저 커피를 엎어 미안하다고 인사만 하고 말았는데, 역시 예의 그 아맨다. "조셉! 조셉! 아 유 오케이?" 와우, 귀여운 저 아가씨가 내 이름을 두 번이나 불러주네. 하하. "괜찮아. 커피보다 우편물이 훨씬 더 위험한 거 알아?" 저는 씨익 웃어주고 커피를 엎질러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자, 다시 군말않고 엎은 커피를 채워 줍니다.
얘들의 이 호들갑엔 이유가 있긴 합니다. 오래 전 맥도널드에서 커피를 마시던 할머니가 커피를 '자기 실수로 엎어서' 데었는데, 이걸로 소송이 붙은 적이 있고 이 할머니가 엄청난 배상금을 받게 된 겁니다. 결국 이들의 호들갑스런 친절엔 '소송을 피하고자 하는' 실질적인 이유가 숨어있을 수 있습니다.
이 소송이 맥도널드의 패비로 이어진 이유는 커피가 뜨겁다는 경고를 미리 안 했다는 것. 아니, 아이스 커피가 아닌 이상, 커피가 뜨거운 음료가 아닐 수는 없잖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징벌적 배상금이 매겨졌고 그 다음에 미국의 거의 모든 커피집에선 뜨거운 음료이니 주의하라는 경고문이 붙거나 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땅콩 앨러지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이 제품은 땅콩을 가공한 기계에서 함께 만들어졌습니다'라는 경고문이 붙는 건 어쩌면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포장된 볶은 땅콩 봉지 뒤에 "이 상품엔 '땅콩'이 들어 있습니다"라는 경고가 붙어 있는 건 뭐라고 해야 할지.
이 무슨 바보같은 짓인가 싶기도 한데, 하긴 바보짓은 바보짓인것이 이로 인해 포장에 경고를 넣어야 하는 인쇄비 더 들어갈 것이고, 법적인 비용은 법적인 비용대로 들어갈 것이며, 여기서 발생되는 비용은 손님들에게 가격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개인을 위해 기업에 징벌적 배상을 물렸습니다. 이런 것은 단지 이런 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담배회사들은 결국 클래스액션(단체소송)에서 패해 엄청난 배상금을 물었습니다. (물론 이들이 민주당 정권 아래서 이런 판결을 받았던 건, 이들이 공화당의 엄청난 자금줄이라는 사실 때문에 어느정도 압박을 받은 면도 완전히 부인하진 못하겠지만) 판결의 기저엔, 그 개개인이 기업의 부주의나 태만으로 인해 고통받았다는, 일종의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조차 힘들겠지만.
이런 소송들이 남발하는 사회가 더 나은건지, 아니면 파업을 한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물리는 나라가 나은건지는 금방 비교가 될 겁니다. 민주주의의 시스템은 소속 구성원들 전체가 더 행복한 사회를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사회주의사회도 아니고, 친 기업적이고 기업에 특혜가 선진국 어느 나라보다도 많고, 기업의 이익대로만 움직인다는 욕을 먹는 미국 사회도 분식회계를 했다는 이유로 거대 자본인 엔론을 없애 버렸고, 독점을 한다는 이유로 AT&T 를 분할해 버렸던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법 체계 안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몇 건의 굵직한 재판들을 보면, 이 법의 적용과 집행에 있어서 과연 저게 민주주의 사회일까 생각하게 되는 면들이 많습니다. 쌍용차나 다른 기업들의 해고 노동자들과 노동자들의 쟁의행위 자체에 천문학적 벌금을 때려버리는 나라. 결국 그것은 법질서와 구조가 누구를 위해 봉사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법무부장관이 직접 지은 국가보안법 저서로 봤을 때 틀림없이 국가보안법상의 날조죄를 적용받아야 할 서울특별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수사검사들과 수사대상인 국정원 요원들과 간부들이 왜 그 법의 적용을 안 받아도 되는가에 대한 궤변을 늘어놓는, 바로 그 책의 저자인 황교안 법무부장관의 모습을 볼 때, 법이 과연 만인에게 평등한가란 질문을 던져보면 그 답이 너무나 쉽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 것입니다.
법의 근본적 존재 이유, 사법부의 판단의 존재 이유는 사회를 정의롭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한국의 법 시스템은 과연 선진국과 후진국의 경계에서 어느 쪽에 더 가깝게 자리잡고 있는 겁니까? 법 위에 대통령의 의중이 먼저 고려된다면, 그게 '민주공화국'입니까, 아니면 '왕국' 입니까?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