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모 연예인이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황당한 상황극을 펼쳐 적잖은 국민들을 당황케 만든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음주운전 파문이 커지자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에게 쏠려있는 의혹에 대해 해명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의 언어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 버리고 만다. 말을 한 자신도 놀라고, 이 말을 들은 다수 시민들 마저 기절초풍하게 만든 저 표현은 이후 논리파괴형 수사의 전설이 되었고 수많은 아류작들을 양산해 내었다. "때린 것은 맞지만 폭행은 아니다", "물건을 훔치긴 했지만 도둑질한 것은 아니다", "속인 것은 맞지만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등의 표현들은 이제 우리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논리파괴형 어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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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황당한 상황극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하고 체화시킨 부류는 아마도 정치를 생업으로 삼고있는 일단의 부류들이라 사료된다. 물론 모든 정치인들이 이와 같은 논리파괴형 수사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특정 정당, 특정 부류에게서 유난히 그 표본이 많다는 점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경선과정에서 당시 이명박 후보의 BBK 실소유 문제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문제의 광운대 강연 동영상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자신이 BBK를 설립했다는 증언이 분명히 나온다. 그러나 결국 이 논란은 "주어가 없다"는 희대의 망언과 함께 "BBK를 설립한 것은 맞지만 실소유주는 아니다"는 궤변을 남기며 일단락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사례를 찾는 일은 모래사장에서 조개껍데기를 찾는 일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오피스텔 임차비용을 지불한 것은 맞지만 새누리당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박근혜 후보가 임명장을 수여한 것은 맞지만 후보와는 무관한 일이다", "댓글작업을 한 것은 맞지만 선거에 개입한 것은 아니다", "자회사를 설립한 것은 맞지만 철도민영화는 아니다", "의료법인의 자회사 설립을 허용할 계획이지만, 의료민영화와는 관계가 없다", "국정원 직원이 정치에 관여한 것은 맞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 등과 같이 특정 정당, 특정 부류들에게서 상습적으로 대량 생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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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례를 찾기 위해 구태여 기억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 조차 없다. 상식과 논리를 비웃는 망언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틀 전(3일) 황교안 법무부 정관은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의혹과 관련해 "수사과정에서 불미스런 점이 있었던 것은 유감이지만, 이 사건이 간첩조작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황교안 장관의 발언은 지금까지 살펴본 논리파괴형 어법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고, 이 과정에서 어떤 위법행위가 있었는 지는 이미 언론과 방송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 상태다. 황교안 장관이 언급한 것처럼 수사과정에서의 불미스러운 점(조작)이 있었다는 것이 명백하다는 뜻이다. 간첩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증거물인 출입국 문서가 위조되었다는 것은 결국 애시당초 국정원에게 간첩을 만들어 내야만 하는 당위가 존재했음을 시사해 준다.
그러나 황교안 장관에게 이같은 사실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황교안 장관 역시 국정원과 마찬가지로 간첩혐의 입증을 위한 문서조작의 위법성 보다 간첩이 존재해야 하는 당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일을 제일의 가치로 삼는 검찰조직과 이를 지휘 감독하는 법무부장관에게 법보다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황교안 장관에게는 법보다 우선하는 다른 가치가 존재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일국의 법무부장관 입에서 저따위 망언이 서스럼없이 튀어나올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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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황교안 법무부장관의 저 낯부끄러운 망언이 이 사건의 공소•유지를 담당하고 있는 검사가 최근에 관련 증거로 제출한 사실확인서 및 정황설명서의 팩스번호를 조작한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이는 그 스스로 검찰조직이 여전히 정치권력의 충실한 공복이요, 대선개입과 간첩조작사건으로 만신창이가 된 국정원의 든든한 우군임을 공표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수 년전 모 연예인의 입에서 시작되어 수많은 아류작들을 만들어 낸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사용되는 경우는 대개 두가지다. 모 연예인의 경우처럼 예기치 못한 상황을 면피하기 위한 변명의 와중에 만들어 지는 경우와 황교안 장관의 경우처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는 경우다.
전자의 경우는 당연히 정상참작의 여지가 남는다. 명백한 말실수를 가지고 언제까지고 엄격한 도덕율을 적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사실을 호도하고 진실을 외면하는 위선과 기만,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권력의 오만과 야만, 시대정의와 개인적 양심에 대한 비아냥과 조롱을 용인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 이유로 필자는 법의 존엄과 정신을 무시하고 정의와 진실을 우롱하는 자가 대한민국의 법무부장관이라는 사실이 마냥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