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운동하는 곳에서 우연히 알게 된 지인으로부터 무슨 공부를 했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매스커뮤니케이션, 저널리즘 쪽을 공부하다가 크리미널 저스티스로 졸업했다고 하니 "아니, 아깝게 그런 공부를 한 사람이 우체부를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글쎄요, 저는 이래서 잠깐 제 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아니, 네가 무슨 공부를 했는데 기자를 그만두고 우체부를 한다고 그래?" 처음 우체부 일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도, 주위의 반응은 대부분 그랬습니다. 그리고 우연찮게도,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연방우정국에 취직했기 때문에 제 블로그를 통해 저를 알게 된 분들은 제가 과거에 뭘 했는가에 대해 궁금해하시거나, 제게 어떤 공부를 했냐고 물어오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을 때는 대학 2학년까지 다녔고, 이후 미국에 와서도 같은 공부를 했었습니다. 저널리즘, 그러니까 신문방송을 공부했던 것이지요. 나름 훌륭한 기자가 되고 싶다는 포부도 있었고, 미국에 와서도 잠깐이지만 신문방송을 공부하다가 이곳의 한인 신문사에서 일을 시작했고, 나중엔 미국 공보부(지금은 국무부 소속으로 바뀌었지만) 산하의 미국의 소리 방송에서도 일했었습니다.
어쨌든, 그런 걸 모두 접고 학교는 경찰학과라 할 수 있는 크리미널 저스티스를 전공해 졸업했고, 우연히 연방우정국 시험을 쳤다가 이게 합격이 됐고, 지금 10년차 우체부를 하고 있습니다. 언론사 경험 10년, 그리고 우체국 경험이 10년이니 사회생활을 한 것도 20년을 넘긴 셈이지요.
"왜, 전공을 안 살리고..." 가끔 이런 식의 안타까움 섞인 격려라면 격려를 듣는 경우도 없잖아 있습니다. 그 말은 전공을 살려 경찰이 되라는 이야기보다는 왜 저에게 언론계에 남지 않았는가란 질문을 받는 셈인데, 글쎄요.
신문학 개론을 배울 때, 언론의 시초는 사람들에게 소리쳐 알리는 것으로부터였다고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 기준에 따르면 저는 지금 충분히 전공을 살리고 있는 셈이지요. 우체부가 된 것이 사회적인 지위가 격하됐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다는 것의 반증인 셈인데, 글쎄요. 지금 저는 연방정부 공무원으로서 아주 많은 연봉은 아니더라도 생활하기 충분할 만큼의 급여를 받고 있으며 이 급여 이외에도 충분한 베니핏(복지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체부가 육체적으로 편안한 직장은 물론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꽤 신망을 받는 직업이라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주위에서 가끔 이런 질문을 다른 한국인들로부터 받을 때면, 한국 사회에 녹아 있는 관념이 그대로 비쳐지는 것 같습니다. 원래 모든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말 자체가 강조되는 사회는 그 사회 안에 어떤 계급이나 직업상의 귀천이 더 도드라진다는 것을 감추기 위한 것이니까요. 한국에서의 우체부와 이곳에서의 우체부는 그 직업적인 위상이 완전히 다릅니다.
아무튼, 전공을 살린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비싼 돈 들여서 공부했는데... 저같은 경우는 지금 제 전공을 다 살린다고 생각합니다. 소식을 전하는 것이 언론의 본질이라면, 우편물을 전달하는것도 마찬가지의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크리미널 저스티스 때 공부한 것들을 살려서 저는 새로 이사온 사람이나 혹은 이사 나가는 사람들을 파악하고, 제 주민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나름대로 최선의 서비스를 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보다 삶이라는 학문을 공부한다고 생각합니다. 잘 사는 것은 누구에게나 궁극적인 목적이겠지만,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라는 면에선 각자마다 모두 다른 기준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향에서 크게 다르게 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사는 것도 하나의 배움일 겁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평가는 머리가 커지면서, 가슴이 커지면서 내 나름으로의 평가 기준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기준에 맞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을 제대로 찾고 그것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할 것이라는 면에서.. 우리 모두가 삶이라는 전공을 갖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나름으로 매일 매일, 내가 생각하는 내 삶의 전공부문에 충실하면서 살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물론 이런 것은 개인의 성취감의 문제도 있지만, 사회의 문제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사회를 변화시켜나가야 하는 것은 커다란 숙제이고, 집단지성으로 함께 풀어야 하고, 참여와 연대가 함께 이뤄져야 할 부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