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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편물을 배달하다가 이전 배달구역에서 저와 가장 가까웠던 손님인 조지앤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손을 흔드시더니 다가와서 저를 그냥 꼭 안아 주었고, 저는 가슴이 막막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외로움을 타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기의 외로움을 감출 뿐입니다. 사람인 이상 나이들고 혼자되면 누구나 외롭기 마련이라는 것, 저는 그것을 일상에서 늘 체험합니다.
"이제 우리 아파트로는 배달오지 못하는거야?" 조지앤 아주머니가 제게 물어봤을 때 저는 이렇게 대답했었습니다. "노조가 열심히 싸우고 있으니까,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거예요. 조금만 더 기다려요." 그리고 나서야 조지앤은 제게 손을 흔들고 떠났습니다. 아, 돌아가야지... 저렇게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다음 블럭에서 저는 시각장애 때문에 앞을 못 보는 자넬 할머니가 무엇인가를 들고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침 그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우편배달을 다 마친 참이라, 저는 자넬을 불렀습니다.
"자넬, 내가 그거 들어줄께요."
"조셉! 고마워."
자넬의 3층 아파트까지 데려다주고 나왔는데, 갑자기 그녀가 저를 불러세웠습니다.
"네가 다른 곳으로 발령났을 때 얼마나 서운했는지 몰라. 그런데 이렇게 지금 우리 우체부로 돌아와주니 참 좋구나" 그렇게 말한 자넬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난 어렸을 때는 볼 수 있었어. 어느날 큰 병을 앓고 나서 시력도 잃었던거야. 그리고 나서 이렇게 빛이 없는 세상에서 사는 데 지금은 익숙해져 있거든." 아, 마음아픈 이야기군요. 그런데 자넬은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즘은 세상을 한 번이라도 다시 내 눈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나는 내 우체부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거든."
제 눈엔 눈물이 맺히더니 도로록 굴러내렸습니다. 저는 애써 눈물지은 목소리를 감추며 말했습니다.
"진짜로 보면 너무 못생겨서 놀라 도망갈거예요." 자넬이 더듬더듬 제 손을 잡더니 저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고마워, 조셉."
그리고 배달을 마치고 우체국으로 돌아온 저는 어쩌면 다시 배달구역이 바뀌게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껏 우체부들이 주장했던 배달구역 조정을 시키지 않은 채로, 경영진에선 그냥 지금의 배달구역들을 모두 비어 있는 배달구역으로 공시하고, 모든 우체부들에게 라우트를 경쟁 할당시킨다는 발표를 한 것입니다. 이것은 배달구역에 우체부들이 입찰을 하면(이를 '비딩'이라고 부릅니다), 입찰자들 중에 가장 연공서열이 높은 사람에게 해당 배달구역을 배당해 맡기는 제도로, 모든 우체부들이 다 겪는 과정이긴 합니다만, 이것이 이렇게 한 우체국 전체 단위로 일어나는 건 처음이라 앞으로 일이 복잡해졌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 아마 제 일 속에서 이런 사람관계들을 만들고 이 안에서 추억을 만드는 일은 계속될겁니다. 지금 당장은 제 스스로가 어떻게 하겠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을 조지앤에게나 자넬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그리고 그분들이 실망하는 모습을 어떻게 볼지 벌써부터 걱정은 됩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뭘 해야 하는지는 압니다. 주어진 우편물을 정확히 그 주인들에게 가져다 주는 것,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우편물에 행복을 섞어 배달하는 것입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