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면 풀은 자연스럽게 눕게 된다"
이는 맹자가 위정자의 솔선수범을 강조하며 윗 사람이 먼저 본을 보이면 아랫 사람은 저절로 이에 호응하며 따르게 되어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굳이 맹자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 선조들 역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경구를 통해 윗 사람이 행실에 더욱 각별히 유념하고 처신을 올바르게 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는 결국 작게는 가족 공동체로부터 크게는 사회공동체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개별 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리더들의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정을 예로 들어 보자. 자녀들의 독서 습관을 길러주길 원한다면 부모들이 늘 책을 가까이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자녀들의 인사성을 길러주고 싶다면 부모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깍듯이 인사하는 장면을 자주 보여주는 것이 좋다. 거짓말하지 않는 정직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창의력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외향적이고 진취적인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면 이처럼 그에 합당한 방법들을 찾아 아이들이 직접 교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마찬가지로 국가 경영에 있어서도 동일한 방법이 적용된다. 시민들의 준법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공직자들이 먼저 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계층•이념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먼저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구습에서 탈피해야 한다. 국가기관에 대한 국민 불신을 덜어내기 위해서는 국가기관의 공정성과 중립성 확보가 우선이며, 국정을 운영함에 있어 각종 시비와 논란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국정운영의 뚜렷한 원칙과 기준이 명확하게 바로 서 있어야 한다. 이것이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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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지도자의 솔선수범은 사회공동체의 현재는 물론 미래를 위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대단히 중요한 덕목이다. 그렇다면 현 박근혜 정부는 과연 이와 관련해서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민망하고 부끄러운 수준을 넘어 참담한 지경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가장 최근의 경우를 살펴 보자.
어제(2일) 박근혜 대통령은 유정복 전 장관의 지방선거 출마로 공석이 된 안전행정부 장관에 강병규 안전행정부 2차관을 정식 임명했다.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공백을 막기 위해 서둘러 주무장관을 임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문제는 강병규 신임 장관의 고위 공직자로서의 자격에 있다. 필자가 그의 자격을 거론하는 것은 강 장관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자녀교육을 목적으로 두 차례에 걸쳐 위장전입을 한 사실이 밝혀져,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의 인사청문회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메뉴인 위장전입은 거주지를 옮기지 않고 주민등록법상 주소지만 바꾸는 위법행위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는 명백한 범죄다. 따라서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인다 하더라도 두차례나 주민증록법을 고의로 위반한 사람을 이를 실제 관리하는 주무부서의 장관으로 임명했다는 사실은 논리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도무지 설명이 안된다. 부정행위 전력이 있는 사람을 시험 감독관으로 앉힌 것과 같은 격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또 있다. 이로써 대한민국에서는 위장전입이 더 이상 범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이나 다름 없게 되었다. 앞으로 정부가 위장전입을 문제삼는다면 시민들은 강병규 장관의 이름을 호명하면 깨끗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전망이다. 주무장관도 했던 위장전입을 시민들이라고 못할 이유는 없다. 혹 재수없게 걸리기라도 한다면 미안하다고, 불찰이었다고, 주무장관이 하길래 해도 되는 줄 알았다며 형평성을 걸고 넘어지면 된다. 우매하고 무지한 시민들이 무엇을 알겠는가. 그저 대통령과 장관이 하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따라 했을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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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고 명망을 얻는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박근혜 정부가 친절하게도 이를 교범으로 만들어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 원칙. 부도덕하게 살아야 한다. 정직하지 말아야 한다. 제이 원칙. 부동산 투기, 탈세, 공금 유용, 이중 국적, 비자금 조성, 위장 전입, 군 면제 등등의 세부적 사안을 위해 가용할 수 있는 편법과 술수를 총동원해야만 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제삼 원칙. 개인적 양심과 사회적 정의 따위는 시궁창에 미련없이 버려라.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한 고위 공직자 중 위에 열거된 사안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아마도 그보다는 '윌리'를 찾는 편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지위와 명망을 얻기 위해 솔선수범의 사전적 의미를 완전히 거꾸로 써 내려가고 있는 이 이상한 나라에서 자격을 논한다는 것은 이제 무의미한 일이 되고 말았다. 바람은 불면 풀은 자연스럽게 눕는다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 나라에서는 바람이 불어도 풀이 눕지를 않는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