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국정원에게는 달갑지 않은 별칭이 따라 붙는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야당 후보에게 불리한 여론을 조직적으로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국가걱정원'이라 불리더니, 최근에는 서울시 공무원인 유우성씨에 대해 간첩혐의를 적용시키기 위해 공문서까지 위조한 것으로 밝혀져
'국가조작원'이란 별칭이 새로 생겼다. 이 달갑지 않은 별칭들은 국가정보기관이 정보를 독점하고 이를 정치공작에 적극활용하던 과거 군사독재시절과 권위주의 시절의 관행과 구습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명백한 역사적 퇴행이자 퇴보를 의미한다.
물론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국정원의 도•감청이 공공연히 벌어졌었고,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된 국정원 개혁 역시 뚜렷한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역시 국정원의 정치적 독립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정원의 일탈과 역주행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요즘 트렌드로 말한다면
'클라스'가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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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몰락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이들은 전임 이명박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었다. 이명박의 서울시장 재임시절부터 찰떡 궁합을 보여주었던 이 둘은 대통령-국정원장으로의 레벨업을 통해 대통령 직속기관으로서 국정원이 갖는 잇점을 정치적으로 최대한 끌어올렸다. 그 결과 '원장님 지시 강조 말씀'을 통해 대국민 계몽을 일임받은 일당백의 국정원 사이버 전사들이 야당 정치인과 지자체장 등을 향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하고,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혐오 댓글을 달고,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시민들을 향해 '종북'이라는 시대착오적 오물을 마구잡이로 투척하기에 이르렀다. 여론조작을 통해 대의 민주주의의 기능을 훼손하겠다는 이 놀라운 발상이 과연 원세훈 개인의 작품인지 아니면 그의 정신적 교주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작품인지는 아직까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이 지저분한 여론조작으로 말미암아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수혜를 입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국정원의 몰락을 주도한 이들이 이명박-원세훈 콤비였다면 국정원의 몰락을 방조하는 이들은 박근혜 현 대통령과 남재준 현 국정원장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명박 정권 하에서 만신창이가 된 국정원을 개혁해야 할 책임은 당연히 현 박근혜 정부에 있었다. 그러나 부정선거개입의 여파로 국정원 개혁의 당위를 정치권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까지 거세게 요구하고 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국정원 개혁안은 놀랍게도
'셀프개혁'이었다. 그러나 '셀프개혁'이 사실상 국민여론을 의식한
'나이롱개혁'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보는 없다. 범죄행위를 한 당사자가 스스로 재발방지를 위한 고강도 개혁안을 마련할 것이라 믿는 것은 지나치게 나이브한 발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문한 셀프개혁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이란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온 것은 그래서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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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에서의 불법부정개입과 최근 양파껍질처럼 드러나고 있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에서의 거짓과 부정들은 대한민국 최고정보기관로서의 국정원의 이미지와 위상을 먹칠하는 낯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의 외신들도 지난 대선 무렵부터 화제가 되고 있는 대한민국발 국정원 사태를 주목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국정원 사태의 여파를 단순히 국내의 문제만으로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속설처럼 대한민국의 국제적 망신을 국정원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국정원의 '국'자도 언급하지 않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나, 아직도 할 일이 남아있는 듯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남재준 국정원장이나 도무지 이해 안되는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헌법질서를 책임져야 할 최고통수권자와 대한민국 최고정보기관의 수장이 보여주고 있는 이 기이한 행동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비정상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대단히 괴로운 일이지만 지난 대선 이후 벌어지고 있는 비상식적 상황들은 대한민국의 비정상성을 용인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의 연속이다. 그리고 국정원이 이 비정상성의 중심에 놓여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모두가 인지하고 있드시 대한민국 국정원이 지금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이명박-원세훈 콤비가 여기에 불을 붙였다면, 박근혜-남재준 신콤비는 뒤늦게 부채질을 하는 겪이다. 이 네 사람이 대한민국 국정원의 날개없는 추락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대한민국 국정원의 몰락, 이들이 있어 가능했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