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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한국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와서 느닷없는 북한의 포격, 그리고 한국의 응사, 여기에 전투기 출동까지도 이뤄졌다고 말했습니다. 더 기가 막힌 건 연평도 백령도 주민들을 방공호로 즉각 대피시킨다는 거였습니다. 전쟁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지만 친구의 말이 저를 더 갑갑하게 했습니다. 사실 이게 늘 있어왔던 훈련들, 그리고 대응 훈련이었는데, 이걸 확대해석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는 거였지요.
선거철이 다가오니 북풍이 부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제 자신에게 흠칫 놀랐습니다. 이런 걸 이제 당연한 걸로 생각하고 있다니.
결국 이건 지금 남이나 북이 모두 서로에게 '적대적 의존'을 통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은 부정선거 의혹과 이와 관련된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 사건들, 그리고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등을 털어내는 데 이런 걸 쓸 것이고, 북한은 장성택 처형 등으로 술렁거릴 민심의 동요를 막고 아울러 체제가 안정되어 있다는 것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호들갑을 떨며 뉴스들이 나왔지만, 아마 이번 사건이 서로 포탄이 서로의 육지에 가서 떨어진 포격전 같은 것은 아닐 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고, 그러면서 이래저래 마음이 더 갑갑해졌습니다. 이게 언제 때 수법들인데... 이렇게 남이나 북이나 모두 똑같은 방법으로 자기 주민 길들이기를 하고 있는 건지.
북한은 이런 식으로 한국의 대응태세를 살펴보는 동시에 한미훈련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자기들의 불만 심리를 풀어냈을 겁니다. 그리고 이 며칠 미사일을 날리면서 노후무기 재고처리하고 새 무기를 병기고에 챙겨넣을 준비도 아울러 끝냈겠지요. 일련의 사건들을 자기 국민들에겐 '미제와 그 괴뢰들에게 공화국의 뜨거운 불맛을 보여줄...' 어쩌구 저쩌구 하는 발표를 했을 게 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저쪽의 움직임에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서 우리 안의 불안감을 최대한 자극해 '보수 표심 잡기'와 더불어 안보만이 지상가치라는 식의 선전전을 펼치겠지요.
이렇게 멀리서 보고 있으면 갑갑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네요. 도대체 뭣들 하는 짓인지. 러시아는 점점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고 있고, 일견 짐짓 모른 체 대응하는 듯한 중국도 사실은 러시아와 별반 다르지 않은 영토확장 야욕을 숨기고 있는 것 같고, 일본은 이제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클 수 있다는 계산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고...
절대 강자였던 미국은 계속되는 삽질 끝에 외교 능력이 꽝이라는 걸 보여줌과 동시에 더 이상 그들이 수퍼파워 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거기서 잃은 것은 자기를 맹종하는 '만만한 나라들'에서 빨아들이는 것으로 벌충하고... 스스로 주권을 가진 당당한 나라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군사 주권도 미국에게 줘 버리고 아직 찾아올 생각도 안 하는 사람들이 군대 지휘체계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참 이상한 나라...그게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라는 게 참 답답합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