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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분위기가 이제 확실히 달아오르고 있다. 여당의 경우 특히 광역단체장 후보 경선 문제를 놓고 경선룰과 일부지역의 난립한 후보를 정리하기 위한 이른바 ‘컷오프’ 문제로 잡음이 계속 나오고 있고, 민주당과 안철수 진영이 힘을 합쳐 창당선언을 한 ‘새정치 민주연합’의 경우엔 창당의 가장 중요한 명분이자 연결고리인 ‘기초선거 무공천’ 문제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있다.
특히 ‘기초선거 무공천’ 문제와 관련해선 구(舊) 민주당측의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이나 현장에서 선거의 중요한 축을 감당해야할 현역 국회의원들이 이 문제에 관한 현실적 어려움과 자칫하다가는 지방선거에서 참패할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계속 내놓고 있어, 당 지도부 입장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고심이 거듭되는것 같다. 무엇보다 ‘기초선거 무공천’이 민주당과 안철수 진영의 합당 제1조건이자 연결고리임을 감안한다면, 이를 번복할 경우 자신들이 가장 먼저 내세운 공약(公約)을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아 뒤집는 사람들이 되어 보통아닌 비난여론과 비웃음을 사게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일이고, 그렇다고 무공천을 계속 밀고 나가자니 선거현장에서의 어려움과 고충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으니 ‘새정치연합’으로선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인것 같다.
헌데 필자가 이 시점에서 지적하고 싶은것은 이와같은 ‘새정치연합’의 기초선거 무공천 문제를 다루는 ‘종편’의 태도다. 한마디로 간단히 요약하자면 요즘 종편은 ‘새정치연합’의 기초선거 무공천 문제를 놓고 출연하는 정치평론가,중견 언론인,여론조사 전문가는 물론 전직 정치인들까지 연일 조롱과 비꼬는 자세로 이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기초선거 무공천 문제가 거론된 연초부터 마치 어떤 ‘책임없는 정치집단’이 철없는 공약이라도 내건것처럼 사뭇 진지하고 심각하게 기초선거에 정당공천을 하지 않았을 경우 생길수 있는 이런저런 문제들을 거론하더니, 요즘와서는 ‘새정치연합’이 실제 정당공천 문제와 관련 진퇴양난에 빠진 모습을 마치 거봐란듯이 연일 비꼬고 조롱하고 비판하고 지적하고 있다.
아무래도 분명히 좀 짚고 넘어가야겠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문제는 지난 대선때 박근혜,문재인등 주요 대선후보의 공약이기도 했지만, 그전부터 이미 정치개혁 문제를 논할때마다 적잖은 정치학자,지식인,언론인 및 전직 국회의원들이 꾸준히 거론하고 제기해왔던 부분이기도 하다. 헌데 작금의 종편은 ‘지방선거 정당공천 폐지’ 문제가 그와같은 과거의 고심의 시간들은 마치 전혀 없었다는듯, 마치 어느어느 특정한 ‘무책임한 정치집단’이 어느날 갑자기 ‘매우 철없는 짓거리’라도 저지른양 비꼼과 조롱으로 일관하고 있다. - 요즘 종편에 나오는 일부 정치평론가나 언론인 출신들이 이 부분(기초선거 무공천)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솔직히 비판이라기 보다는 ‘비꼰다’고 보는게 정확할것 같다.
짧은(!) 우리나라 지방자치 역사를 돌이켜보면 정부수립 직후 시간이 다소 지난 1952년에서야 ‘지방의회’가 처음으로 만들어졌으나, 이후 ‘지방자치제’는 5.16으로 중단되고 민주화가 되면서 1991년에 기초의회와 광역의회 선거를 치러 실로 30년만에 ‘지방의회’가 부활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뒤인 95년엔 광역,기초 단체장선거까지 포함하는 ‘4대 동시 지방선거’가 동시에 치러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니 지방의회의 역사도 어느덧 23년, 단체장까지 선거로 뽑게된지는 실로 19년에 이르고 있다.
헌데 애초에 지방자치제를 부활하면서 당시 정부여당은 지방의회에는 정당공천을 하지 않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 그러다 야당의 반발을 사 ‘광역의회’는 정당공천을 하고 ‘기초의회’는 정당공천을 하지 않는 절충안으로 첫 지방의회 선거가 실시되었다. 그리고 4년후 ‘4대 동시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기초단체장’ 정당공천 문제가 다시금 이슈로 떠올랐었다. 이때도 역시 여당은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는 정당공천을 하지 말자는 입장을 내놓았다가 야당의 반발을 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지방선거’는 광역,기초단체장과 광역의회까지만 정당공천을 하고 기초의회는 정당공천을 하지 않는 체제로 95년 첫 ‘동시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헌데 이때는 후보들 기호문제가 뜻하지 않은 ‘작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기초선거는 정당공천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유권자들이 기호 1번이나 2번을 단 기초의회 후보가 특정정당 후보인 것으로 오해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고, 이런 오해의 분위기속에 아예 대놓고 특정기호를 받은 기초의회 후보가 특정정당 공천을 받은 후보인양 행세하는 ‘얌체족’까지 생겨났던 지경이었다. 이에 98년 2차 지방선거때부터는 기초의회에 한해서만 기호순서를 달리하여 1,2,3 순으로 기호를 부여받는 다른 선거와는 달리 가,나,다...순으로 기호를 배부하기도 했다.
한편 기초의회에 정당공천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같은 거대 양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서운하고 섭섭한 처지에 놓인 정파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바로 지금의 통진당이나 2천년대의 민노당의 전신격에 해당하는 ‘국민승리’니 ‘청년진보당’이니 하는 이른바 ‘좌파정당’들이다. 사실 2천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좌파정당이 우리나라 ‘국회’에 입성할만한 여건이나 토대는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었지만, 지방의회에 한해서는 ‘좌파정당’ 지지성향의 후보들이 당선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때는 기초의회는 정당공천은 물론 정당 ‘표방’까지도 금지되어 있었으니 자당의 지방의회 후보를 알릴 방법이 없는 좌파정당의 입장에서는 이와같은 제도가 적잖이 서운하게 느껴졌을것이다.
실제 90년대 후반 - 2천년대 초반경에 적잖은 ‘좌파정당’ 성향의 기초의원들이 지방의회에서 꽤나 성실하고 우수한 의정활동을 보여 언론이나 방송의 주목을 받은 사례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선거때 자신들이 ‘소속된 정당’을 합법적으로 밝힐수가 없으니 후보 입장에서든 그 지방의원이 소속되어있는 해당 정당 입장에서든 여러 가지로 서운하고 섭섭한 감정은 말할수 없었을것이다. 그러다 2003년 ‘기초의회 정당공천 표방금지’가 위헌이라는 소송이 제기되고 여기에 헌재가 위헌판결을 내렸다(1.30). 그리고 뒤이어 노무현 정권이 출범하고 치러진 2006년 지방선거부터는 마침내 ‘기초의회’까지도 ‘정당공천’이 허용되기에 이른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폐지했을 경우 생길수 있는 부작용으로는 흔히 여성,장애인등 사회적 약자,소수자의 지방의회 진출이 불리해지고 지역토호들이 득세할수 있는 문제점을 들곤 한다. 또한 일반인들이 후보자를 일일이 검증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문제있는 후보들이 단순히 그 지역에서의 영향력이나 지명도만을 갖고 검증절차를 밟지 않은채 무난히 당선될수 있는 문제도 생각해볼수 있다. 반대로 지방선거 정당공천을 허용하게 되면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게 되어 지방의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가 주요정당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게될 위험이 크다. 결국 원론적으로 보면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하거나 안 하거나 모두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지난 20여년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역사를 살펴보면 결국 지방의회나 기초단체장 정당공천을 함으로써, 지방정부가 중앙당에 예속되는데서 파생된 문제가 많았다고 볼 수 있을것이다. 당장 ‘기초선거 무공천’을 공약한 새정치연합의 경우 특히 민주당측 현장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켜지고 있다는것이 지금까지 지방의회가 중앙당에 예속됨으로써 있어온 부작용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한마디로 현역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 또는 중앙당이 자당(自黨)의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을 합법적으로 지원할 방법이 사라지고, 최악의 경우 당의 중하위 하부구조가 붕괴될 위험마저 있다는 소리 아닌가. 그리고 그런식으로 가다보면 결국 ‘정당공천’을 하기로 방침을 정한 새누리당 후보들에 밀려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게 될 것이 불을보듯 뻔하다는게 구(舊) 민주당측 관계자들의 현장에서 보고 겪은 우려들일것이다.
물론 현역 국회의원들이 자당의 지방의회 출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