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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김한길 지도체제의 새정치민주연합이 드디어 출범했습니다. 공식적으로 신당으로 창당한다는 애초의 목적은 달성했습니다만, 이제 코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성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상당히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습니다. 당장 당리당략적으로 보더라도, 그들이 연합할 수 있는 고리가 됐던 '기초선거 공천 포기'가 그들의 발목을 스스로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와는 솔직히 아무런 상관 없는, 남이 두는 장기판을 들여다보거나, 혹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TV로 중계되는 바둑 대국을 바라보는 것 같은 사람의 심정으로는 이건 심각한 패착이다 싶었습니다. 사실 대마가 죽어가는 바둑에 잠깐 회생의 수를 두었고, 이것이 대마를 다시 살리는 듯 했으나 그 다음 착점에서 고민은 했으되 다시 생로를 찾지 못한 것과 비슷한 결과라고 할까요.
문제는 새누리는 이런 상황이 올 줄 알았고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은 이런 것까지는 내다보지 못하고 원칙에만 집착했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박지원 의원 말대로라면 이기는 정치를 해야 하는데, 전쟁에서 전투엔 지고 명분만 가져가겠다는 게 말이 되냐는거지요.
대의를 지키는 것, 물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명분 자체로 이렇게 전력이 서로 차이가 나는데도 전략무기를 그냥 버린다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은 핵무기를 포기한 우크라이나가 요즘 러시아에게 어떻게 당하고 있는가를 봐도 나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신당의 안철수 공동대표가 지금 명분을 내세워 자기의 입장을 고집하면 신당은 선거에서 전멸할 것이 자명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국민의 지지만 잃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가꿔 왔던 조직도 잃고, 사람도 잃고, 더 나아가 애초에 새정치를 하겠다는 명분과 새정치라는 것을 하려는 원동력까지 모두 탈탈 털리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안철수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까지도 완전히 털릴 것입니다.
지금 이 문제는 일단 재검토해야 마땅합니다. 2번이라는 기호를 얻는 문제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선거 결과가 조직의 와해가 될 것임이 분명한 상황에서 명분만 가지고 나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것은 멀리서 봐도 안철수 의원의 정치 경험 부재, 그리고 실제로 정치에 대한 개념 부재, 그리고 회생의 길을 찾기 위해 마음만 급했던 두 세력의 서두른 결합이 불러온 실책입니다. 둘을 묶은 매개고리는 기초 단체장 및 의원 공천 포기였지만, 이걸 가지고 약속과 거짓의 대결로 프레임으로 몰고 간다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일 뿐입니다.
안철수 식의 정치는 결국 정치 그 자체에 대한 무지의 결과지만, 이걸 수용한 민주당도 함께 책임을 져야 할 상황에서, 지금은 안철수 씨가 직접 결단해야 할 때입니다. 약속을 뒤집는다는 비난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실상을 겸허히 인정하고 자신의 생각이 모자랐음도 함께 인정하는 용기가 오히려 안철수라는 브랜드 가치를 더 높이게 될 것입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자신의 정치 경륜과 '전과'를 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새정치민주연합도, 안철수도 모두 살아날 수 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죽으면 살리라'라는 말의 뜻을 안철수 대표가 새겨야 합니다. 이 상황을 풀어낼 수 있는 열쇠는 안철수 대표가 갖고 있습니다.
신당 창당의 목적은 승리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이번 지방선거에서 모든 포스트에서 1번 기호를 단 사람들이 공직을 독점한다면 그것이 더 큰 죄를 짓는 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단순히 '정치적인 세력'을 잃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바꾸고 싶어하는 모든 국민들의 열망을 꺾고 그들로 하여금 정치에 염증을 갖게 하고 아예 변혁 의지를 포기하게 만들 겁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안철수의 가장 큰 죄'가 될 겁니다. 제발, 지금이라도 겸허하게 스스로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하고 자신을 온전히 '비난의 제단'에 기꺼이 올려 놓으십시오. 그렇게 하면 '안철수의 브랜드'는 다시 상종가를 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