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에서 공안경찰로서 국가폭력의 대리인 역할에 충실했던 차경감이 송우석 변호사를 폭행하는 와중에 인상깊은 장면이 나온다. 그는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하던 일(폭력)을 멈추고 반사적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차경감의 이 기묘한 행위는 국가를 절대선이며 최고의 가치로 규정하는 국가주의자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가주의는 국가를 가장 우월적인 조직체로 인정하고 국가권력에 사회생활의 전 영역에 걸친 광범위한 통제력을 부여하는 사상이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국가주의자를 이해하기 위한 모든 것이 바로 이 정의에 담겨져 있다. 국가주의자에게 최상의 가치는 국가 혹은 체제의 존속과 안녕이다. 그들이 철썩같이 믿고 있는 이 불변의 진리는 사회생활의 전 영역에 걸쳐 폭력에 대한 정당성을 그들에게 부여해 주었다. 그러므로 '변호인'의 차경감이 무고한 시민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는 국가에 대한 충성인 동시에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을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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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요즘 영화 '변호인'의 차경감이 체화시킨 국가주의자로서의 모습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지를 국정원을 통해 생중계로 보고 있는 중이다. 지난 대선 무렵부터 세간에 노출된, 국가주의 신봉자로서의 국정원의 모습은 그동안 시민들이 생각해온 것과는 확실한 괴리가 있었다. 그들은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합법적으로 국정원의 댓글 활동을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며, 간첩 혐의가 의심스러운 사람의 혐의 입증을 위해서 당연히 공문서 위조를 해야 한다고 믿는 자들이다. 이처럼 자신들이 설정해 놓은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과정 속의 불법과 부정 쯤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맹신하는 국가주의자들에게 일반시민들의 보편적 상식과 원칙이 통용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제(26일)는 국정원에서 대공수사를 담당했던 전직 요원들이
'국정원 대공선배들이 후배들의 쾌유를 기원하며'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대공선배들이 쾌유를 기원해야 할 만큼 현 국정원이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는 인식을 제외하면 이 고루한 영혼의 소유자들과 일반 시민들의 인식에서 공통점은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허공을 향해
"국정원이 마치 엄청난 범죄집단인 양 매도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고 강변하는 이들은, 국정원이 지금 무슨 까닭으로 국민의 지탄과 공분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당연하다. 국가의 존립과 체제의 안녕을, 지향해야 할 최고의 미덕이라 여기고 있는 국가주의자들에게 민주주의적 가치와 시민권력은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공공의 적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두 대상 간의 이질적 괴리감은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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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기 위해 잠시 시간을 과거로 돌려보자. 우리는 국가주의자들이 활개를 치던 박정희 유신독재시절과 전두환 신군부 시절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서두에 언급한 국가주의의 정의에 따르면 그 당시는 국가권력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시민의 권리를 철저하게 통제하던 시절이었다. 국가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절대가치를 지닌 성역으로 인식되었고, 국가주의자들은 이 메뉴얼에 기본적으로 아주 충실했다. 그러나 비극은 국가주의자들에게 있어 국가란 국토, 국민, 정부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공동체적 개념이 아니라 체제를 장악한 권력자와 정권으로 인식되었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의 국가는 박정희였던 셈이고, 전두환 신군부 시절의 국가는 전두환을 지칭하는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들이야말로 지극히 반국가적인 사상에 경도된 돌연변이, 즉 변종들이다.
국가주의자들의 이와 같은 몰이해와 구습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에게 그대로 전수되고 계승되었다. 그 결과 전대미문의 불법선거개입 사건이 일어났고 간첩조작사건이 일어났으며, 급기야 과거 자신들이 해왔던 반국가적·반민주적 행위들이 정당한 것이었다고 당당히 외치는 참극이 벌어진다. 그러나 국가가 권력자나 정치권력을 대변하는 개념이 아닌 이상 이들의 주장은 절대로 설득력을 가지질 못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하에서 국가주의자들이 (어떤 이의 표현을 빌자면) 창궐하고 있다는 것은 그래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라면 국가주의자들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범죄집단의 특징 중 하나는 노출된 공간이 아닌 폐쇄된 공간에서 은밀하게 일을 도모한다는 데에 있다. 또한 이를 위해 불법과 부정을 서스럼없이 자행한다는 특징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철저히 은폐된 사이버 공간에서 부정선거를 획책하고, 간첩사건을 조작한 국정원의 모습이야말로 범죄집단의 그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따라서 국정원이 범죄집단인 양 취급받는 것은 그들 스스로 초래한 원죄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시대상황을 아무리 고려한다고 해도 국정원이 대통령 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하고, 간첩사건을 조작하는 행위가 절대로 정당화되고 합리화 될 수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오래된 국가주의자들은 후배들을 변호하기 위해
"국정원이 마치 엄청난 범죄집단인 양 매도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며 후안무치하게 말하고 있다. 이미 국가주의에 함몰된 전력이 있는 구시대의 괴물들이 후배들의 불법과 부정을 비호하기 위해 이해할 수 없는 과거의 소리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정상적인 삶과 활동을 방해하는 소리를 우리는 소음이라 칭한다. 어제 필자는 민주주의와 시민권력을 우롱하는 아주 불쾌하고 기분나쁜 소리를 들었다. 이는 명백한 소음이자 공해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