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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그가 당선되기를 열렬히 고대했던 개혁 대중 가운데 나도 한 사람이었다. 돌이켜보면,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위해 밤낮으로 애태우며 마음 조렸던 때도 없었던 것 같다. 다시 그 상황이 재현된다고 해도 똑같이 처신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내가 반노로 돌아선 분명한 계기가 있다. 민족 문제의 진일보한 가치로 평가 받고 있는 햇볕정책을 한나라당과의 공조를 통해 특검하면서부터다. 서슬퍼런 권력의 칼자루를 쥐고서 이를 진두지휘한 당사자가 다름 아닌 문재인에 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내가 그를 야권 정치인으로 취급하지 않는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호남 폄훼에 따른 문제는 차후의 일에 불과하다.
이후 참여정부의 우향우 행보는 날로 더해 갔다. 그에 따른 나의 반동도 비례했다. 그리고 그것은 진보적 관점에서의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들의 반개혁성과 반서민적 행보에 대한 저항이었던 셈이다. 물론 한나라당에 대한 적의도 숨김없이 토해냈다. 심지어 그 둘이 서로 별반 다르지 않게 여겨지기도 했다. 이 때 사용된 무기는 인터넷에 글쓰기였다.
그럴 때마다 소위 노빠라는 이들과의 논쟁도 사뭇 격렬했다. 어떨 때는 얼굴도 모르는 그들을 상대로 밤샘 토론을 하기도 했다. 한 때 글을 통해 깊은 동질성을 지녔던 그들의 수구적 행태를 보면서 적잖이 절망하기도 했다. 아울러 맹목적인 그들로 인해 개혁의 순결함이 난자 당할 것이라는 불운한 마음도 함께 들었다. 하긴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의 입을 통해 한나라당과 열린당의 정체성이 서로 엇비슷하니 대연정을 하자고 했던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안철수, 한 때나마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바 있다. 그런 내가 안철수 비판을 서슴치 않는 것은, 특정 정치인에게 지나치게 매몰되면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는데 상당한 걸림돌로 작동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사안에 따라 칭찬과 비판의 잣대를 냉정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입장은 앞으로도 여전할 것이다.
예전, 속칭 노빠들의 표리부동한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개혁적 목표 달성이 어렵겠다는 전망을 한 바 있다. 그런데 작금 일부 안빠들에 의해 똑 같은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정작 치중해야 할 가치는 사라지고, 거기 사람에 대한 맹목성만 횡행하는 허무 개그의 연장선을 목도하고 있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 전망도 그만큼 어두울 수밖에 없다. 속칭 안빠들이 이를 깨달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성태 : 시인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