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사람은 누구나 과하든 과하지 않든 감정을 표출한다. 여기에 조바심과 절박함이 더해지면 표현의 수위는 그와 비례해서 직설적이고 과격해지며 원색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언제나 세련되고 우아하고 품위있는 표현을 고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해이해진 공직기강을 추스린다거나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있는 관료조직에 적절한 긴장감을 불어 넣어야 할 때, 국정운영을 위한 강력한 드라이브가 필요할 때 대통령은 때로 표현수위의 규제를 스스로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
"진도개가 한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겨져 나갈 때까지 안 놓는다"
"불타는 애국심을 가지고 비장한 각오로"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몸을 자꾸 죽여 가는 암 덩어리"
놀랍게도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발언들이다. 이를 좋게 해석하자면 위에 열거했던 필요에 의한 의지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집권 2년이 되도록 내세울 것이 별로 없는 박근혜 대통령의 조바심과 강박이 만들어낸 절박함의 발로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 싶다. 이를 의지의 표현이라고 하기엔 지나치리만큼 과격하고 공격적이며 호전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살점이 완전히 뜯겨져 나갈 때까지", "불타는 애국심", "쳐부술 원수", "암 덩어리" 등의 표현들은 조선중앙TV에서나 볼 수 있는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수사에 가깝다. 박근혜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가 (의도했든 아니든) 그대로 노출된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박근혜 정부가 각종 규제개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즈음에 나온 "쳐부술 원수", "암 덩어리" 발언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비춰진다. 박근혜 대통령의 표현수위가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이를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는 국정최고지도지로서의 강한 욕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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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는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는 이례적으로 지상파는 물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도 전국에 생중계를 할 만큼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회의였다. 이를 위해 정부는 원래 예정되어 있던 회의 날짜까지 연기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다하는 치밀함을 보였고, 청와대는 이날 토론이 '끝장토론'이라며 매우 치열한 토론이 될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토론은 일반적 '토론'의 모습과는 전혀 달라 보였다. 오죽하면 청와대가 언급한 치열함이라는 것이 대체 어디에 있다는 건지 전화해서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 들 정도였다. 미리 준비된 질문에 대한 주무장관의 착한 답변을 듣는 방식이 토론이라면 우리는 이제 '토론'의 정의를 다시 써야만 한다.
다들 알다시피 박근혜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이번 쇼비지니스는 '규제개혁'에 방점이 놓여 있다.
'규제'라는 부정의 단어와
'개혁'이라는 긍정의 단어를 조합시켜 '규제개혁'이라는 미지의 단어를 탄생시킨 기획자를 찾아 박근혜 대통령은 마땅히 치하해야만 한다. '규제완화' 혹은 '규제철폐'로 인식되어야 할 정부의 정책이 이와는 정반대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줄푸세'의 향기가 진하게 어려있는 '규제완화(철폐)' 정책을 이리도 교묘히 뒤바꿀 수 있다니 마치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의 재림을 보는 것만 같은 놀라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박근혜 대통령이
"쳐부술 원수", "암 덩어리"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동원해가면서까지 사활을 걸고 있는 이 정부의 각종 규제개혁의 수혜자가 대다수 서민들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대기업 우선정책'의 낙수효과가 사실상 전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국민소득은 물론이고 거시경제지표에 등장하는 갖은 통계치가 실제로 서민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허수인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규제개혁을 통해 서민들이 이득을 보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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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박근혜 대통령이 쳐부셔야 할 '원수'이자 '암 덩어리'는 각종 규제철폐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정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질타해야 할 대상은 정부부처, 관료조직이 아니라 무엇보다 국정원이 되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불법부정선거를 자행하고 민주주의와 헌법질서를 유린한 것도 모자라 최근의 간첩조작사건에서 보듯 틈만 나면 비정상적인 엽기행각을 벌이고 있는 국정원이야말로 이 시대와 국민의
'원수'요,
'암 덩어리' 같은 존재들이 아닌가.
'규제철폐'의 당위를 부각시키기 위해 과격하게 자신의 감정을 노출시킨 그 속내도 뻔하지만 정작 해야할 일은 제껴 둔 채,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위선적인 모습이 보기에 거북하고 불편할 뿐더라 솔직히 이제는 화가 난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