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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깜깜합니다. 사실 요 며칠동안 이런 글 저런 글들 쓸 것을 미뤄놓고 있다가, 천안함 침몰 사고 때문에 온통 거기에만 마음이 쏠려 있었습니다. 어제는 여섯 시가 넘도록 우편배달을 해야 했고, 오늘부터는 성주간, 그것도 성삼일이 시작되는 날이라 성당에서 맡은 일도 해야 합니다. 토요일엔 제 출판기념회라는 것이 있는지라, 그 준비도 해야 하고... 실제로 할 일들, 그리고 쓰고 싶었던 글들은 이래저래 쌓아 놓고서도 그냥 인터넷으로 바다 건너만 쳐다보고 있는 형편입니다.
마음 좀 추스리고 누군가에게서 선물받았던 하와이산 코나 커피를 프레스에 담아 뜨거운 물 부어 놓았다가 한 잔 따랐습니다. 가볍고 경쾌한 커피입니다. 고소함이 톡 튀어오르는 커피 맛에 잠깐 정신차리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 놓고서, 잠깐 블로그에 글 올립니다.
쉬는 날이어서, 다행히 어제 과중한 격무에 시달렸던 근육을 좀 쉬게 해 줄수 있었습니다. 일도 일이지만, 엊그제 운동 가서 그동안 별로 운동하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략하겠다고 했다가, 이 나이에 알 배기는 바람에 고생 좀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편물을 배달하려니 몸이 말도 아니게 아팠습니다. 운동이라면 꽤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승모근과 견갑근이 아프다고 난리를 치는 건 장난이 아니더군요.
갑자기 우리나라 상황을 생각해봅니다. 왜 갑자기 어릴 때 보았던 만화 '주먹대장' 이 생각나는 걸까요. 김원빈 작가가 그리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괴력의 오른손을 가지고 태어난 이 소년은 불의를 보면 절대로 가만있지 않는 정의의 소년으로 그려졌지요. 만일 그 시대에 이 소년의 초능력 손이 '왼손'이었다면, 이 만화가 어깨동무에 그토록 오래 연재될 수 있었을까...? 라는 엉뚱한 생각이 드는군요.
운동을 하다 보면 좌, 우의 밸런스가 잘 맞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한쪽 팔이나 다리만 운동이 잘 되어 있다면 그것처럼 이상해 보이는 것도 없을 겁니다. 또 무거운 것을 들려고 해도 양쪽의 균형이 잘 맞아야만 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바벨을 들 때도 그렇고, 덤벨을 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쪽을 운동하면 다른 쪽도 운동해 주어야 몸이 균형있게 발전하지요. 물론 미세한 차이는 있습니다. 저도 오른손으로는 40파운드의 아령을 들고 암 컬을 할 수 있지만, 왼손으로는 35파운드를 들기가 힘이 부칩니다. 이런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꾸준히 훈련을 하는 것이고, 또 그러다보면 몸의 균형도 맞아집니다. 그런 차이는 바벨을 들어볼 때 압니다. 두 팔의 힘의 균형이 맞아야 바벨도 잘 들리는 것이지요.
가끔 운동하면서 목격하게 되는 건데, 트레이너들은 초보자들에게 균형을 잡는 연습을 시킵니다. 커다란 풍선에 몸을 맡기고 가벼운 아령을 드는 연습을 시킨다던지, 기우뚱거리는 납작한 큰 고무판 위에 아령을 들고 서 있게 한다던지 하는 것은 균형을 잡기 위한 연습입니다. 균형을 잡으려면 양 발은 물론 전신에 모두 힘을 줘야 합니다. 그러면서 온 몸의 근육이 긴장하게 되고, 골고루 발달이 되는 것이지요.
쉬는 날, 운동가겠다 마음 먹은 후 별 망상을 다 해 봅니다. 하지만 이건 분명합니다. 사람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고, 더 건강한 신체를 만들려면 균형을 잘 맞춰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는 균형이란 것이 너무나 모자라는 국가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발전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긴 이런 말로만으로도 충분히 '좌빨'로 몰아 부칠 수 있는 기형적인 눈, 그리고 몰상식이 난무하는 입을 가진 입들이 사회를 이끌어나간다는 것만으로도 그 극도의 우편향 신경의 기형성은 충분히 느끼지만.
다시 4월을 맞으며 이생각 저생각
우리나라는 이제 4월의 첫날을 기다리고 있겠군요. 여기는 아직 조금은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3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러나 4월은 어김없이 오는군요. 미국에 와서는 스물 한 번째 맞는 4월이기도 합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 그런 낭만과는 거리가 좀 있는 그런 4월입니다. 이미 져 버린 목련꽃 이파리들을 밟으며 모 기업 전산과에 근무하는 베르테르씨로부터 발행된 고지서를 역시 어떻게 근근히 공부하며 먹고살고 하고 있는 캐피탈 힐의 로테양에게 전해주는 게 제 일과에 보다 가까운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4월이 다가오는 브로드웨이와 벨몬트의 거리는 늘 거짓말 안 하고 제게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잔인한 4월이기도 합니다. 회상할 것들도 많고, 그 4월이 잔인함으로 다가오는 것은 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날카로운 햇살이 뜨락에 고옵게 부서져 나리는것을 느끼며 진한 커피 한 잔 마시거나, 꽃을 쓰다듬어주고 나서 잠자리로 들어가는 햇님의 흔적을 바라보며 와인 한 잔의 향기를 느끼는 낭만보다는 벼리고 벼린 이성의 칼날로 내 논리를 재단해야 함을 느끼는, 그런 잔인한 때이기도 합니다. 역사는 4.3 이라는 숫자로, 4.19라는 숫자로, 이 4월에 깨어 있을 것을 늘 종용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미명에서 깨어나지 못했다는 죄로 인해 우리는 계속해 이 4월이라는 의미를 곱씹어야만 합니다.
이 4월이 언제쯤 내겐 그냥 순전히 '축복의 달'로 느껴질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어머니, 나, 막내동생 등 가족 중 세 사람의 생일이 있는 달, 그리고 꽃이 피어나 거리를 덮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봄의 따뜻함이 가득한 이 달이, 언제쯤 그냥 그 달이 주는 날씨처럼 따뜻하게만 느껴질 수 있을까요. 철들고 나서 바라본 4월은 늘 가슴아팠는데, 아니, 난 아직도 철이 들지 않은 걸까요.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