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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현실 속에서 해결책이 없어 결국 자살로서 막을 내리는 연이은 보도들이 맘을 무겁게 짓누른다.신자본주의 물결속에서 빈부의 격차는 날로 심화되고 돈의 우상화는 더욱 높아만 가고 있는 것이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계의 현실이다.
물질만능의 체계속에서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결국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희망의 끈마저 놓아 버리게 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겟다. 혹자는 그럴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그 힘으로 어떻게해서라도 살아가도록 노력했어야지 라고 한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막다른 골목에 내 몰리는 심정을 당해보지 않고야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60~70년만 해도 ‘개천에서 용났다’ 라는 말이 통용되었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용이 날 수가 없다. 자본주의의 대부 미국도 빈부의 격차가 심해 하루의 교통비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공산권이 망하기 전에는 그래도 서로의 경쟁체제에서 공산권의 기본정책인 기초생활보장 노인복지 산업재해 의료혜택 등등으로 꽤나 괜찮은 혜택을 주었지만, 공산권이 무너진 후 부터는 경쟁의 상대가 없기에 서서히 깎기기 시작하여 상당부분 감소됐지만 그나마 아주 없어지지는 않았다.
생활보장비(웰페어) 700~800불을 매달 받고 사는 재미한국인 대부분의 노인들은 미국이 어느 자식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효자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사실 어느 자식이 매달 한번도 안 빼고 700~800불을 꼬박꼬박 바치겠는가?
한국노인들이 국가에서 거의 매달 1000불이상 보조를 해주는 노인아파트 에서 많이들 사시기 때문에 한국노인들 끼리 어울려 한국사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땅속에 묻힐 날이 얼마 안 남았어도 많이 배우고 돈많은 사람들은 항상 우쭐대며 자랑하기에 못 배우고 자식들이 가난한 사람들은 기가 죽어 산다.
은행에 돈이 대략 1000불 이상 있으면 웰페어를 받을 수 없기에 이들은 은행에 하나도 없이 가장을 하면서 그토록 부자라면서 정부에서 타 먹는다. 대부분 이들이 받는 것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서류를 그럴싸하게 작성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미국사람들은 웰페어 수혜대상에 해당되지 않을 뿐 아니라 받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 거의 평생 일을 하고 늙으막하게나마 편하게 살아야 하는데 약값이 더 싼 멕시코나 카나다에서 약을 사 먹어야 되는 현실에 투덜대기는 하지만 웰페어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미국의 노숙자 20% 이상이 대학 졸업자들이라는 소리를 오래 전에 들었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노숙자가 된 사람들 중 내가 아는 한 사람은 공대를 졸업하고 다른 주에서 오래 살다 1980년대 경기가 극심하게 침체 되었을때 직장에서 파면이 되어 이곳 로스엔젤레스로 와서 직장을 찾아보았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길거리 신세를 져야 했다.
내가 살고있는 타운 하우스도 한국사람이 살다 은행에 이 집을 뺏겨 쫒겨나 내가 들어와 살게 되었다. 내 바로 옆집도 내가 이사온 지 며칠후에 미국인이 그집을 은행에 뺏겨 쫒겨나는 모습을 보았다.
이곳에서는 집을 살때 직불로 사는 경우가 없고 30년간 매달 집값을 내는데 3~4달만 밀려도 은행에서 집을 뺏어간다. 직장에서 쫒겨난다면 내가 길거리 노숙자 신세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불안한 삶이다.
운이 좋아 부모의 재산을 많이 물려 받아 일생을 신나게 보내는 사람들이 소수있지만 대부분은 엄청나게 비싼 의료보험, 몇달 내지 못하면 은행에서 빼앗아가는 월부금 집값을 걱정하며 사는 것이 또한 자본주의 대부라는 미국의 생활이다.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도 소득 격차는 아주 심하다. 전에는 병원에서 필요한 기본 요소인 세탁, 병원에서 쓰는 많은 기계들 , 병원 청소부 등등이 병원에 속했지만 지금은 다 따로따로 임대를 하고 있다.
이런것들을 하청으로 임대주기 전에 어느 한 청소부 아줌마가 병원 세탁부에서 20년이상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을 다른 업체가 임대 하청받는 바람에 그 여자의 직장이 떨어져 다른 하청 업체의 청소부에 들어가 종목은 틀리지만 계속 같은 병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월급이 얼마나 되냐고 물었더니 20년전과 마찬가지로 최저 임금 그대로 라고 했다. 순간 나 자신도 모르게 너무 화가 치밀고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속으로 욕을 했던 적이 있다 . 노동의 강도는 훨씬 높아졌는데 그 댓가는 너무 박하다 못해 줄어든 셈이다. 그러나 이런 제도에 익숙한 사람들은 아무 생각없이 숙명처럼 받아 드리고 산다.
요사이 미국에서 노조가 점점 없어지고 있는데 노조가 없는 병원은 노동자가 봉이다. 해고라는 칼질을 마음대로 해 대어도 꼼짝없이 당한다. 노조가 있는 곳에서는 병원 노동자들을 함부로 다룰 수가 없다. 노조안에는 쌈박질 잘하는 변호사가 있기에 업주측에서도 법이라면 두려움을 가지기 때문이다.
미국이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똑 같이 대외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침략과 강탈이라는 악랄한 정책을 쓰지만, 미국 국내의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과 달리 법이 살아있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존중되기에 그나마 한국과 같이 개판은 아닌 것 같다. 복지 제도가 옛날만 못하지만, 노인복지를 할때 자식들하고 절대로 연계시키지 않고 노인들에게 자식을 핑계삼아 안되니 되니 하지 않는다.
어쩌다 알게 된 사람이 정신병으로 인해 가정이 완전히 붕괴된 사람이 있다. 그의 정신병으로 단 하나밖에 없는 대학생인 착한 딸을 그의 손으로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고 시도했으나 질긴 목숨이 되어 아빠는 살아서 지금도 정신병 감옥소에서 10년이상 치료를 받고있다.
정신병약을 거의 30알을 매일 먹고, 자살 방지 차원으로 24시간 1:1간호사가 지키는 간호를 받고 있다. 그 치료비와 인건비가 적어도 일년에 수 백만 달러 이상일 텐데 땡전 한잎 없어도 치료를 받고 있다. 그것은 나를 놀라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 한국같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을 것이다.
바른 말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매도하는 사람들이 자식 죽인 정신병자를 사람 취급하겠는가? 이러한 특별한 케이스 외에는 이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불안을 느끼며 살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불안 속에서 살면서 몇년 있었던 독일에서의 삶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독일같이 구멍가계나 대형 백화점이나 동등한 혜택을 받는 제도가 얼마나 이상적인가?
내가 70년대 초에 독일에 도착하자 마자 놀란것은 간호 보조원의 월급이 정식 간호원보다 더 많다는 것이 었다. 화가 난 우리 한국 정식 간호원들이 항의하듯이 왜냐며 시비조로 물었더니, 너희들은 자식이 없지만 이 보조 간호원은 자식들이 있고 가정을 꾸려 나가야 하기에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며, 오히려 묻는 사람이 이상하다는 듯 말을 했다. 그래도 이해할 수가 없었으나 한참 후 미국에서 살면서야 그 제도가 얼마나 인간 세상을 밝게 해주는 제도인가를 깨달았다.
외과 의사 킬 대학교수로부터 초대를 받고 방문했던 그의 집과 간호보조원의 초대를 받고 갔던 집을 비교할 때 간호보조원집이 더 멋있고 좋아서 놀란 적도 있다. 박사학위 몇개를 받으나 청소를 하나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제도, 병원의 혜택을 누구나 똑같이 누릴 수 있는 제도야 말로, 우리가 ‘무엇을 먹을 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제도가 아니겠는가?
국민들이 돈이 없어 죽어야 하는 사회라면 그런 정부는 없어져야 한다. 왜 정치하는 부정부패한 매국노들은 그 많은 혈세를 처 먹고 정경유착으로 배를 채우면서도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벼랑으로 떨어트릴 수 있단 말인가?
이들을 죽음으로 내 몰아 간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