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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 가슴아픈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삶의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세 모녀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으며 마음이 아팠는데, 이 이후로도 계속해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한 참변의 소식을 들으며 왜 한국사회가 이렇게까지 갔는가 하는 생각을 안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삶, 그 생활이 이렇게까지 구석으로 몰리고 있는데 복지는 구호로만, 그리고 약속은 안 지켜지는 이 사회가 어디까지 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나오는 동안 사회는 뭘 했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특히 한국에 그렇게 많다는 교회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순복음교회의 조용기목사가 교회 돈 130억을 횡령했다는 혐의에 유죄를 받았습니다. 대형 교회들은 자기들 돈 벌고 돈 잃는 일에는 눈을 번쩍거렸으나 사회를 돕는 일엔 인색했던 모양입니다. 옆에 이런 이웃들이 죽어가도 바라보기만 하는 종교단체들이 과연 사회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될 수 있을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울러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의 팍팍함은 결국 이웃들에게 옆눈을 주는데도 인색했고, 이런 우리들이 이웃들을 죽게 만든 것이기도 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가슴은 무척 무겁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까지 팍팍해졌구나 하는 생각을 안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의 배경은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작용합니다. 레이거노믹스 등장 이후 신자유주의 사회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효율과 이윤 창출이라고 역설해 왔고, 이같은 사고를 사람들에게 강요해 왔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사회주의 사회와의 체제 경쟁을 하면서 해 왔던 분칠은 결국 구소련과 현실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이후에 더 이상 가면을 쓸 필요가 없었던 자본주의가 그 무서운 맨낯을 드러낼 수 있게 해 주었고, 그것은 각종 복지혜택을 없애고, 사회 안에 장치되고 있었던 각종 안전장치들을 철거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사람들의 삶의 질을 급전직하시켜 버렸습니다. 경쟁은 원래 사회를 건강하게 하지만, 그것의 출발선이 다른 경우 경쟁은 경쟁으로서의 의미를 잃게 됩니다. 신자유주의의 도래 및 발전은 결국 경기장 자체를 기울여 버리는 것으로 결론이 지어졌고, 이 경기장에서조차 쫓겨난 사람들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힘든 개인들에게 "자살이란 말을 뒤집으면 '살자'야. 생각 고쳐먹고, 지금 살자"고 말해봤자, 지금의 이 극단적인 경쟁사회, 양극화가 갈데까지 가고 있는 사회에서는 먹힐 수 없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의지와는 관계없이 사회에서 그들을 못 받쳐준 죄로 인해 스스로의 미래를 포기하게 될 겁니다.
이런 사회 안에서, 우리가 기대야 할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일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시민들이 연대하고 정치에 참여하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것만이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길이 될 것이라는 생각, 안할 수가 없습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