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생활고에 시달린 세 모녀가 공과금 70만원이 담긴 봉투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많은 국민들이 이 사실을 접하고 우리 사회의 열악한 복지체계와 사회 안전망을 한탄하며 안타까워 했다. 이들 중 더러는 정부를 비난하고, 더러는 민생은 외면한 채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했던 정치권을 성토하기도 한다. 또 한편에서는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며 물질만능에 매몰된 사회공동체의 이기주의를 탓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이며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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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사건·사고에 대한 다양한 원인 분석과 방법론 도출의 일반적 도식은 우리사회의 오래된 미덕 중 하나다. 이는 아주 아주 오래 전 호랑이가 담배 피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관습이자 관례이며 풍조다. 이 일반적 도식은 정형화된 패턴을 수반한다는 특징이 있다. 먼저 언론과 방송이 구멍뚫린 사회안전망에 문제를 제기하면 마치 그동안 전혀 모르고 있었던 일이라도 되는 양 여론이 가마솥처럼 들끓는다. 그리고 그제서야 관련 당국은 규정을 점검하고 대책마련에 동분서주한다. 가끔 사안의 여파에 따라 장관이나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고 유감을 표명하며 사후대책마련을 위한 정부 당국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기도 한다.
이번 세 모녀의 비극적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 사회의 대응방식 역시 과거의 고전적인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언론과 방송, 여론, 관련 당국의 기막힌 콤비플레이 결과, 우리 사회의 열악한 사회안전망을 점검하는 한편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층을 돌아봐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진화를 멈추고 더 이상 구체화되지도 나아가지도 않는다.
세 모녀의 자살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제(2일)와 어제 잇따라 3건의 가족동반 자살사고가 발생했다. 모두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이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JTBC 뉴스는 어제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생활비관 자살과 관련해 이 사건을 다시 한번 돌아 보고 정부의 대책을 소개하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냈다. 방송에 따르면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일제조사를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3월 한달 동안 지자체 사회복지사 공무원들이 직접 돌아다니며 복지 사각지대 계층들을 찾아서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행 체계상 사회복지사 2명이 무려 3만 명을 조사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번 조사에 대한 실효성 문제가 대두된다. 또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획일적인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 현 복지시스템 하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번 세 모녀 역시 현 복지시스템에 의하면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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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소득불균형에 따른 사회양극화 현상, 급격한 인구 노령화, 사상 최대의 가계부채, 비정규직 문제, 자영업자 몰락, 고용 불안, 실업률 증가 등등의 사회구조적 문제들은 우리사회의 열악한 복지시스템과 맞물려 시간이 갈수록 벼랑끝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을 양산할 수 밖에는 없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사회의 복지체계를 이끌어 왔던 고전적 시스템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우리사회가 그동안 고수해 왔던 메뉴얼로는 도무지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기본소득제가 시행되고 있었다는 가정을 해 보자. 지난 2월 23일 발족된 '기본소득 공동행동'의 수정안에 따라 일인 당 30만원씩의 기본소득이 저 모녀들에게 지급되었다면 어땠을까? 90만원의 돈은 물론 그리 큰 돈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절망의 나락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삶을 지탱해 줄 단비같은 가치를 지니는 돈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디 비단 이들 뿐일까? 지난 2일과 3일에 목숨을 끊은 사람들 역시 기본소득의 혜택을 받았더라면 그리 허망하게 삶의 동아줄을 스스로 내려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 모녀의 죽음, 그리고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생활비관 자살에 대처하는 우리사회의 대응방식은 과거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JTBC 뉴스의 보도 내용이 이를 확인해 주고 있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이와 같은 대응 방식이라면 10년 뒤에도, 100년 뒤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그 절망적 상황이 우리 자신을 비켜갈 것이라는 근거없는 낙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를 고수하는 한 누구도 이 비극적 상황으로부터 예외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복지시스템의 고전적 방식을 탈피할 혁신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가 기본소득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이자 당위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