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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봇물 터진 출판 기념회에 축사 초청을 받아 다니다 보니 공통점 하나가 눈에 띈다. 후보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개천에서 난 용'들이란 점이다.
예컨대 경기도 성남시장 재선에 도전하는 민주당 이재명 시장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개천 용'이다. 안동에서 12살 때 성남으로 이주해 목걸이 공장과 구두 공장 시다(조수)로 밥벌이를 했고, 프레스 공장에 다니다가 프레스 기계에 팔이 끼는 바람에 장애인이 됐다. 중고등 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선거에 두 번 떨어지고 세 번째 도전에 성공했다.
얼마 전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변호인'의 주인공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도 긴 설명이 필요없는 개천에서 난 용이다.
60~70년대 절대 빈곤의 시대를 통과한 세대들에게 가난은 고통스러웠지만, 희망을 빼앗지는 못했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랐어도 꿈과 열정이 있으면 기회의 사다리를 타고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목표를 향해 오를 수 있었다. 따라서 지금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개천에서 난 용'들인 셈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 문제가 발생했다. 앞으로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이 줄어들거나 아예 사라지게 됐다는 점이다. 증거를 하나 들어보자. 얼마 전 미국 포천지에 미국 100대 부자 명단이 소개됐다. 1등 빌 게이츠 재산 80조, 2등 워런 버핏 재산 60조.. 이렇게 발표된 100대 부자 100명 가운데 90명이 자수성가였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본인이 맨주먹으로 일어선 부자가 90%였다. 유산을 물려받은 대물림 부자는 10명, 10%였다. 빈부격차의 확대 속에서도 미국이 아직 역동성을 유지하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경제잡지에 100대 부자 명단이 소개됐다. 놀라지 마시라. 한국의 100대 부자 가운데 95명이 대물림 부자이다. 자수성가는 5명뿐이었다. 그 5명도 50 등 안에는 한 명도 없고 모두 50 등 밖이었다. 한국에서는 더는 개천에서 용 나기가 힘들어졌다는 대표적 증거다.
IMF 경제 위기 때 30대 재벌 대기업의 절반이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메운 것은 상위 재벌 기업의 형제자매들이었다. 벤처 기업이 중견 기업이 되고, 중견 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기업 생태계가 만들어지기보다 덩치 큰 상위 몇몇 재벌 기업이 문어발식 확장을 거듭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사회가 신분 이동이 자유로운 역동적 사회로부터 콘크리트처럼 딱딱하게 굳은 기득권 사회로 변해버린 것이다.
지난 30여 년간 세계적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우리 사회도 빈부 격차 심화와 양극화로 치달았다. 신자유주의에서 자유는 인간의 자유가 아닌 돈의 자유를 의미한다. 돈이 전 세계를 자유롭게 휘젓고 다니며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금융을 자유화하고, 국가 기간산업을 민영화하며, 까다로운 규제를 풀고, 기업이 사람을 자르고 싶을 때 마음대로 자를 수 있도록 정리해고를 자유화하는 것을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그 결과 나타난 현상이 승자 독식의 세상이요 양극화 사회다.
우리 사회에서 신분 상승의 중요한 사다리는 교육이었다. 옛날에는 부모의 재산이나 학력과 상관없이 꿈과 열정이 있으면 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한 달 2백만 원짜리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와 서민층 가정의 아이 사이에는 유년 시절부터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 부모의 수입과 재산 등 조건이 아이의 장래를 결정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이 화두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희망이 없어진 사람들이 국가에 대해 치워진 사다리를 다시 세우라고 요구한 것이 경제 민주화였고, 개천을 큰 강물로 만들어 용이 되지 않아도 큰 물고기든 작은 물고기든 같이 자유롭게 헤엄치며 살 수 있도록 만들라는 요구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
경제 민주화는 소유구조의 민주화, 시장행위의 민주화, 노동과 금융의 민주화 등 종합 처방이 필요하지만 우선 피부에 닿는 것은 불공정 하도급 거래를 혁파하고 재벌의 골목 상권 진출을 억제함으로써 승자 독식 대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같은 약자도 함께 살자는 것이다. 우리 헌법에도 경제력 집중과 시장 지배력의 남용을 막기 위해 국가가 규제와 조정을 하라고 헌법 119조 경제 민주화 조항에 나와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민주화가 이미 끝났다고 말한다. 이제는 경제 민주화가 아니라 대기업의 기를 살리는 경제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렇게까지 말한다. "규제 개혁이라고 쓰고 일자리 창출이라고 읽는다." 이 말은 잘못이다.
국민 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는 관료주의적 규제는 마땅히 혁파해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에 대한 규제는 그냥 있는 게 아니다. 강자의 횡포와 독식을 견제하기 위해 있는 경우가 많다. "규제 완화라고 쓰고 재벌 독식이라고 읽는다"가 맞지 않을까.
규제를 풀어 의료나 철도 같은 공공 분야를 대기업의 돈벌이 영토로 내주고 재벌 대기업이 돈을 더 많이 번다고 일자리가 넘치고 국민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양극화만 더 심해질 뿐이다. 오히려 보건의료 같은 공공 분야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열악한 사업 환경을 개선해 중소기업의 기를 살려 주는 것이 경제를 활성화하는 대안이다.
<정 동 영:전 통일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