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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어나 신문 뉴스를 훑어보다 군에서 일어난 병사의 사망이 군에서 발표한대로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 아니라 구타와 협박으로 인한 자살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그 병사가 소속한 여단장이라는 자는 죽은 병사를 위해서 들어온 조의금을 병사 사망관련한 일을 처리한 군인들의 회식비로 지급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분노한 네티즌들이 이런 군의 비행에 댓글을 달아 항의를 하고 질타를 하고 있다. 사실 군에 가본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이런 일 우리 군에서 특별한 일은 아니다.
군이야 말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공정성과 정직을 생명으로 해야 하지만 사살은 우리 나라 각 부처중에서 가장 썩은 집단이 군이다. 힘과 돈의 역학관계가 가장 두두러진 사회가 군이다. 그런 이유로 국민들은 국민의 의무로서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군에도 가고 자녀들을 군에 보내지만 할 수 있으면 군에 보내려고 하지 않는다. 나도 자식을 키우기 때문에 젊은 청춘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장 먼저 그 부모들이 어떻게 살가갈까 하는 생각부터 든다.
남들이야 한줄 기사를 보면서 씁쓸한 기분을 느끼면서 일회성으로 지나가지만 희생된 자녀의 부모들은 죽은 목숨이나 같다고 봐야 한다. 자식을 비명에 가게 하고 부모가 입에 넣는 음식이 맛이 있을 수 있으며 한순간인들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까. 나오는게 한숨이요 흐르는게 눈물이 아니겠는가. 가까운 형님 중에 자식을 캐나다에서 교통사고로 잃은 형이 있다. 늘 긍정적이고 열심으로 산 형이지만 그 일 있고 온 몸에서 힘과 혼이 나간 사람이 되었다. 그 내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좀 오래 되었지만 학교에서 대학원 논문을 준비하던 아들이 집에 올 시간이 넘었는데 들어오지 않아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는 받지 않은데 전화 속에서 무슨 소음이 들리고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하는 아들이 언젠가 자전거 타다 넘어져 온 몸에 타박상을 입고 몸에 시퍼런 멍이 들어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아차 이번에도 자전거를 타고 오다 길에서 넘어져 꼼짝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혹 길에 떨어진 핸드폰에서 소음이 들려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온 몸이 떨리고 당황스러워서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잠자리에 들었던 집사람도 깨서 어떻게 해 어떻게 해 우리 아들 어떻게 해 하면서 벌써 무슨 일 일어난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경찰서로 전화를 해야 하나 방송국으로 전화를 해야 하나 학교로 전화를 해야 하나 당황만 했지 어느 것 하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시간이 지난 뒤에 전화가 연결되어서 "너 괜찮니" 했더니 "왜 무슨 일 있어요" 했다. 더러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핸드폰이 보턴이 눌러져 그런 일이 있다면서 말이다. 자정이 다 된 시간 집에 오려고 학교에서 나오는 중이라 했다.
아무 일 없이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 때 내 생각이 자식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모든 부모들이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퍼렇게 살아 뛰어들어간 아들이 군에서 싸늘하게 죽은 시체로 돌아왔을 때 그 부모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런 부모들의 심정을 100 분의 1 이라도 1000 분의 1 만분의 1 이라도 이해를 한다면 군에서 안전사고가 되었든 자살이 되었든 최선을 다해서 부모의 심정으로 그런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어디 우리 군이 그러는가 지휘관들은 가장 먼저 부모나 당사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책 그리고 진급에 지장이 없는가를 먼저 살피는 것이 상례화 되어 있다.
할 수만 있으면 감추고 숨기려 한다. 그동안 우리 군에서 일어난 수많은 의문사들..군이 정직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기 때문에 그 부모들은 감추고 숨기는 군을 상대로 사인을 밝히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동분 서주를 하고 항의를 하고 호소를 하고 울부짖는 일이 얼마니 많은가. 사안이 다르긴 하지만 내 친구중 35 년간을 군 생활을 하고 군에 들어가기전 젊은 혈기로 싸움질하여 집행유예 된 일로 불명예 제대를 당한 그 친구가 억울함을 호소를 하고 겨우 얻어낸 유리한 일심 재판의 결과를 뒤집으려고 군 검찰이 항고를 했다. 그는 지금 죽을 힘을 다해서 버티고 견디면서 상급심을 기다리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도 분통이 터지는데 당사자가 이 일을 견디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이런 일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 사회 우리나라엔 억울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 원인이 자신에 있든 사회에 있든 억울함을 풀길이 없어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억울함을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목슴을 끊어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부모들에게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 하나 따는 일에 환호를 하고 기뻐했던 국민들이 억울함을 호소할 길 없어 자살을 택하는 이 서글픈 현실들..
우리 사회의 억울함을 호소할 길 없는 사회적 약자들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 아직도 지하 단칸 셋방에서 연탄 난로에 의지하면서 사는 수많은 국민들. 아궁이에 불을 붙여서 난방을 해결해야 하는 산골 노인들..이들에게 대한민국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가난한 국민들의 가느다란 희망을 표로 바꾸어 대통령이 되고 돈이 없으니 못 주겠다는 대통령을 둔 나라..이런 나라가 국민 소득 4 만불을 달성을 하고 남북 통일이 된다한들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가슴에 분이 나서 견딜 수가 없고 가슴을 치면서 통곡하고 싶은 이 현실을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