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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이었을 게다. 아니면 연초였던가.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 위치한 어느 호텔의 커피숍에서 급하게 약속이 잡혔다. 그런데 중간에 혼선이 빚어지는 바람에 한 시간 넘게 혼자 커피숍에 앉아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을 기다려야 했다. 설렁탕 2인분이나 자장면 세 그릇 가격에 해당하는 찻값이 아까웠던 터라 나는 그곳 여직원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독서에만 전념하려 애를 썼다.
일요일 저녁의 호텔 커피숍은 몹시 한산했다. 위쪽의 객실 상황은 어땠는지 몰라도. 손님이라고는 나와 건너편의 또 다른 탁자에 자리 잡은 사내들이 전부였다. 나나 사내들이나 커피숍 구석에 있었으므로 그들의 대화 내용을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사내들의 정확한 숫자는 떠오르지 않지만 네 명이나 다섯 명쯤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휴일 저녁이어서인지 사내들은 모두 정장 차림새가 아닌 캐주얼 복장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골프복 같기는 한데 나는 정식 골프장은 고사하고 화면 보면서 골프채 휘두른다는 스크린 골프 연습장에도 들러본 적이 없으므로 뭐라 확언은 못하겠다. (골프와 관련된 족속들이 여전히 진보개혁 진영의 거물로 설쳐대는 걸로 보아서 민주당과 그 외곽의 이른바 시민사회단체 인간들이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는 점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강북의 평범한 월급쟁이들이 일요일 저녁에 편안한 옷차림으로 강남의 호텔 커피숍에서 호기롭게 수다를 떨지는 않으리라. 따라서 나의 얘기는 사내들이 강남 지역에 거주하는 부유층이나 중산층은 된다는 전제 아래 진행되고 있음을 알아주시기 바란다.
누가 한국사회를 정치 과잉이라고 비판했던가? 사내들은 내가 커피숍에 앉아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조금의 과장도 보태지 아니하고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오로지 주식뿐이었다. 증권이 주제에 오르지 않은 순간에는 부동산이 자리를 차지했다. 아이들 교육도 잠깐 화제로 등장한 듯하다. 어쩌면 그들이 몰두해 나눈 땅 얘기도, 주식 이야기도 결국에는 자기 자식들의 장래를 위한 것이었으리라.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는 사람이 책 한 권을 내게 선물해주었다. 이계안 씨가 저자인 ‘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였는데 선거 시기에 숱하게 나타나는 그저 그런 홍보용 책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약간은 들었다. 그럼에도 우석훈 씨의 추천사에 담긴 요 대목만큼은 꽤나 호소력 있게 다가왔다.
“개돼지의 사회에서도 ‘자기 새끼’만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 2010년, 새롭게 맞는 10년이 그런 개돼지들의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에듀 파파’란 게 있단다. 언론이 전하는 모습은 이러하다. “중산층 이상의 40대 고학력ㆍ전문직이 많다. 직접 공부를 가르칠 실력이 있고 다양한 사회 경험을 전해줄 능력도 있는 이들이다. 특히 자녀를 특목고나 명문대에 보내고 싶은 의욕이 강하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자기 새끼만을 위해서 사는 개돼지 같은 놈들이라는 소리다. 그냥 알아듣기 쉽게 개나 돼지라고 부르면 될 것을 왜 굳이 ‘에듀 파파’라는 국적 불명의 콩글리시 단어까지 동원하는지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자녀를 특목고나 명문고에 보내려면 무조건 돈이 필요하다. 개에게는 뼈다귀가 필요하고, 돼지에게는 꿀꿀이죽이 필요하듯이, 소위 에듀 파파들에게는 돈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중산층 이상의 40대 고학력 전문직 남성은 백이면 백 재테크에 열중하기 마련이고, 그러한 재테크에 활용되는 기본 수단은 당연히 땅과 주식, 즉 부동산과 증권이다.
여기서 나는 치명적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자기 새끼만을 위해 살아가는 40대 고학력 전문직 남성을 정치적으로는 어떻게 호명하는지를 말이다. 정답은 너무나 진부하고 상식적이다. 386세대!
386세대란 무엇인가? 주식 투자와 부동산 재테크로 큰돈을 벌어서 자기 자식만큼은 특목고와 명문고에 보내기 바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위장에 술만 들어갔다 하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노래하는 세대다. 신랄하게 묘사하면 떼거지로 정신분열증 걸린 집단인 셈이다. 위선으로 똘똘 뭉친 386 세대의 정신분열을 가장 적나라하게 상징하는 정당이 바로 민주당이다.
그 빌어먹을 정신분열은 정당의 경계를 넘어서 언론매체에까지 고스란히 전염되고 말았다. 삼성을 비판하는 기사와 노무현 정권을 옹호하는 칼럼을 나란히 싣고서도 전연 모순이나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한겨레신문이나 오마이뉴스를 보시라. 완전 정신병자들 집합소다.
생활정치! 상당히 오래 전부터 스스로를 진보진영과 개혁세력의 일원으로 자부하는 인사들이 거의 입에 달다시피 하고 다니는 화두다. 이 화두는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촉발시킨 무상급식 논쟁을 계기로 단순한 정치적 의제를 벗어나 신앙적 교리로 승회된 분위기다. 신앙적 교리의 특징은 아무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의를 제기하자마자 그를 기다리는 건 파문과 이단의 딱지다. 운이 나쁠 경우에는 화형대에 올라설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이단이 되기로 작정했다. 백령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천안함과 함께 생활정치도 침몰했음을 직감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천안함의 침몰 원인은 여전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실종된 해군병사들의 생사 여부도 불분명하다. 군함을 건조하려면 많은 돈이 든다. 미국 같은 부자나라들조차 함정의 수명을 연장하는 개장공사를 빈번히 벌이는 이유다. 하지만 배는 돈만 있으면 언제라도 만들 수가 있다. 반면 50명에 가까운 청년들의 목숨은 우리가 신이 아닌 이상 빚어낼 길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구조작업 과정에서 UDT 대원 한 명이 희생되기까지 했다.
북한이 개입했든, 선체에 결함이 존재했든 천안함 침몰 사건의 본질은 국가안보다. 허나 이번 사건 앞에서는 모두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서 허둥지둥하고 있다. 지금이야 이명박 정권을 공격할 좋은 구실로 보이지만 천안함 사고는 궁극적으로 정파와 이념을 초월하는 국가의 안위 문제로 귀착된다. 사고가 아니라 사태가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북한이 전혀 무관한 일이라 하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백령도도 독도도 대한민국 영토다. 한국해군의 주력함 한 척이 침몰한 것과 때맞춰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다시금 우기기 시작한 건 결코 우연의 소산이 아니라 하겠다.
국가의 존립과 관련된 문제를 무난히 해결하려면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나 효과적 체제 가운데 최소한 한 가지 요소는 갖추어야 한다. 천안함 사태에서 쓰라리게 드러난 사실은 우리한테는 리더십도 시스템도 부재하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