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안타까움에 그랬을 것이다. 대통령 취임 1년이 다 되어가는 아직까지도 지난 대선의 불법과 부정에 항의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대선결과에 불복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틈만 나면 지난 대선이 부정선거였다고 볼멘소리를 해대고 있는 민주당의 태도가 영 탐탁치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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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 의혹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국가기관은 물론이고 정부여당, 경찰, 검찰, 사법부까지 모두가 관련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마당에 정부의 윽박과 겁박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지난 대선의 공정성 문제가 붉어지고 있는 것에 짜증도 나고 화도 났을 것이다. 그리고 대를 이어가며 부정선거시비에 휘말리고 있는 박 대통령에 대한 측은지심도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새누리당 한기호 최고위원이 이를 보다 못해 결국 한마디를 했다. 그런데 이 한마디가 결국 스스로 제 무덤을 판 꼴이 되어 버렸다. 자승자박이 따로 없다.
새누리당 한기호 최고위원이 24일 오전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대선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특검을 주장하며 장외투쟁에 나서는 등 대선불복 이유를 내걸고 세월을 보내고 있는 민주당은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고 승복한 김연아 선수에게 배워야 한다"고 작심한 듯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소치올림픽 피켜스케이팅의 편파판정에도 불구하고 의연한 대처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김연아 선수의 대승적 태도를 민주당과 국민들이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포츠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오심논란에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라며 불만족스럽더라도 경기결과에 승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그럴까? 오심에는 경기결과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사전에 계획된 의도적인 오심이 있는가 하면 심판의 단순 실수에 의한 예기치 않는 오심 두 가지가 있다. 김연아 선수의 경우는 지금까지 드러난 전후 사정을 살펴보건데 전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전에 계획된 오심에 대해 해당 선수가 이를 바로 잡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 면에서 김연아 선수의 대처는 매우 합리적이었으며 대단히 영민했다.) 이럴 경우 해당 선수가 속해 있는 팀, 협회, 연맹, 체육회 등이 나서서 판정에 항의하고 제소하는 등의 후속 조치를 취하게 된다. 만약 의도된 오심으로 판명났을 경우에는 해당심판의 자격정지는 물론이고 재발방지를 위해 다각도의 방안들이 강구되는 등 대단히 엄격한 사후예방조치가 시행된다.
그런 측면에서 위에서 언급한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라는 의미는 심판의 실수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 경기결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의도된 오심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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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기호 최고위원은 김연아 선수의 예를 들면서 "아쉽고 서운하겠지만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고, 위로받아야 할 김연아 선수가 오히려 국민들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면서.."라며 김연아 선수처럼 대선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연아 선수를 민감한 정치문제에 끌어들이는 것도 문제지만 자신의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김연아 선수의 선의를 왜곡하는 '일반화의 오류'뿐만 아니라 이를 교묘히 대선승복과 연계시키는 '본말전도의 오류'마저 보여주고 있다.
한기호 최고위원의 발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하고 차갑기만 하다. 스스로 지난 대선이 부정선거였음을 자백하는 꼴이라며 한 최고위원과 새누리당,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혹 떼려다가 오히려 혹 하나를 더 붙인 격이 되어 버렸다.
한기호 최고위원의 '양심선언(?)'으로 어쨌든 한가지는 다시 명확해진 느낌이다.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 있고, 어떤식으로든 반드시 밝혀지게 되어 있다는 사실 말이다. 잠시 잊고 있었던 삶의 진리를 환기시켜준 한기호 최고의원의 발언이 그래서 반갑고 고맙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