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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안철수였다. 국민에게 한 약속은 무슨 희생을 치루더라도 지켜야 한다. 구태정치를 타파하겠다는 새정치 연합이, 구태정당이 자당의 이익을 위해서 대국민공약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구태를 그대로 따라서 한다면, 어찌 당명에 새정치란 이름을 쓸 자격이 있겠는가?
새누리당이 대선 때 국민에게 한 공약은 표만 의식한 사기질이었던가? 국민에게 공약하면서 헌법관련 조항도 검토하지 않았었나? 새누리당이 정당공천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위헌요소가 있기 때문에 이행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또 한 번의 극악한 대국민 사기질이다. 2003년 헌재의 위헌 판단은 <기초의원 선거에서 출마자의 정당표방 금지>에 대해서 내려진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기초의원이 출마할 때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을 표방하는 것을 금지한 법률이 잘못되었다>는 것이지, <정당이 자당의 후보들을 공천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란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닌데도, 새누리당은 국민을 현혹시켜 <정당공천 폐지는 위헌>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론을 만들어 낸 것이다.
사실 새누리당이 정당공천 폐지를 철회하려고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현재 전국의 기초의원과 기초단체장의 경우 상당수를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만 예를 들어도 시의원 119명 가운데 민주당 시의원이 79명에 달하고, 25개 구청장 가운데 민주당 구청장이 21곳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를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지만, 민주당의 지지율은 패거리 정치로 인한 총선, 대선패배 후에 국민이 불러 낸 안철수 새정치연합의 등장과 더불어 급락한 반면, 새누리당은 50~60%에 이르는 박근혜 지지율에 힘입어 민주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공행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천이 폐지되면 당대당의 싸움이 아니라, 인물경쟁이 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현역이라는 이점을 갖고 있는 민주당 후보들이 우세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새누리당은 당에 대한 높은 지지율을 발판으로 인물 경쟁이 아니라 당대당 경쟁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대선공약 파기라는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기초선거에서의 정당공천 폐기를 원천무효화하려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기초선거 공천을 강행하겠다는 새누리당의 입장에 대해, 민주당도 “새누리당이 공천한다면 민주당만 공천폐지를 할 수는 없다”는 방침이다. 최재천 민주당 전략홍보본부장은 23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초의원과 기초단체장 모두 공천을 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최고위원회 의결과 공식 발표만 남았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기초선거 공천을 할 경우에는 민주당 역시 대선공약 파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의 공천강행을 전제하여 민주당이 공천하려는 이유는 뭘까?
//현행 정당공천제가 유지될 경우, 새누리당 1번, 민주당 2번, 통합진보당 3번, 정의당 4번 등을 받게 된다. 그러나 민주당만 ‘무공천’할 경우엔 투표용지에서 ‘기호 2번 민주당’이 빠지고, 민주당을 탈당한 출마자들은 지역마다 난립한 다른 무소속 후보들과 함께 무작위 추첨제로 기호를 받게 돼 인지도가 떨어지는 등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민주당 서울시당 관계자는 “기초선거에서 무공천할 경우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후보자들이 서로 힘이 돼주는 상승효과가 사라져 5% 이상의 지지율 하락이 예상된다”며 “이 경우 수도권 선거는 새누리당 후보에게 모두 패배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민주당이 무공천을 할 경우, 현재의 공직선거법이 유지된다면 현직 시·군·구 단체장 및 기초의원 후보군과 측근들을 합쳐 1만명 내외의 인사들이 탈당을 감행해야 한다는 점도 ‘공천 불가피론’에 힘을 싣고 있다. 한 명의 당원이 아쉬운 상황에서 이처럼 많은 당원의 이탈은 지방선거 포기 선언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광주일보)//
그렇다면 기초선거 무공천을 선언한 안철수 새정치연합의 경우는 어떤가? 기초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이 공천을 하게 된다면 기호 5번을 부여받게 되어 새정치연합 지지자들은 모든 선거에서 무조건 5번만 찍으면 되었으나, 무공천으로 인해 다른 무소속 후보들과 함께 추첨을 통해 기호를 부여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기호로 이득볼 일은 없어지게 된다. 더군다나 어느 후보나 특정정당을 지지할 수 있다는 헌재결정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무소속 후보들이 선거 홍보물에 새정치연합 지지를 표명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일반 국민들이 누가 진정한 새정치연합의 후보냐를 놓고 큰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정치권 한 가운데 있었던 필자조차도 지방선거의 경우 선거공보를 제대로 읽어 본 기억이 없다. 단지 지지하는 정당 후보의 기호만 찍었을 따름이다. 그야말로 공천이 당락을 결정하는 게 지방선거였다. 이런 상황에서 새정치연합 지지자를 자처하는 후보가 난립할 경우 유권자들은 그 선택에 혼선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아무리 선거운동을 열심히 한다 해도 진정한 새정치연합의 후보를 가릴 방법이 전무하다.
어찌 되었든 안철수 새정치연합 위원장은 이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지키기 위해 기초선거 무공천을 선언했다. 지방선거에서의 유불리 보다는 국민과의 약속이 더 소중하다는 것이다. 도저히 범인은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결정이다. 더군다나 대선공약 거의 모두를 파기하고 있는 새누리당 후보였던 박근혜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결단이다!
안철수 위원장은 기자회견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지금 여당은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공약이행 대신 상향식 공천이라는 동문서답을 내놓았습니다. 국민여러분, 믿어지십니까? 가장 중요한 대선공약조차 지키지 않았는데, 중앙당이나 지역구의원의 영향력 없이 정말 진정한 상향공천을 이룬다는 약속은 지킬 것이라고 보십니까? 그것이 진심이라면 대선 때 그렇게 약속했어야 하는 일이 아닐까요? 이제 와서 어떤 상황이 달라졌습니까?”
결론은 이렇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당리당략에 따라 대국민 약속을 언제라도 버릴 수 있는 정당이지만, 새정치연합은 비록 당에 불리하더라도, 국민에게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키는 ‘국민과 함께하는 정당’이라는 강력한 선언이 바로 안철수 위원장의 ‘기초선거 무공천 결단’인 것이다.
새누리당의 당론은 결정돼 있고, 민주당의 당론도 결정돼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남아 있는 것은 새정치연합이 예견되는 모든 어려움을 어떠한 현명한 방법으로 극복하면서 지방선거에서 유의미한 결실을 맺느냐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뫼비우스의 띠를 단칼에 잘라 버렸듯이, 콜럼부스가 달걀을 두 쪽 내서 세웠듯이, 새정치연합의 책사들도 그처럼 절묘한 묘안을 짜낼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