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치동계올림픽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피겨스케이팅에서 김연아가 은메달을 딴 것을 두고 부당하다며 서명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보다 냉정한 입장입니다. 김연아가 메달을 따면 좋지만 못 따도 서운할 것도 없는 사람이지요. 갈라 쇼에서 김연아가 더 잘했건, 러시아 선수가 넘어졌건 제 견해는 1.2차 경기인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부분에서 본 인상을 피력해보겠습니다.
그런데 편파판정이라면서 분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어떤 점에서 그럴까요? 이번 소치올림픽의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큰마음 먹고 지켜보았습니다. 하여 이튿날 한 지인으로부터 ‘금메달을 못 땄다.’면서 전화가 결려왔을 때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지 못한 이유를 제 나름대로는 말해줬습니다. 이에 지인은 피겨스케이팅 재방송을 다시 봤던 모양입니다. 그러고 나서 전화를 또 했더군요. 이번에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지 못한 점에 대한 저의 관전평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입니다.
첫째 김연아는 솔직히 좀 떨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소심하고도 안전 위주의 경기를 한 것이지요. 본인도 고백했습니다. 경기 직전 연습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리가 올라가지 않아서 점프를 하지 못했다.”고요. 모든 선수들이 그렇겠지만 김연아 선수도 점프 장면에서 엉덩방아를 찧을까봐 두려웠을 것입니다. 엉덩방아를 찧으면 메달 권에서 멀어질 뿐만 아니라 국제망신인 거지요.
사실 이 부분에서 대회의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에 메달 권에서 멀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국내 펜들을 대할 면목도 없고, 자신의 피겨 인생의 마지막 국제대회를 엉덩방아로 마감했다는 트라우마가 남을 판입니다. 선수에게는 이 두려움이 무엇 보다 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될까봐 초조한 티가 역력해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박력과 기세에서는 러시아 선수에 뒤지고, 노련함과 유연함 그리고 화려함에서는 이탈리아 선수가 더 나아 보였습니다. 1차 경기에서도 양 선수에 비해서 그리 특출 난 점이 없었다는 이야기죠. 대회 이틀 째 날 프리스케이팅에서의 경기내용을 보면 김연아는 점프가 6개이고 상대선수는 점프가 7개였습니다. 여기다 착지도 그리 매끄럽지는 못했습니다. 양 선수에 사이에서 그 어떤 차별성이나 특출 나게 우월한 점은 없었다고 봤습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김연아 선수는 이런저런 걱정과 강박관념이 상당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에게서 발산되는 기(氣)는 그리 활달하지 못했고, 착하고 얌전해보이긴 하지만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워 보였습니다. 어떤 이는 열정이 없어보였다고 말했습니다. 김연아의 이런 심리를 귀신같은 국제심판들이 알아채지 못할 리는 없었겠지요. 한 수 지고 들어갔던 겁니다. 이 부분에 많은 시사점이 있습니다. 척 하면 삼천리요. 노회할 뿐만 아니라 눈치가 100단 쯤 되는 국제심판들이 곧 은퇴할 선수인 김연아가 무엇이 그리도 예뻐서 너도나도 점수를 후하게 줬겠습니까? 앞장 서서 그녀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주는 일을 했겠습니까?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종목의 흥행과 장래를 위해서도 타 종목과의 경쟁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을테지요.
김연아의 의상도 인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우중충하고 별 볼일 없었습니다. A급은커녕 B급이라 말하기도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심판과 관중들의 눈은 물론 대회장을 빛낼 만큼의 매력적인 요소가 그 어디에 있었던가요. 그녀에게서 풍겨 나오는 포스도 그저 그랬다고 봅니다. ‘제 눈에 안경’이라고, 우리들의 눈에만 김연아가 유독 크게 보였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보다 큰 그림에서도 살펴 보겠습니다. 러시아는 이번 소치올림픽을 개최하는데 56조나 들었습니다. 56조라는 돈은 천억이 쉬운 여섯 번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이런 대가(代價)를 치른 러시아가 바보는 아닐 것입니다. 상대보다 못할 것 없는 경기를 펼친 자국 선수를 놔두고 남의 나라 선수들에게 메달이나 바치려고 천문학적인 돈을 들이지는 않았을 거라는 얘기죠. 더구나 채점에 의해 결정되는 종목에서 금메달 하나 못 건진다면 말이 안 되겠지요
결론적으로 말해서 김연아는 행운아입니다. 그녀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말해보겠습니다. 지난 밴쿠버에서 금메달을 딴 것도 상당한 행운이 뒤따랐다고 봅니다. 메달을 다투는 선수들 중에서 초강대국의 선수가 끼어있지는 않았으니까요. 다만 이번에 문제인 것은 5점이라는 큰 점수 차이가 날 정도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의 실력이 김연아 보다는 압도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일 겁니다.
이번 소치올림픽에서 김연아는 은메달을 땄습니다. 은메달을 수확한 것도 다음 개최지가 우리나라의 평창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아닌 말로 이탈리아 선수가 은메달을 땄더라면 어쩔 번했습니까? 카롤리나 코스트너는 김연아 보다 못한 점이 뭐였는지 따져보면 답이 나올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탈리아 선수를 제치고 은메달을 딴 것입니다. 왜? 다음 개최지가 한국이기 때문에. 김연아는 이런 저런 덕을 톡톡히 본 행운아인 거지요.
편파판정이라면서 청원사이트로 달려가는 것을 나무랄 수 는 없습니다. 다만 냉철한 관전평을 내놓지 못하고 하나같이 국민들에게 억울한 감정만 부추기는 수구꼴통들, 정권안보에만 충성스럽게 부역하는 방송들이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김연아는 이번에 패기, 정신력, 기술, 예술성, 열정 등에서 너무 소극적이었고, 선수의 한계점과 말기증상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계륵을 머금고 대회를 치렀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꼽아봅니다. 밴쿠버대회 이후 은퇴를 선언했다가 번복한 이유는 복합적이라 할 수 있지요. 첫째 CF 퀸으로서 금전적인 수입을 계속 창출하는데 있어서도 소치올림픽 출전을 위하여 땀과 노고를 아끼지 않는 선수라는 이미지가 필요했고, 둘째 소치올림픽대회에 출전해야만 우리나라 선수 두 명이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부문에서의 출전권을 얻을 수 있었기에 거렇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음 동계올림픽대회를 치르는 우리나라의 사정상 피겨스케이팅 선수층이 두껍지 않아서도 덜컥 은퇴를 결행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기다 하나 더 보태면 문대성의 선수가 갖고 있는 선수 출신 IOC 위원의 임기가 2016년에 끝납니다. 장미란 선수가 희망을 피력하긴 했지만 우리 정부나 체육회에서는 둘 중 누구를 IOC 위원으로 내세우고 싶어 할까요? 이런 점에서도 김연아 선수의 선수생활 연장은 필요했을 겁니다. 아무튼 김연아 선수가 은퇴를 번복하고 어려움을 이기며 잘 버텨준 점에 대해서 박수를 보냅니다. 피겨스케이팅 계에 어서 다음 평창대회 때까지 제 2의 김연아가 나타나 주길 바랄 뿐입니다.
<박정례 : 기자/ 르포작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