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2014 소치 동계올림픽도 어느덧 후반부에 접어들었다. 한편 애초에 4개 정도의 금메달을 포함 10개 안팎의 메달로 3회연속 10위권 진입을 노렸던 우리나라는 빙상 종목에서 예상외의 부진으로 인해 애초에 목표치는 달성하기 힘들것으로 보인다. 또 한편으로는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의 눈부신 활약으로 그가 러시아로 귀화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이 다시금 화제가 되면서 빙상계를 비롯한 스포츠계의 뿌리박힌 파벌싸움과 비리가 새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기도 하다. 또한 지난 2012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4강에 진출 사상 첫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여자 컬링’의 경우, 지난 설연휴 ‘아육대’란 예능프로에서 걸그룹간의 ‘컬링경기’를 보여주기도 하는등 ‘컬링’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한 방송사의 노력이 어느정도 주효했는지, 이례적인 국민의 관심속에 10팀이 풀리그로 벌이는 예선전에서 총 전적 3승6패로 8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 축구장에 물 채워라 !!! 태환이 수영해야 한다. ” 이 말은 지난 2008년 북경 올림픽에서 박태환 선수가 수영에서 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을때, 반대로 온 국민과 축구팬의 뜨거운 관심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선 대체로 기대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한국축구의 상황과 비교하며 한 네티즌이 만든 풍자성 멘트다. 저 멘트가 화제가 되자 이어서 다른 네티즌들이 ‘뭐해라...장미란,사재혁 역도해야 한다’, ‘뭐해라...양학선 체조해야 한다’ 이런식의 패러디성 문구를 추가로 더 만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저와같은 풍자성 멘트를 만든이의 심리와 이에 호응하는 네티즌들의 방점은 결국 축구에 있는것이지 수영이나 역도,체조,사격같은 비인기 종목에 있는것이 아니다. 저런 멘트를 만든 사람 조차도 설마 축구장에 물채워서 수영장을 만들 생각을 하진 않을것이고, 실제로 가령 축구협회 예산을 줄인다거나 프로야구단 운영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줄여 다른 비인기 종목을 육성,지원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바꾼다 하더라도 거기에 동의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것이다. - 오히려 그런 발상을 하는 사람이 정신에 좀 문제가 있는 사람 아닌가 하는 취급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일것이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대회가 있을때 그와같은 대회에서 선전하는 비인기 종목 선수들과 해당 종목들에 쏠리는 국민의 관심. 하지만 국제대회가 끝나고나면 다시 시들해지는 관심. 이와같은 패턴도 그러고보면 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이 열릴때마다 반복되는 연례행사 같다. 물론 요즘은 핸드볼 같은 종목에는 이전보다 그래도 팬도 어느정도 형성되고, 핸드볼을 생활스포츠화 하려는 움직임도 한때 있었지만.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때는 비인기 종목에 대한 국민들의 평상시 관심도는 일상적으로 국민들의 관심을 받는 축구나 프로야구에 비길바가 아니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하계)때는 이런일이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7개의 금메달에 비해 그 두배가 넘는 15개나 되는 은메달을 획득, 대체로 결승전에서 아깝게 패한 경기와 종목들이 많아 아쉬움을 더한 대회이기도 했고. 한편 이 대회에 출전한 남자농구팀의 경우엔 90년대 중반 당시 선풍적인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모았던 프로농구 붐과는 달리, 정작 올림픽에선 그 농구선수들이 너무나 졸전을 벌여 특히 pc통신 하이텔이나 나우누리의 스포츠 게시판엔 그와같은 농구 선수단을 비난하는 글들이 가득 메워진 일이 있었다. 특히 이때 아쉬운 은메달을 기록한 여자하키나 여자핸드볼의 경우와 비교하며 ‘남자농구’의 졸전을 질타하는 글들을 많이 접해볼수가 있었다.
‘땀냄새 나는 여자하키, 향수냄새 나는 남자농구’라는 제목의 하이텔 스포츠 게시판에 그 당시 올라왔던 글들중 지금까지 인상과 기억에 남는 글이 하나 있다. 글의 요지는 역시 국내에서 억대의 연봉을 받으며 화려한 각광을 받지만 올림픽에선 졸전을 벌인 남자농구 대표팀을 질타하면서, 그에비해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값진 은메달을 획득한 ‘여자하키’ 선수들의 노고에 격려와 감탄을 보내는 내용의 글이었다. 당시 하이텔 스포츠 게시판 같은 경우엔 용량초과의 문제 때문인지 일정시간이 지나면 예전의 글들은 대개 삭제되는 시스템이었는데, ‘땀냄새 나는 여자하키, 향수냄새 나는 남자농구’란 제목의 글은 ‘베스트’로 추천을 받아서인지 애틀란타 올림픽이 끝나고 수년이 지난뒤에도 하이텔 스포츠란에서 검색하면 여전히 찾아 읽어볼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해당관련 글을 올렸던 당사자는 이후에 ‘여자하키’에 관심을 가진적이 있었을까 ?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을 해보았지만, 역시 아쉽게도 그 통신인의 ‘여자하키’에 대한 관심글 역시 96년 올림픽 당시의 그 한편뿐이었다. 아마 올림픽이 끝난후에는 그 사람 역시 일상적인 농구팬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 개인적으로는 지금이라도 혹 가능하다면 그 당시 하이텔 스포츠란에 ‘땀냄새 나는 여자하키, 향수냄새 나는 남자농구’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던 사람을 한번 찾아서 만나보고 싶다.
여자핸드볼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만 해볼까 한다.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특히 90년대에 활동했다가 결혼등을 이유로 은퇴한 선수들을 코트로 다시 불러들여 이른마 ‘아줌마 부대의 힘’으로 매우 아쉬우면서도 값진 은메달을 획득했고, 이것을 소재로 얼마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란 영화가 만들어져 이후 이 영화의 약칭인 ‘우생순’이란 별칭을 얻기도 한 국가대표 여자 핸드볼팀. 하지만 그 여자핸드볼의 90년대 중반을 잠시 돌이켜보면 정말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때라고 할 수 있었다.
여자핸드볼은 88 서울올림픽과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금메달 2연패에 이어 95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그 당시 그야말로 최전성기를 구가하였다. 하지만 95년 여자핸드볼이 ‘세계선수권 대회’의 사상 첫 우승컵을 거머쥔 그해 겨울. 그 무렵은 공교롭게도 (꼭 그런 이유때문만이라 볼수는 없더라도) 전직 대통령의 거액의 비자금 사건과 5.18 특별법등을 놓고 전직대통령이 오늘 구속되네, 내일 구속되네 하던 무렵이라. 하필이면 바로 그때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여자핸드볼에 관해선 신문이건 TV건 기사한줄, 보도 한토막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설사 그 소식이 어렵게 한두줄 짤막하게 보도되었다 하더라도 95년 겨울 그 무렵의 사회분위기상 비인기종목인 ‘여자핸드볼’이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했건 뭘했건 거기에 관심 갖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을것 같다. - 그 당시 여자핸드볼팀의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과 관련한 소식은 얼마후 지하철 가판대에서 판매하는 한 주간지가 그나마 한페이지의 반 정도를 할애 비교적 상세하게 보도,소개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의 너무나 아쉬운 은메달. 하지만 그래도 그 무렵엔 올림픽 분위기와 함께 특히 여자핸드볼의 아쉬운 은메달에 언론,방송 보도가 집중되었던 탓인지 그나마 반짝 관심을 누릴수는 있었다. 그로인한 여파 때문일까. 몇몇 기업이 ‘여자핸드볼’ 실업팀 창단계획을 발표. 한때 여자핸드볼 팀은 ‘창단예정’인 팀을 포함하면 총 9개 팀까지 늘어났던 시절이 있었다. 근 몇 년전부터 프로야구를 놓고서 9구단까지 운영하는건 무리라느니, 10구단까지는 되어 짝수팀 체제여야 시즌 대진표를 짜기가 용이하다느니 별의별 논란이 다 있기도 했지만, ‘여자핸드볼’ 실업팀의 경우엔 96-97년의 경우엔 ‘9구단 체제’로까지 갈 뻔 한적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97년 IMF를 거치면서 여자핸드볼은 9개팀중 무려 5개팀이 줄줄이 해체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된다.
여자핸드볼을 90년대 중반경부터 20년 가까이 관심있게 지켜본 필자의 견해는 대체적으로 여자핸드볼의 최전성기를 90년대 중반으로 보며 그 하락세가 시작된것이 실업팀이 줄줄이 해체되기 시작한 IMF 이후로 본다. 그후 2000년 올림픽에서 여자핸드볼은 4위를 기록했고, 하는수없이 96년 애틀란타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결혼등을 이유로 은퇴한 선수들을 다시불러 ‘아줌마 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