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봐도 그저 하얀 종이일 뿐인 그 곳에 전체적인 구도를 잡고 다채로운 색을 입히며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머리 속으로 생각하던 것들을 현실 속에서 구체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들이며 인내와 끈기, 열정과 집념, 도전정신과 용기를 두루 갖춘 진정한 영웅들이다. 이 놀라운 상상의 결과로 우리는 바흐와 헨델을 감상하며 동시에 스마트폰으로 지구촌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기막힌 체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고대 신화의 세계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최고의 선물이자 축복인 상상력은 이처럼 인간의 자유의지 속에서 날개를 달고 거침없이 비상해 왔다. 인간의 상상력은 시대의 공고한 담장을 허물었고, 공간의 경계마저 쉽게 무너뜨렸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인간문명의 모든 유산들은 이같은 상상의 결과로 창조된 부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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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상상력이 시대와 공간의 벽을 뛰어 넘어 보편적 가치가 있는 어떤 것으로 용인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척도는 바로 현실성의 유무에 달려 있다. 상상이 현실적으로 구체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면 이는 상상이 아닌 망상이라 불리워야 한다. 가령 투명인간이 되어 여탕에 들어가 보고 싶다든지, 최신식 현대무기를 가지고 삼국시대로 돌아가 고구려의 삼국통일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에 젖어있다면 이는 상상이 아닌 망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상상과 망상의 차이는 그것이 현실화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우리는 며칠 전 한 망상가에게 내려진 사법당국의 준엄한 판결을 지켜 보았다. 장난감 총기를 개조해 북한과의 전쟁 반발시 우리나라의 주요거점에 타격을 입히자는 이 발칙한 망상에 재판부는 징역 12년, 자격정지 1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한 망상가의 부질없는 망상에 내려진 이 가혹한 채찍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논하는 것은 이 시대에 부질없는 일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는 오히려 비상식적인 것이 상식적인 것이 되기 마련이다.
정상적인 것이 비정상적인 것이 되고,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적인 것으로 뒤바뀌는 가치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현 대한민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거의 모든 사회현상에서 이와 같은 가치전도 현상이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정치권력은 체제 유지와 기득권 수호를 위해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한다. 사법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사법부가 정치권력에서 독립해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를 희망하는 것은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낭만적 상상이 되어 버렸다.
우리의 낭만적 상상 속에서라면 이 망상가의 비현실적 망상은 당연히 무죄가 선고되어야 한다. 핵심 쟁점인 내란음모의 현실성이 구체화되기엔 개연성이 도무지 없기 때문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상상과 망상을 가장 확실하게 구분지을 수 있는 기준인 현실성 측면에서 본다면 이들의 망상은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아이들의 철없는 그것과 너무도 흡사하다. 그러나 사법부는 이 치기어린 망상에 12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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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낭만적 상상속에서라면 지난 대선의 부정선거를 적극적으로 측면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징역 10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되었어야만 했다. 그는 특정후보의 대선 승리를 위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고, 이 과정에서 사건의 축소와 은폐를 기도했으며, 부정선거의 주범인 국정원과 사건수사 진행과정을 공유했고, 결정적으로 대선결과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서둘러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사법부는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정황증거들이 차고 넘쳤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두가지 개별 사건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은 언제나 냉혹하고 잔인하며 야만적이라는 사실이다. 낭만적 상상이 끼어들 여지란 현실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이 망상가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하지 않은 사법부, 더 나아가 현 집권세력의 넓은 아량과 선처에 고마워 해야 하는 지도 모른다. 현 집권세력 최고 권력자의 아버지가 통치하던 그 시절의 기준과 잣대였더라면 이 철없는 망상가는 틀림없이 사형이 선고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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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과 망상조차 분별하지 못하는 이 불모의 시대를 탓하지는 않겠다. 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의 천형이다. 저 후안무치한 자들에게 권력을 부여한 것도 우리요, 저들의 거침없는 폭주를 용인하고 있는 것도 바로 우리들 자신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가지는 말해야 겠다. 좋은 상상력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뛰어 넘어 결과적으로 인류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안겨 주지만, 이 상상력이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면 개인은 물론이고 그 사회 공동체의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 정도는 인지했으면 한다. 그것이 이 불모의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회공동체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이면서 동시에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