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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어린이들이 사랑하는 동화 피터 팬의 원작을 읽어 보신적이 있습니까? 오래 전,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곳 도서관에서 영어 공부를 위해 잡았던 책 중 하나가 피터 팬이었는데, 저는 이 책을 읽어 나가며 놀랐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 원작에 그려진 피터 팬은 무척 잔인한 친구여서, 그의 네버랜드에 온 어린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죽이거나 하는 일도 했습니다. 어린이들의 친구라고만 하기엔 좀 끔찍하지요.
어쨌든, 피터팬은 동심에 머물러 있기를 원합니다. 자신이 구축해 놓은 절대 왕국에서, 자신이 곧 법이자 지배의 원칙인 나라를 만들어 놓고, 여기서 자기가 만들어 놓은 존재의 조건에 어긋나게 변하는 구성원들은 가차없이 살해해 나가며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는 나라를 건설하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터팬의 나라는 절대로 현실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요즘 한국의 돌아가는 모양을 보며 느끼는 건, 바로 이 피터팬들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겁니다. 이건 뭐, '동화의 나라'도 아니고. 겨울왕국의 공주는 모든 걸 꽁꽁 얼려버리고, 게다가 1960-70년대를 관통했던 바로 그 때, 자기가 보고 자랐던 모습의 나라를 그대로 지금 세상에 세우려는 건 아닌가 하는 기이한 상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는 성숙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나름 세워 나가며, 이를 그다지 길지는 않았지만 10년간 삶 속에서 민주주의란 어떤 것이란 것을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지금 과감히 대자보를 쓰고 있는 세대는 그 10년 동안의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교육을 받고, 세상이 어떻게 진화해야 바른 것인가를 고민하며 자란 세대들입니다. 그렇기에 이들 세대들은 이명박 아래서 축제와도 같은 촛불시위를 벌였고, 지금의 엄혹한 공안 광풍 속에서도 촛불을 들고 대자보를 붙일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성장한 민주주의의 캐릭터들을, 저 잔혹동화 속 공주님과 그를 추종하는 피터팬들은 숲 속으로 이들을 끌고 가 살해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다양한 탄압의 모습으로 나타나지요. 이석기와 통합진보당이 내란 음모를 꾸몄다고요. 어쩌면 이 논리가 이렇게도 죽산 조봉암을 탄압했던 그때의 모습이나, 혹은 장준하를 벼랑으로 내몬 그 때의 논리 혹은 상황들과 이렇게 비슷합니까. 이렇게라도 해야 피터팬을 추종하는 잔혹동화의 주인공들은 행복할 수 있는 걸까요?
이석기와 통진당이 실제로 국가를 전복하려는 음모가 있었다면 국민들이 충분히 걸러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사회는 생각보다 더 많은 다양성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 것들을 모두 무시하고 오로지 획일적인 사고만을 강요하는 저들은 국민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른들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그들처럼 피터팬 신드롬에 갇혀 있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사회는 늘 진보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충분히 성숙할 수 있는, 그런 국민입니다. 우리의 성숙과 통찰은 4.19 혁명과 80년 광주, 그리고 87년 6월의 항쟁을 통해 충분히 증명된 바 있습니다. 저들이 아무리 그들의 미성숙을 우리에게 강요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거부할 권리가 있고, 또 그래 왔습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