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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의원이 새정치연합이라는 당명 아래 신당을 창당한다고 한다. 그를 둘러싼 숱한 추측들 중에서 안 의원이 오는 6월의 지방선거 이전에 신당 창당을 추진할지 여부에 대한 궁금증 하나는 확실히 풀린 셈이다. 아마 다음에는 안철수 신당이 지방선거에서 과연 이른바 야권연대에 동참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될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제외하면 안철수 의원만큼 수많은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정치인도 드물 것이다. 심지어 지난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아슬아슬한 표차로 낙선했던 문재인 의원조차도 안철수 의원을 겨냥한 소위 ‘저격성 멘트’를 날려야만 가까스로 언론의 조명을 받을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지지율의 일시적 등락과 관계없이 안철수는 여전히 한국정치의 태풍의 눈인 셈이다.
태풍의 눈의 진로에 대해 사람들, 특히 정치평론가로 활동하는 이들이 무심할 리는 없다. 얼마 전에 그러한 정치평론가들 가운데 진보로 분류되는 이가 쓴 안철수 의원을 주제로 한 신문칼럼을 읽었다. 사실은 읽었다기보다는 대충 훑어봤다고 하는 편이 좀 더 정확하면서도 솔직한 표현일 게다. 왜냐면 내가 그 칼럼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논조의 신선함이 아니라 진부함에 있었으므로.
“안철수는 영남의 강고한 지역주의에 도전함으로써 호남의 민심을 감동시켜 야권 재편을 주도해 어쩌고저쩌고 해서 정권을 창출해야 한다.” 대충 이런 논조였다. 2002년에 그러한 경로를 통해 당시의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승리한 이후로 이러한 요지의 글들은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최소한 수만 건은 나타났고, 그와 같은 논점의 글들의 대부분은 60년대에 출생해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인구집단을 가리키는 486 세대에 의해 주로 생산돼오고 있다. 실제로는 생산을 넘어 양산 수준이지만.
내가 그 전형성 탓에 유의한 글의 저자는 역시나 486 세대였다. 63년생이니 80년대 초중반 학번일 가능성이 클 테고, 대중적으로 알려진 486 세대 고유의 특성들은 그 칼럼의 필자였던 시사평론가가 속해 있을 80년대 초중반 학번들을 통해 가장 도드라지게 발현되곤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다. 뒤집어 말하면 성공은 실패의 아버지라고도 할 수 있겠다. 2002년의 대통령 선거와 2004년의 총선을 예외로 둔다면 진보개혁진영으로 불리는 세력은 선거에서 판판이 깨졌다. 그들이 야당일 때는 물론이고 여당일 때도 깨졌다. 그 근 본원인은 2002년의 성공 모델에 시선과 상상력이 갇힌 데 있다. 즉 영남의 지역주의에 도전해 호남을 감동시켜 선거를 이긴다는, 2002년의 모델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로 의존성에 몇몇 개인 차원을 넘어 세대 전체가 집단적으로 매몰된, 사회학의 탐구 범위를 벗어나 인류학적 연구 과제에 진입한 매우 희귀한 사례다.
나는 문득 의문이 생겼다. 호남을 감동시키는 데 왜 굳이 영남의 지역주의에 도전해야 하는가?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정치적으로 차별받아온 호남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고 봉사할 것을 약속하는 정공법을 택할 수는 없는 것인가? 더 의구심이 든 것은 왜 굳이 영남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야 정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였다. 영남의 보수적 유권자들은 한국정치의 운명을 천년만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무슨 생득적 권리라도 엄마 뱃속에서부터 타고 났다는 말인가? 이를테면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 일본 동경에 가서 일왕에 충성하는 평범한 일본인들의 동의와 공감을 구한 다음 하얼빈역에서 조선침략의 수괴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던가?
63년생은 몇 살일까? 우리나라 나이로 쉰둘이다. 만으로는 51세. 지금의 63년생들이 21살이었을 때 51살이었던 33년생들이 어떻게 보였을지 생각해보자. 과거의 성공법칙을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지독한 보수주의자로, 자기들이 예전에 체험했던 일들만을 절대선이라고 주장하면서 아랫세대에게도 그 방식을 일점일획도 수정하지 말고 답습하기를 강요하는 답답하고 케케묵은 꼰대들로 비쳤을 것이 분명하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이제는 나이 50줄에 접어든 참모들의 조언과 잔소리를 계속 듣다 보면 마치 그것이 현시대를 관통하는 정답처럼 들릴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문제는 나이 50줄에 접어든 기획자와 전략가들이 수십 년을 간직해온 신념과 견해를 바꿀 확률은 아주 낮다는 데 있다. 그들은 이후로도 “영남의 지역주의에 도전해 호남을 감동시켜야”를 경천처럼 주야장천으로 외칠 테고, 그 결과 현재의 야당은 미래에도 야당으로 의연히 남게 될 것이다.
안철수 의원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 보자. 언론을 보니까 안철수 신당이 광주에 부산에 집중할 방침이라는 소식이 전해진다. 어쩌면 필연적 귀결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한도 안에서는 안철수 신당의 거의 모든 책사들도 2002년의 성공 모델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해본 경험이 있다. 설령 관여하지는 않았더라도 그때의 짜릿함과 충격에서 10여 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까지도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사들이 부지기수이리라.
새로운 정치는 그 발걸음부터 새로워야 한다. 부산 찍고, 광주 찍고 다니며 팔도를 뒤죽박죽으로 누비는 발길 자체부터가 이미 식상함을 지나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다. 부산 찍고, 광주 찍고 다니는 행보에 감동할 사람들도 있기는 있으리라. 호남이나 영남에서 나고 자란. 내일모레 환갑을 바라보는 82학번 아저씨, 아줌마들에게는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할지도 모른다. 허나 서울의 노원구나 구로구에서 나고 자랐을 82년생 청년에게는 공감도, 이해도 되지 않는 기성세대들만의 태곳적 정치문법일 뿐이다. ‘뮤직뱅크’나 ‘음악중심’ 시청자들 앞에서 ‘콘서트 7080’ 방송해주는 격이다.
안철수 신당은 스타트업(Startup) 정당을 표방한다. 스타트업은 정보통신기술(ICT)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젊은 기업가들이 주축이 되어 새롭게 창업한 신생 벤처기업을 뜻하는 용어다. 그러나 본격적인 정치적 조직화에 착수한 이래로 안철수 의원이 국민들에게 보여준 모습은 전통적인 굴뚝산업에서 잔뼈가 굵은 거대한 재벌그룹의 총수와 비슷했다. 안 의원과 함께 다니는 인사들의 면면은 재벌그룹 계열사의 임원진과 다름없이 투영되었고. 형식과 내용이 별개로 돌아가는 따로국밥 형국이었다.
익숙하고 틀에 박힌, 그렇지만 나름 안전하고 검증된 기조와 행보를 고집한 덕분에 안철수 신당은 잘하면 호남이나 영남에서 운 좋게 한두 석의 광역단체장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 대가로 안철수 신당은 안철수 현상의 진원지였던 수도권의 20~30 세대의 지지를 상실해야만 할 것이다. 안철수 신당 또한 민주당처럼 이제는 중년을 넘어 노년의 문턱을 코앞에 두고 있는 486 세대 유권자들의 지지에 목을 매야 하는 처지가 될 것이다. 새 부대만 부지런히 준비하면 뭐 하나? 포도주의 원료가 되어줄 포도 자체가 오래됐는데. 50대 안팎의 중장년층을 지지기반으로 삼아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세대교체가 결여된 새 정치라? 소가 웃을 일이다.
호남이나 영남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안철수 의원과 새정치연합의 미래가 어두워진다는 가정 하에 그럼 대안은 뭐냐고 나를 거칠게 몰아붙일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대안은 있다. 한데 대안을 말하기 전에 내가 그들에게 먼저 묻고 싶다. 안철수 현상의 총체적 귀결점이 고작 부산시장이냐 전남지사였냐고? 하늘 아래 둘도 없을 태산명동서일필이다.
모름지기 새로운 정치는 남들이 마음속의 생각만으로 만족해하는 것을 마땅히 현실에서 실제로 구현해보려고 시도해야 한다. 나는 안철수 의원에게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낸 이들에게 돌아가라고 권유하고 싶다. 그는 부산의 50대 아저씨는 새누리당에, 광주의 486 세대는 민주당에 양보하고 의사 출신의 전직 벤처기업인에 지나지 않았던 그를 단숨에 강력한 대권주자로 도약시킨 수도권의 청년세대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정치에 있어서만은 안철수와 안철수 신당은 철저하게 ‘IN서울’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광주와 부산에 자주 내려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