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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이 재심을 통해 23년만에 무죄 선고됐다. 1991년 봄, 당시 명지대 학생이던 강경대 씨가 시위 도중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집권 세력은 이로 인한 시위가 더욱 확대될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국면을 맞게 된다. 이로부터 2주가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전민련 사회부장이던 김기설 씨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분신으로 경찰 만행에 항거한다.
이때 있었던 정부 발표도 작금 벌어지고 있는 공안 조작과 매우 유사하다. 즉, “체제 전복을 위한 거대한 배후 세력의 조종을 받은 것”으로 매도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희생양을 찾는다.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신 써주었다는 혐의를 씌워 강기훈 씨를 구속한 것이다. 그 직접 피해자인 강기훈 씨는 현재 암투병 중에 있다. 청춘의 때로부터 현재까지 그야말로 살점을 도려내는 고난의 연속인 셈이다.
그런데 당시 유서 조작까지 서슴치 않으며 수사를 강행했던 당사자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할까? 한 사람의 인생을 철저히 유린한 대가로 권력을 얻고 또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기막힌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독재 권력에 의해 삶의 전부가 처참히 무너져 내린 숱한 피해자와 그 가족의 잠들지 않는 비통함이 천지간을 휘돌고 있다. 박정희 정권 치하에서 조작된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은 재판 후 하루도 되지 않아 사형이 집행됐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도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상태다. 부끄럽게도 이 경우에는 외교 문제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검찰 측에서 제출한 증거가 조작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고, 이는 중국 공안 당국과 관련되어 있어서다. 중국 측에서 이를 형사 문제 삼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증거 조작에 가담했던 자들은 그가 누구라 할지라도 국내외의 엄정한 법적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대한민국 검찰과 국정원에 의해 그야말로 국격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진보당 이석기 의원 또한 같은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진보당에 대한 초유의 정당 해산 음모가 진행 중인 것도 매우 유사하게 닮아 있다. 오늘 우리에게 놓인 간악한 권력의 숨길 수 없는 민낯이다. 국민된 입장에서 수치스런 마음 가눌 길이 없다. 불현듯 작고한 이성부 시인의 싯구 한 자락이 생각난다.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라는 구절이다. 거기 중도란 이름으로 비겁하게 숨으려 하는 자는 없어야 할 것이다. 그 또한 악의 편이기에 하는 말이다.
<정성태 : 시인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