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발렌타인 데이가 안중근 의사 사형 선고일인 것을 아는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10.26 이라는 날짜에도 사실 안중근 의사의 자취가 남아 있지요. 우리에게 박정희 저격일로 더 잘 각인되어 있는 그 날. 박정희가 김재규 부장에게 총을 맞아 절명한 그날의 바로 70년 전,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고, 이듬해 2월 14일 일제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그리고 3월 26일 사형이 집행되지요.
그렇다고 아내에게 발렌타인 선물을 안 하게 되면... 아마 제가 요절하게 되거나 최소한 며칠은 불편하게 될 성 싶어서, 오늘은 일 끝나자마자 초컬릿이나 사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얼마 전 아내의 생일에 그녀가 원하는 생일 선물도 사 줬고 꽃도 샀으니... 1년중 화훼상들의 매출이 가장 큰 해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긴, 누굴 사랑하고, 그 사랑을 지속해서 이어가는데는 어떤 특별한 이벤트들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아이들이 생기고, 그 아이들이 자라나고, 생활 매일매일 속에서 서로에게 익숙해져간다는 이유로 해서 신경이 덜 쓰게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사실 이런 자잘한 기념일들은 당연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화 소비를 촉진해 생산을 자극한다는 극히 고전적인 이유로 만들어졌겠으나, 그 안에 긍정적인 면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이 여자를 왜 사랑하게 됐고, 어떻게 우리가 가족을 이뤘으며, 그리고 지금 나는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녀가 내겐 어떤 의미인가. 이런 것들을 돌아보고 있지면 내가 삶에 있어서 어떤 큰 선물을 받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 생각의 범위를 조금만 넓혀 보면,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 그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들이 사랑의 테두리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내와, 그리고 아이들과, 부모님과, 이웃들과, 내 주위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 서로에게 보편적으로 갖는 인간애부터 아내와의 특별한 애정까지도.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삶의 활력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해마다 발렌타인 데이가 되면, 저는 몇해 전 발렌타인 데이에 찍었던(더 정확히 말하면 찍혔던) KBS 지구촌 네트웍 한국인 방송을 다시 유튜브에서 찾아봅니다. 그걸 보고 있으면, 저는 제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으며 살고 있는지를 다시 깨닫곤 합니다. 가족과의 사랑, 이웃과의 사랑... 모두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사랑의 기저엔 그만큼 사랑을 '보편적으로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 도 필요할 겁니다. 여러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올해는 특별히 발렌타인 데이가 대보름과 겹치는군요. 아마 땅콩과 호두 같은 견과류가 잔뜩 들어간 초컬릿이라도 사야 할 모양입니다. 해피 발렌타인, 앤 해피 풀 문! 복된 대보름 되세요.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