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어요!"
양치기 소년의 외침에 마을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헐레벌떡 산 위로 뛰어 올라 갔다. 그러나 양치기 소년의 말과는 달리 늑대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을로 내려갔다.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은 양치기 소년의 비명소리에 다시 한번 산 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늑대는 없었다.
그렇게 몇차례 이같은 일이 되풀이 되었다. 사람들은 산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조금씩 의구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양치기 소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챘다. 그래서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마을 사람들은 산에 올라가지 않았고 양들은 늑대에게 모두 잡아먹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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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솝우화
'양치기 소년과 늑대'의 일부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야기시키는 비극에 촛점을 맞추며 독자들에게 거짓말의 위악에 대해 환기시켜주고 있다.
이 우화에는 양치기 소년, 마을 사람들, 늑대와 양이 등장한다. 이들 중 늑대와 양은 스토리 전개를 위해 가미시킨 첨가물에 불과하다. 이 둘은 우화 속에서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하는 부분 요소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늑대는 곰이나 사자 등으로, 양은 염소나 오리 등으로 치환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양치기 소년과 마을 사람들은 이야기 전개에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 요소다. 그러므로 이 우화를 이끌어 가는 실질적 두 요소는
'양치기 소년'과
'늑대'가 아니라
'양치기 소년'과
'마을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 우화의 서사구조를 이끄는 양대 축인 '양치기 소년'과 '마을 사람들'을 한번 살펴보자. 필자는 오늘 이 두 인물들을 통해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를 살펴 보려 한다.
이 우화의 핵심인물은 당연히
'양치기 소년'이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그의 거짓말은 이 우화의 성립을 가능케하는 실질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다.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능동적이고 주체적이며 입체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계획(거짓말)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적극적인 인물이고 목적(재미)에 집착한 나머지 해서는 안되는 짓을 되풀이 하는 영악한 인물이다.
'양치기 소년'과 대척점에 놓여있는
'마을 사람들'은 그에 반해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며 평면적이다. 그들은 '양치기 소년'의 행동이 있을 때에만 반응한다. 또한
'양치기 소년'의 거듭된 거짓말에도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개선하려고 하는 의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만약 '마을 사람들'이 사태의 본질을 직시했더라면
'양치기 소년'을 대체할 사람을 찾아보거나 적어도 그를 감시할 누군가를 곁에 두었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마을 사람들'의 소중한 양떼가 모두 늑대의 밥이 되는 비극을 맞게 된다. 아마도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관성의 지배를 받는 한 개인과 집단의 사물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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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우화를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에 대입해 보자.
'정치인(양치기 소년)'은 권력(재미)을 얻기 위해
'유권자(마을 사람들)'를 불러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 서슴없이 '늑대'라는
'상품(정책, 공약)'을 가공해 낸다. '유권자(마을 사람들)'를 불러들이기 위한 미끼인 '늑대'는 때와 장소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형되고 변주되는 특징을 지닌다. 따라서
"늑대가 나타났다"는 외침과
"반값등록금을 실현하겠습니다",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겠습니다",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겠습니다", "군 복무를 단축하겠습니다", "상설특검제를 실시하겠습니다" 등등은 결국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에 다름 아니다.
'양치기 소년과 늑대'의 우화와 마찬가지로 현실정치에서도 유권자는 여전히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며 비주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정치인들의 상습적인 거짓말에 속고, 또 속고, 그리고 다시 또 속는다. 썩어빠진 현실정치를 개탄하고 비난하면서도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며 구경꾼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이쯤되면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양치기 소년)'이 문제인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실체를 인지하고도 아무런 후속조치와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있는 '유권자(마을 사람들)'가 더 문제인 것인가?이 질문의 답과 상관없이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정치인이 스스로의 자정능력으로 현실정치를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같은 사실은 결국 유권자들이 그들의 권리보다 역할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 준다. 우리나라 현실 정치의 비극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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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우화로 돌아가 보자. 거듭되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과 마을 사람들의 안일한 대처는 결국 소중한 양 떼를 잃게 되는 결과로 나타난다. 그러나 어쩌면 비극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만약 그 이후에도 거짓말을 되풀이 하던 양치기 소년이 여전히 양 떼를 돌보고 있다면?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악몽이 따로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양치기 소년과 늑대'의 우화는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필자는 우리의 현실은 우화 속 세상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우리나라의 현실 정치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우리는 고민해야만 한다.
여러분의 소중한 양 떼를 지키기 위해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고민하고 행동하는
'마을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질문이 비극으로 마감한 우화 속 세상과 그렇게 되어서는 안되는 현실 속 세상을 가르는 경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