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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유라시아 단일경제공동체 노선은 제갈 윤대중의 민족비젼을 계승한 것이다.
오리지날 반공자유민주주의자 제갈 윤대중은 2천만 인민을 속히 구하는 지름길은, 제갈 윤대중이 실현한 6.15남북공동 합의실현을 통한 남과 북의 8천만 민족의 전면적 교류와 경제활동을 전제로 5-10년안에 2천만 인민대중의 선택으로 한반도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통일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래서 북한 군부가 전두환보다 제갈 윤대중을 악질적으로 더 비난했던 것이다. 김일성세습독재가 붕괴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방개혁을 김일성도 김정일도 100%하지 못하고 시늉만 내다 만 것이다.
대한민족의 징기즈칸 제갈 윤대중(호적 성씨만 흉노 김씨/진짜 성씨는 윤씨 확율이 높다)
민족사를 인식해야 현실을 극복하고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교훈을 삼을 수 있으며, 나라와 정치를 어떻게 통합적이고 대국적으로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리더쉽의 뇌 구조가 형성될수 있기 때문이다.
동-서 문명을 하나로 융합한 징기즈칸의 몽골제국:세계는 몽골의 수도 '하라하라(태양)'로 통했다
어떻게 징기즈칸은 분열된 몽골족을 대통합하고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영역을 경영하면서 인류사적으로 동서문명교류에 공헌했는지를 반드시 인식할 필요가 있다.목축을 위해 이동하면서 살아야 하는 북방 초원세력은 서로가 필요한 것들을 교류를 해야 먹고 살 수가 있었다. 그래서 초원문화의 특징은 동-서양문화가 융합되어 있다. 징기즈칸은 중앙아시아의 이슬람국가 코라즘과 교역하기를 원했다. 사신을 보내 교역하기를 청했다.
그러나, 코라즘왕은 사신을 첩자라하여 죽여 버렸다. 징기즈칸에게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함께 도전으로 받아 들여졌다. 전쟁은 불가피했다. 징기즈칸은 하루에 500km를 달리는 몽골 기마군단을 이끌고 호라즘정벌에 나섰다.
항복하고 몽골에 협력하는 세력은 살려 주고 저항하는 세력은 처참하게 살육했다. 징기즈칸이 전쟁을 도발했던 것이 아니라 호라즘이 도발을 했기 때문에 응징을 가한 것이고, 결국 유럽과 아시아가 교류하는 시대를 연 것이다. 자신들만의 독점력은 결국 벽을 만들고 분열을 부추기고 전쟁을 부추기게 되는 것이다.
징기즈칸은 이러한 벽을 과감히 부수어 버린 것이다. 우리 민족이 대륙적 기상을 가지고 대륙으로 나가려면 분단38선 장벽도 과감히 무너 뜨려야 하는 이유다. 가장 큰 걸림돌이 그래서 오로지 김일성 우상화와 신격화로 세습독재왕조 정치로 북한을 이끌고 가겠다는 김일성 일당이다. 징기즈칸이라면 김일성일당은 길을 막는 장벽으로 살육대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남북한 통치자들 중에서 이러한 징기즈칸의 동서교류노선을 지향했던 통치자가 바로 한민족이 낳은 위대한 민족영웅 제갈 윤대중이다. 철로와 인터넷으로 지구촌이 하나로 연결되는 21세기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북아시아지역이 유라시아와 아메리카를 연결하는 정보.교역.문화의 중심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세계지도상 대륙과 해양이 연결되는 가장 좋은 중심지역에 위치해 있다. 노른자위라 할 수 있는 위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가장 미련한 민족이라 할 수 있다. 제갈 윤대중처럼 정치적 소신과 고난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와 실천없는 정치는 감동없고 지지도 없다
우리 한민족은 유라시아 한민족통합을 위하여 김대중노선을 계승하여 일본.북한.몽골.만주.중앙아시아까지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대통합하는 보다 큰 연방국가를 건설해야 할 것이며,동서문명교류에 크게 공헌하는 민족이 되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와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철로가 그 매개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문이 이미 열려 있다.단지,우리가남이가 하면서 분열책동으로 국민과 지역과 민족을 분열시키면서 지들끼리 권력과 기득권을 독점하겠다는 우물안 개구리들의 방해책동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장애를 과감히 깨부시고 나갈 때에 우리에게는 위대한 한민족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생명이나 문명이 잉태할 때는 크나 큰 산고의 고통이 동반된다.그러나 피하면 모두 죽게 되어 있다.고통을 이기고 나가야만 모두가 산다.그것이야말로 진보를 위한 도전이고 응전이다.
징기즈칸은 어릴적 코리족장인 아버지가 타타르족에게 살해되고 코리족이 뿔뿔히 흩어져 가족만 남아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갈 때 고기를 잡아 나누지 못하고 혼자 먹은 이복형을 화살로 쏴 죽일 만큼 공동체를 파괴하고 분열시키는 독점력에 철퇴를 가했다. 독식하겠다는 자들이나 집단이 바로 통합의 적인 것이다. 성장하여 훗날 몽골족을 대통합할 수 있었던 명분도 바로 오늘날 정치적 화두가 되고 있는복지로써 공정한 나눔에 대한 약속이였다. 그리고 그것은 전쟁과정에서도 이행되었다.
그리고 신분과 지역을 떠나 능력있는 자들이면 누구나 기용하여 몽골제국 발전을 위해 일하게 했다.여성들의 권리를 지켜 주었다. 종교적 자유를 보장했다.그야말로 통합을 위한 개방성과 공정한 배분,그리고 부정부패의 척결, 공동체유지를 위한 법질서 확립이였다. 유라시아 전역이 몽골의 수도 카라쿠롬(하라하라)으로 통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제갈 윤대중이 햇볕정책과 관련하여 유라시아 철로와 한반도철로가 이어져야 한다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일본에 돈 빌리면서 독도영유권 포기해 버린 박정희
월간중앙은 2007.06 19일 발매된 창간 39주년 기념 4월호에서 "한.일 협정 체결 5개월 전인 1965년 1월 11일 서울 성북동 박건석 범양상선 회장 자택에서 정일권 국무총리와 우노 소스케 자민당 의원이 독도밀약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독도밀약은 한.일 협정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독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맺어 졌다.월간중앙이 한국과 일본의 생존자 증언과 자료를 근거로 추적한 독도밀약은 '앞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으로써 일단 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한.일 기본조약에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4개 부속조항으로 구성됐다.
부속조항은
▶독도는 앞으로 한.일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이에
반론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장래에 어업구역을 설정할 경우 양국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하는 선을 획정하고, 두 선이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 수역으로 한다.
▶현재 한국이 점거한 현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새로운 시설의 건축이나 증축은 하지 않는다.
▶양국은 이 합의를 계속 지켜 나간다 등의 4개 항이다.
월간중앙은 "그 독도밀약은 합의 다음날 박정희의 재가를 받았으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우노 의원은 그간 비밀 유지를 위해 이용하던 용산 미군기지에서 일본의 고노 이치로 건설장관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렸으며, 고노는 이를 당시 미국을 방문 중이던 사토 총리에게 전했다"고 밝혔다.
한일독도밀약▶"독도는 앞으로 한.일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이에 반론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일본도 자기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을 박정희가 허용했다는 소리다. 아베 일본총리가 언급했듯이 일본은 이러한 독도밀약을 기반으로 철저히 준비해서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영유권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일본편 들어 준다면 독도에서 군인들 다 철수해야 한다. 그러한 명분을 박정희가 허용했다는 것이 독도밀약의 핵심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도문제를 제갈 윤대중에게 책임 전가시키려는 우리가남이가 영패세력들이야말로 함께 숨쉬고 살 가치조차 없는 민족적 양심도 없는 자들로서 징기즈칸이라면 살처분 대상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