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스포츠 경기를 일컬어 '각본없는 드라마'라고 말한다. 정해진 각본이 없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예측할 수 없는 스포츠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는 없다. 물론 각본이 없다 하더라도 예측을 전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 소치올림픽 여자 500M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상화 선수의 경우처럼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는 경우에는 결과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이상화 선수는 이미 시합 전에 '이변이 없는 한 금메달은 그녀의 것'이라는 외신의 발표가 있었을 정도로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월등한 기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 돌발적인 변수만 없다면 경기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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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고 해서 스포츠 경기의 감동이 덜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상화 선수의 경기는 보는 사람들의 손을 짜릿하게 만드는 긴장감과 함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전율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경기를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이상화 선수가 훈련을 하며 쏟아냈을 무수한 땀방울의 의미를 너무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이상화 선수 뿐인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경기에는 그 결과와 상관없이 감동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각본없는 드라마'를 볼 때면 언제나 가슴 한켠이 뭉클해 지는 것이다.
'각본없는 드라마'인 스포츠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줄 수 있는 것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경기에 '승부조작'이 있었거나, 공정하지 못한 편파 판정이 이루어졌거나, 선수들이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았다면 감동과 환희 대신에 야유와 비난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고, 극성맞은 사람들이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물병 세례도 감수해야 할 상황이 초래될 지도 모를 일이다.
서로 다른 두 대상이 경쟁 관계에 놓일 때 정정당당하고 공정하게 겨루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태도이자 자세다. 이것이 뒷받침될 때 패자는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승자에게도 승리에 대한 정당성이 부여될 수 있다. 만약 경쟁관계에 있던 한 사람이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불공정하고 부당한 승부를 벌였다면 어떻게 될까? '각본없는 드라마'가 아니라 '각본있는 드라마' 처럼 짜여진 각본대로 승부가 조작된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결과에 선뜻 승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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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무죄판결에 대해 사법부를 성토하는 국민들의 비난과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는 가운데 재판을 통해 범죄사실을 입증해야 할 검찰이 2012년 12월 새누리당 핵심 실세의원과 국정원 인사가 통화한 후, 국정원 인사가 다시 김 전 청장과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에 증거 자료로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통화내역은 국정원 직원 김하영의 댓글 사건이 언론에 최초 보도된 지난 2012년 12월 11일부터 3차 대선후보 TV토론을 앞두고 경찰이 기습적으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던 12월 16일까지 새누리당 핵심실세(권영세 당시 종합상황실장, 서상기 의원)들과 국정원 인사, 김 전 청장 사이의 커넥션을 밝히기 위한 단서이자 김 전 청장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핵심자료였다. 그런데 검찰이 이 통화내역을 증거 자료로 활용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검찰이 실수로 자료를 챙기지 못했거나 고의로 자료 제출을 하지 않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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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국군 사이버 사령부는 지난 대선 당시 사이버 심리전을 위한 별도의 심의실까지 따로 마련하고 대선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밝혀졌고, 이를 위해 간부들 지시 하달용 '작전폰'까지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대선 전에 새누리당과 연계되어 있던 윤정훈 목사가 주도한 '십알단'의 오피스텔이 발각된 바 있고, 김하영을 통해 드러난 국정원의 대선개입 정황 등을 살펴보면 이들은 모두 별도의 장소를 마련해 두고 전방위적이며 체계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정원, 국가보훈처, 군 사이버사령부, 경찰, 검찰 등 다수의 국가기관이 개입했던 지난 대선의 불법과 부정들은 아무리 은폐하고 조작하고 부인한다 하더라도 이처럼 하루가 멀다하고 관련 정황증거들이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이쯤되면 지난 대선이 주어진 각본대로 철저하게 움직인 '각본있는 부정선거'라 칭할만 하다.
스포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서 공정하고 정정당당하게 경기에 임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들에게 공감하고 감동하며 환희를 만끽한다. 그들의 땀과 열정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그들의 실패와 좌절에 함께 아파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승리에 집착한 나머지 심판을 매수하고, 승부를 조작하고, 부정과 반칙을 저지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그들이 받게 될 것은 결국 팬들의 외면과 '영구제명'이란 철퇴뿐이다. 정치라고 어찌 이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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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그리고 지난 대선의 불법과 부정에 관련되어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지난 대선과정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드러난 증거들과 새롭게 밝혀지고 있는 정황들은 저들이 주장이 거짓일 뿐이라는 '합리적 의심'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의 불법과 부정의 전모를 밝히고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만 한다. 그런 까닭으로 이 전대미문의 부정선거의 실체가 규명될 수 있을 지는 시쳇말로 며느리도 모르는 일이 되어 버렸다. 바로 이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부정선거에 관련된 자들이 날이 갈수록 후안무치하게 국민을 우롱하고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부정선거의 실체규명이 요원하다 할 지라도 꼭 그 결말을 지켜보고 싶다. 지금까지 필자가 믿어왔고 지켜왔던 원칙과 가치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미국 프로야구의 전설이었던 요기 베라의 말처럼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므로.'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