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종 언론은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추진하고 있는 새정치신당이 인재영입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취지의 기사를 여과 없이 쏟아내고 있다.
아마도 신당 창당주비위 격인 새정치추진위원회에 합류하는 인사들의 인지도가 기존 거대정당 인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그런 판단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사실 새정추에는 ‘숨은 진주’들이 있다. 적어도 필자가 개인적으로 눈여겨보았던 이계안, 김성식 전 의원만큼은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는 인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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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 전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한 2012년 1월, 필자는 그에게 복당을 요구하며 이런 칼럼을 게재한 바 있다.
“지금 한나라당은 바로 그대와 같은 진짜 쇄신파가 필요하다. 이것은 단순히 한나라당이라는 특정정당만을 위한 요구가 아니다. 우리나라 정당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김 의원의 복당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끝내 한나라당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는 항상 자당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날치기’를 강요했고, 눈치 보기에 급급한 의원들은 그냥 무기력하게 지도부의 요구에 순응했기 때문이었다. 국민들이 제 아무리 “그래서는 안 된다”고 아우성을 쳐도, 그들의 귀에는 오직 MB와 청와대, 그리고 MB 친위부대 격인 당 지도부의 소리만 들렸던 것 같다.
그런 한나라당에 남아서 이른바 ‘MB 거수기' 노릇이나 하는 걸, 그로서는 무척 견디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실제 그는 당시 “현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국정 운영이 나를 힘들게 했다. 국회를 도구화하려는 청와대를 향해 반대표를 던지고 기권 표를 던지는 것이 매우 피곤했다”면서 “청와대가 해달라고 하니까 밀어붙이기식으로 하는 것은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소속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라는 국회의원의 임무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자유인 김성식과는 맞지 않다”는 말을 남기고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말았다.
물론 그 결과는 그는 금배지를 달지 못했다. 자유인인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금배지’가 아니라 ‘양심’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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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출신의 이계안 전 의원 역시 소인배 정치인들과는 격이 다른 인사다.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출신인 그는 노무현정부 당시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스타급 최고경영자(CEO)’ 영입에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당시 386세대 의원들은 그의 영입을 최고의 성공작으로 꼽기도 했다. 그는 결국 17대 총선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그런 그가 18대 총선을 앞두고 어느날 갑자기 대선패배의 책임을 통감하며 불출마를 선언하고 말았다.
당시 그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밖에 달리 지난 대선에서 보여주신 국민의 뜻에 따르는 방법이 없다”면서 “가급적 (불출마) 뜻을 일찍 알리는 것이 제 선거구에서 제대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말했다.
당시 보좌진이 여러 차례 만류했으나 끝내 그의 결심을 꺾지 못했다고 한다.
누가 그에게 대선패배의 책임을 물은 것도 아니고, 특히 당 지도부의 일원이 아닌 그로서는 딱히 대선패배를 책임져야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스스로 대선패배 책임을 지고 탈당과 함께 총선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사실상 금배지를 스스로 버린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그보다도 더욱 놀라운 것은 이후 2011년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출마를 준비하는 그의 모습이었다.
그는 2011년 7월 22일부터 서울 각 동네와 골목을 돌아다니며 어떤 이웃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직접 살펴보기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걷고 또 걸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되면 형식적으로 지역주민들을 만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누가 곁에서 감시하거나 지켜보는 것도 아닌데, 그는 미련하게 그렇게 서울 전역을 무려 일곱 번이나 걸어 다녔다.
그의 가슴에 서울시민들을 위한 진정성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 즉 김성식, 이계안 전 의원과 같은 ‘진흙 속의 진주’와 같은 정치인들이 새정추에 있다. 따라서 신당이 인재영입에 실패했다는 지적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고하승:시민일보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