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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 전날에 재래시장을 찾았다. 민주당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였다. 그러나 이글은 그날 겪은 일이라기보다는 작년 4.24 재보선 때 막연하게 느꼈던 점이 선명하게 살아나서 쓰게 된 글이다. 두 가지 점에서다. 정치인의 웃음과 재래시장이 주는 상징성이다.
시장이 주는 의미는 상당하다. 정치인이 시장을 순방을 하는 것은 민심을 살피는 자상한 정치인, 서민들의 생활에 무관심하지 않은 정치인의 인상을 심으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선거 때가 되면 그래서 다수의 정치인들은 시장가는 일을 즐겨 필수코스로 잡는다. 노원구에서 제일 큰 재래시장은 상계 중앙시장이라고 한다. 이 지역 정치인들도 이슈가 있을 때마다 중앙시장을 단골손님처럼 찾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 해 4.24 재보선 선거에서 새누리당 허준영 선거사무실은 아예 중앙시장 입구에다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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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새누리에 당직을 가진 지인과 연이 닿아 허준영 후보의 사무실을 방문하게 됐다. 테이블에는 떡과 음료수 같은 먹을거리가 푸짐하게 놓여있었고, 선거사무실에 모여온 많은 사람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빨강색 옷을 입은 사람이 많이도 보였다. 하루아침에 대한민국이 온통 빨강 물결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잘 알다시피 2012년 대선 때부터 그 당의 대선후보는 당의 상징 색을 빨강으로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빨강색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나? 얍싸하게시리, 색깔만 바꿔서 심리적인 이득만을 취하려고 벌인 뻔뻔한 작태였다. 공안몰이 밖에 모르는 족속들이 할 줄 아는 것은 깜짝쇼나 벌여서 사람들을 현혹시키 데는 능하다. 세상을 온통 겨울공화국으로 만들어 놓은 탓에, 국민들은 옴짝달싹도 못하고 골골대고만 있다.
아무튼 그날은 마침 황우여 대표까지 총 출동하여 선거 독려를 하고 있었다. 덕분에 정치인들의 웃음가면 얼굴을 가까이서 실컷 본 날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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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때를 가리지 않고 행복하다는 듯이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았다. 이런 실력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달란트일 것이다. 사족이지만 잘 훈련된 정치인이 아니면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는 일부 연예인들만 가능하다. 황우여 대표는 그렇게 투박한 인상의 허준영 후보를 앞세워서 시장을 누비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장소에 또 한 사람이 등장하고 있었다. 정의당의 노회찬 씨다. 둘은 만나자 마자 활짝 친 진달래꽃처럼 박장대소를 하며 웃음을 주고받았다. 지금 보니 더욱 확연하게 짚인다. 노회찬 씨의 돌연한 출연은 비서와의 콤비플레이로서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 같았다고..... 그것도 모르고 "어~ 노희찬 씨가 여기서 장을 보네!"하며 진심으로 동정어린 시선을 보낸 점이다. 출마도 못한 사람이 부인은 어디다 두고 혼자 이 시간에 시장거리를 헤매고 있나?
노회찬 씨가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쪽으로 전점 다가왔다. 둘은 시장 한복판에서 자연스럽게 마주치고 있었다. 순간 시장은 이들의 조우를 반기기라도 하듯이 시끌벅적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수행원들이 두드리는 박수소리로 인해서였다. 이같이 두 정치인은 활기찬 시장 분위기를 배경 삼아 극적인 장면을 보여줬다.
노회찬 씨는 4.24 보선 직전에 의원직을 상실 판정을 받은 사람이다. 그의 부인 김지선씨는 노 전 의원을 대신하여 보선에 출사표를 던진 처지다. 그러니까 노회찬 씨는 선거법 때문에 직접 나서지는 못하고 자연스럽게 마주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간접적인 선거를 하고 있었다. 여당의 대표와 시장봉투를 든 노 전의원과의 만남! 이런 모습은 때로 신문과 방송에 크게 나는 수가 있다. "의원직 상실한 노회찬 씨 여당 대표와 시장에서 극적으로 조우하다!" “둘 사이엔 무슨 말이 오고갔을까?”라는 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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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는 잘 몰랐다. 어쩜 저렇게 점쟁이처럼 시간을 맞출 수 있지? 지금 생각하니 그야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 정도 센스도 없이 어떻게 한때는 TV토론을 주름잡던 유명 정치가였겠나. 비서는 "여당 대표 중앙시장에 떴습니다."라고 연락을 했을 테고, 노 전 의원은 지체 없이 시장에 나와서 장보기를 한 거다. 실제상황이든 연출한 장면이든 점점 거리를 좁혀오다가 멈춰서면 안성맞춤으로 황우여 대표앞이다. 둘은 악수를 나누며 파안대소를 했다. 서로 “잘 해보라!”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여유 있게 행동한다.
구정 전날에 그때의 그 시장에 갔다가 생각나는 점이 있어서 잠시 웃음에 대해서 짚어 봤다. ‘왜 정치인들은 재래시장을 찾을까?’라는 점을 좀 더 말해본다. 시장이라는 장소는 뭐니뭐니해도 정치인들이 생색내기 좋고, 사진과 방송에 비췄다 하면 서민들의 정서가 묻어나는 삶의 현장으로서 그만이다. 이런 시장이 왜 평소에는 한디부루스인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건 모순이다. 평소에는 화려하고 삐까번쩍한 백화점 체질이면서도 선거 때만 되면 재래시장하고 친숙한 사람들이 되니 그렇다. 이 부분은 정치인의 표리와 자본의 논리 밖에 설명할 수 없겠다. 그러게 부익부 빈익빈이요 양극화의 단면이랄 수있다. 일자리 문제, 반값 등록금, 비정규직문제, 보편적 복지, 남북 간 화해협력 등과 맞물려서 시장은, 균형발전과 고른 분배에 갈급해 있는 서민대중들의 삶을 대변하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아무래도 백화점은 부유층과 더 가깝다고 볼 수 있기에 말이다. 부자 우선 정책이나 기득권 우대정책에 비해서 빈곤층을 위한 정책이 제대로 실시되는 사회라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양극화가 지나치다보면 언젠가는 탈이 난다. 못 사는 후진국들이 그랬고, 독재정권이 공고한 사회일수록 그렇다. 정글의 가치관을 수정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구정 전날 시장을 둘러본 진짜 느낌을 한마디 덧붙인다. 올 설명절의 시장은 춥고 스산했다.
이후엔 서민들의 삶이 나아저서 피차 웃는 낯으로 시장을 누볐으면 좋겠다.
<박정례 : 기자 / 르포작가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