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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시간으로 어제 저녁 있었던 수퍼볼 경기에서 시애틀 시호크스 팀이 수퍼볼에서 승리,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동네가 완전히 난리도 아닙니다. 1978년 프로농구 NBA 챔피언전에서 수퍼소닉스가 우승을 차지한 이후 메이저 프로스포츠에서 이 지역 팀의 첫 우승이니 시끌벅적할 만도 합니다. 우리 우체국에서도 지난 주 토요일, 우체국 옥상에 다들 모여 시호크스 선전을 기원하는 사진촬영이니 어쩌니 하며 분위기를 띄우는 정도였으니까요.
어제, 수퍼볼 경기동안 튀긴 닭을 먹고 싶다고 지호 지원이가 우겨서 찾아갔던 세이프웨이 수퍼마켓의 델리 코너엔 이미 닭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심지어는 맥주까지도 무서운 속도로 팔려나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닌카시 상표의 맥주는 이미 다 팔리고 없었고, 그래서 로컬 맥주인 '레드 훅'의 샘플러 케이스를 집어 들었습니다. 서로 다른 맥주 네 가지가 세 병씩 들어가 있는 거지요. 그걸 사 들고 우리집보다는 더 큰 TV가 있는 노르만디 파크의 어머니 아버지 집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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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수퍼볼 경기 입장권은 1매에 최소 1천달러가 넘었다 하니, 집에서 경기 즐기는 우린 어떻게 돈을 쓰던간에 크게 절약한 거라고 위안합니다. 하하. 우린 애들 먹고 싶어하는 아이스크림이며 다른 후식까지도 해서 전 가족이 50불 안짝으로 이 경기를 즐긴 셈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애틀 팀이 제 48회 수퍼볼의 우승 팀이 된 것을 바라보는 것도 뜻깊었습니다.
경기 끝나자마자 로컬 방송을 틀었는데, 역시 시애틀 시엔 인파들이 천천히 몰려 오고 있었습니다. 다운타운 파이오니어 스퀘어에서 춤을 추고 있던 사람들은 경기 때의 분위기를 내고 싶어서 시애틀 풋볼 경기장인 센추리링크 필드 인근 맥주집에서 술들을 마시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인파들이 시애틀 도심으로 몰릴 것으로 예상되자 방송에서는 시민들에게 "지금 도시로 들어오는 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인파들이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다. 그냥 집에서 축하해라"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어디 그게 가능할까요.
오늘 성당에서 청소년 미사에 참석했는데, 말이 청소년 미사지 사실은 어른들이 더 많이 참석들을 합니다. 청년들과 어린이들이 성가를 이끄는 정도, 그리고 강론이 조금 더 짧고 이해가 쉽다는 정도지요. 그리고 일부 전례가 영어로 진행된다는 점도 있고... 어쨌든, 그 미사에 참가한 청소년들 중에서 적지 않은 수가 시애틀 시호크스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지역을 기반으로 한 프로스포츠의 순기능이라면 이렇게 커뮤니티를 하나로 묶어 주는 거겠지요.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Go Hawks!"를 외치고, 시애틀 유니폼을 입었거나 모자를 쓴 사람들이 서로 길 가면서도 웃고... 그리고 이번처럼 성적이 좋은 때는 느닷없이 인심이 후해진다는 순기능도 있습니다. 그 짠돌이 미국인들이, 더치 페이가 일상인 미국인들이 자기가 한 잔 내겠다고 하며, 오늘같은 날은 만약에 공짜 술 먹고 싶으면 술집 가면 술 사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껄껄... 즉 경기의 일시적 호황이 오지요. 시애틀 시호크스 팬들이 사주는 구단의 팬시용품들이 어마어마한 것도 그렇고, 오늘은 아마 동네 선술집들조차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수퍼볼 경기'(생각해보니 이건 중의적 의미가 담겨 버리네요. '게임'이라는 뜻의 경기, 그리고 '경제상황'으로서의 경기가 다 담긴)의 무시무시함을 느꼈을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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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게 내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도 않을 거고, 저는 이 수퍼볼 덕에 맥주 다섯 병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셨고 지금 한 병을 더 깔까 말까 하고 있고,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에 튀긴 닭에 소다에... 평소같으면 먹고 마시지 않을 것들을 아무런 죄책감없이 신나게 즐겼습니다. 파티라는 것이 일탈을 뜻한다고 한다면, 이건 충분한 일탈인 셈입니다. 며칠은 이게 이야기의 주제가 될 거고, 수요일 있을 선수 환영 개선 퍼레이드는 또한번 그 감동을 되새긴다며 동네 반짝 경기에 조그만(혹은 그보다는 조금 큰) 불씨를 던질 겁니다.
맥주를 많이 마시긴 했나 보네요. IPA는 두 병을 마셨고... 레드 에일, 윈터 에일, 그리고... 아무튼 일탈은 끝이 났고, 사람들은 현실로 돌아가게 되겠지요. 그리고 시호크스의 승리가 자신들의 삶과는 사실 아무런 사실이 없는 것임을 아는 것도, 그 반짝 경기가 딱 약빨을 내리는 순간에 알게 되겠지요. 그래도 지금 당장의 이 괜한 뿌듯함은, 비록 그 유효기간이 매우 짧은 것이라 하여도, 적어도 내일 근무복귀 때까지는 가져가보고 싶네요. 저도 동료들과 풋볼 이야길 할 수 있도록.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