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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살 서진희 씨를 만났다. 새해가 되자 사람들의 입에서 다가올 6.4 지방선거에 대한 얘기를 부쩍 화제로 삼기 시작하고 있다. 때마침 지난 19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출마경험이 있는 서진희 씨를 만나서 그때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평범하게 살던 보통시민이 출마를 결행한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별종 취급을 받을 만하다. 더구나 서진희 씨처럼 34살 미혼인 아가씨가 출마를 한 경우는 결코 평범하달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서진희 본인은 정작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대답을 했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충분히 수긍이 간다. 복지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청년과 장애인 단체에서 “우리도 선거에 나가서 목소리를 내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기성정치인이 아닌 100% 무공해 청년을 내세운다는 방침에 따라서 “우리들의 주장을 꼭 대변해 달라.”며 강권하다시피 부탁을 해오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거절하지 못하고 졸지에 출마를 하게 된 것이다.
그녀가 속한 당 이름은 처음에는 ‘제 3신당’이었다. 그런데 막상 출마를 결심하고 나서자 선거법에서 요구하는 정당의 틀을 갖추는 일은 험난했다. 그들은 조직도 힘도 없는 청년과 장애인들이었으니까. 이런 과정에서 재야운동가 장기표 씨를 만났고 친노 일파들의 전횡에 불만을 품고 민주당에서 탈당을 한 한광옥 씨와 연결됐다. 일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정통민주당’이라는 당명이 정해졌다. 서진희는 최종적으로 ‘정통민주당’이라는 간판을 달고서 대전서구 을 지역에서 국회의원의 출사표를 던지게 됐다.
국회의원 출마라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거창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피선거권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민주시민이라면 ‘민의를 대변하고 싶은 욕구’를 한 번쯤 가져볼 수 있다. 더구나 주변의 요청에 의해서 졸지에 출마한 사람에게 국회의원에 출마는 “뭐 그리 특별한 일이기만 한가요?”하고 말하는 진희 씨의 말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온 봉사의 의미이기도 헸다. 다만 선거의 한복판에서 맞부딪치게 되는 피곤하고도 찌질 한 상대방 흠집 내기와 엄청난 중상모략 따위가 사람을 지치게 하는 일임에는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전에 한 유명 신문에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난 적이 있었다. 그 기사는 국회의원들이 가진 특권이 200여개나 된다는 소문은 근거가 없는 소문이라고 전제를 하면서도 ‘1년에 세비만 1억3천 796만원 받은 만큼 일은 할까?’라는 부제까지 달아놓았다. 그나저나 국회의원이 갖는 특권이 말과 같이는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비(非) 정치인들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선출직임에는 틀림없다.
정치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2007년도 대통령선거 때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과정에서부터 지인의 부탁으로 정동영 후보의 사이버 청년위원장을 맡게 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진희 씨는 지지난 대선 때 사이버전(戰)을 치른 이야기를 시작으로 말문을 열었다. 후보에 대한 허무맹랑한 비방과 중상모략에 맞서 선거전을 치르면서 정치의 민낯을 접하게 됐고, 이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장사에는 상도의가 있고, 정치계는 정치도의가 있는 것인데 정치는 그야말로 비방과 흑색선전이 판치는 더러운 싸움터였기에 “정치라고 해서 꼭 이래야만 돼?”하고 자문하며 고민을 시작했고 조금씩 정치에 다가서게 됐다.
이와 병행해서 정동영 고문이 미국에서 돌아온 직후부터는 용산참사나 한진중공업 그리고 쌍용자동차나 재능교육학습지노동자들과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해직자들을 찾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바로 저런 모습이야. 정치가는 저래야 해!’하는 가치관을 정립하기에 이른다. 이런 진희 씨, 청년과 장애인들이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 할 때 어찌 몸 사릴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선거 때 유권자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군소정당 후보라서 그런지 누가 도와주지도 않더라고요. ㅎㅎ 민주당 예비후보일 때는 도와주겠다는 사람도 많더니, 후보에서 밀려 막상 소수당후보로 나오니까 썰물처럼 주변에 사람 하나가 없는 거예요.” 하지만 민주당 후보가 안 됐다고 해서 당초의 목적을 접을 수는 없었죠.” 어깨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선이상 다른 것은 돌아보지 말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뛰자는 각오뿐이었단다. 유권자들이 가슴에 못 박는 소리를 할지라도 당초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그저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달고서 거리를 누볐다. 자신은 이미 혼자가 아니었다. ‘사회적인 약자도 국회의원에 출마할 수 있어요!’하는 상징성과 기대치를 대변해야 했으므로 한눈 팔 새가 없는 그야말로 정치 신인의 일로매진이었다.
헌데 젊은 층에서 오히려 젊은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명함을 건네자마자 후보 앞에서 발기발기 찢어서 면전에 뿌리는 사람도 있었다. “얼마나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크면 저럴까?”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후보로 나선 대가라 여기며 그 모든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선거에 나선 보람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손을 맞잡아주면서 용기를 주는 사람도 생겼고, 쌍화차를 쥐어주며 “열심히 하면 다음에는 꼭 찍어줄게요.”하고 속내를 고백하는 사람을 보면서 ‘나부터라도 기성정치인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자!’는 오기가 생겼다. 후보 간 방송토론 일정이 다가오자 그 같은 확신은 더 깊어졌다. 지난 선거에서의 실적이 전무한 당이라는 이유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때 군소정당의 후보들에게도 TV 연설기회를 줘야한다며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의 항의와 응원이 제대로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고마워요. 유권자 여러 분!”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고, 새누리당과 민주당 후보들의 토론이 끝난 후 15분 동안 단독으로 발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주어진 15분, “장애인들에 대한 처우개선과 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해서 정부는 물론 시(市)에서도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출마의 목적에 걸 맞는 의제로 목소리를 냈던 것이다. 진심이 감동을 일으키고, 유권자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 처음에는 “네가 뭔데 정치를 해? 웃기네!”하는 노골적인 비웃음도, 면전에다 대고 “아직 함량미달인데 구의원에서부터 시작할 것이지!”라는 모멸감을 주던 사람들의 야유 성 발언도 있었지만 꼭 “완주해 달라!”며 격려를 쏟아내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아직 젊으니까 “약자들과 함께 열심히 일을 하다보면 좋은 날 있을 것이다.”라며 V자를 그리며 활짝 웃어주는 사람들 앞에서는 천군만마도 부럽지 않을 힘이 솟구쳤다.
‘실패도 자산’이다. 틀린 말이 아닌가 보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자성의 소리가 차츰 들리기 시작하니 말이다. 조급증이 워낙 심한 나라라서 그런지 과정을 무시하고 시행착오에서 얻은 자산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풍조가 만연했다. 하지만 이제는 ‘성공’이라는 결과치만 기대하는 사회에서 과정의 중요성도 인정하는 사회로 가고 있는 조짐이 보인다. 그렇다. 지난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단기필마로 치른 34살 젊디젊은 아가씨 진희 씨의 도전은 가볍지 않은 자산임에 틀림이 없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분야를 기성세대들이 꽉 틀어쥐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도무지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그러기에 정치든 창업이든 팔팔한 에너지로 도전한다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은 가치를 지닌다. 더구나 진희씨 같은 청년들이 정치 분야에 도전한 경험은 미래세대를 꾸리는데 있어서 금과옥조 같은 소중한 밑거름인 거다.
30대로서 같은 젊은이들에게 할 말은 없나요?
“불의를 거부하고, 정의를 실현하려는 순수성이 있었으면 합니다. 고물가와 어려운 가정형편과 천정부지로 치솟는 대학등록금을 보면서 솔직히 청년들이 소리 높여 외치지 않았다면 그 심각성을 알기나 했겠습니까?” 현실을 보는 눈과 의제를 짚어 논점을 이탈하지 않는 진희 씨의 말솜씨는 듣는 이로 하여금 꼼짝없이 집중을 유발시키고 있었다.
“유권자들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