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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전성시대,여성 성공시대,여성 주역시대
인권과 평등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의 급속한 신장속에 고도로 발전된 오늘날 문명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특징중의 하나는 남녀평등이다. 폭발적인 여권신장이 이루어지면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여성의 진출이 남성의 비율을 추월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우수한 두뇌,뛰어난 능력과 자질, 열정과 책임감, 성취욕을 무기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성공하는 여성들이 속출하고 있다.
슈퍼우먼,알파걸,여장부라는 칭호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여성상위시대,여성 전성시대,여성 성공시대가 도래한 것이다.구한말 개화기를 거치면서 서양 신문명이 유입되던 당시에도 소위 신여성이라고 불리는 성공한 슈퍼우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극소수의 기회를 가진 여성에 국한된 특별한 경우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러한 특별한 경우가 보편화 된것이다. 교육계의 여성 교장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고 교수로서 최고영예인 대학총장을 여성이 맡는 경우도 많다. 여성장군,최초의 여성 우주인 탄생,동계올림픽 여왕에 등극한 피겨 금메달 김연아선수,내각의 여성장관과 총리, 박순천여사의 뒤를 잇는 여성 국회의원,산업계의 여성기업인,문화예술연예계의 대중적 여성스타, 법조계의 수많은 여성 판,검사와 변호사등 사회의 각계각층에서 뛰어난 여장부들이 종횡무진 활약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여성지도자,장상 전 총리서리
사회와 국가를 위해 열정을 불사르고 있는 수많은 여성 호걸들 가운데 장상 전 국무총리 서리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장상 전 국무총리 서리는 평생을 교육계에 몸담아 오다가 뒤늦게 정치권에 입문한 여걸이다. 장상 전 총리 서리는 이화여자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한후 연세대 신학과를 거쳐 미국으로 유학,명문 예일대 신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신약학 박사학위를 취득한후 귀국하여 모교인 이화여자대학교 기독학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교직에 발을 디뎠다. 교수로 재임하는 동안 대학장과 대학원장,부총장등을 거쳐 1996년 기혼출신으로는 최초로 제 11대 총장에 올라 2002년까지 뛰어난 리더십과 경영능력으로 이화여대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대학 총장에서 물러나면서 건국이래 최초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국민의 정부의 여성국무총리 서리에 지명되었으나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지인들과 부동산 공동 구매를 위해 위장전입한 사실을 문제 삼자 총리서리직에서 물러났다. 이명박 대통령의 위장전입,탈세,위장취업,투기의혹과 이명박 정권 고소영,강부자 초대 각료와 청와대 비서진에 대한 검증과정에 불거진 의혹들에 비하면 장상 전 총리서리의 주민등록 위장전입은 그 정도가 조족지혈이었다는 점을 들어 당시 낙마를 안타까워 하는 이들이 많다.
총리서리직에서 물러난후 사회봉사활동에 전념하던 2006년 구 민주당을 이끌던 당시 한화갑대표에 의해 정치권에 입문하게 되었으며 민주당에 입당하자마자 곧바로 지방자치선거 민주당 선거 대책위원장을 맡아 맹활약을 펼쳤다.
그해 6월 15일 당내외의 집단지도체제 도입,사당화 청산 압박과 2002년 내선후보 당내 경선자금 관련 대 법원 판결후 민주당 당권 유지등 복합적인 정치 현안에 대한 대응전략의 일환으로 한화갑대표가 공동대표제를 도입하면서 공동대표에 올랐다.그후 한화갑 공동대표가 대법원 최종 유죄확정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대표직에서 물러나자 2006년 12월 22일 당대표직을 승계하여 구 민주당을 이끌었다.
당대표로서 민주당을 대과없이 성공적으로 이끌어 오던중 2007년 4월 3일 치러진 전당대회에 한화갑 전 대표등 당권파를 대표하여 당대표에 출마하였으나 박상천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당시 장상후보는 당대표가 되면 민주당 중심 정계개편,정권재창출,통합과 변화의 리더십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열정적으로 경선전을 펼쳤으나 당시 한화갑 전대표의 제왕적 당운영으로 인한 사당화 청산 바람,대표에 선출되더라도 한화갑 전 대표의 수렴청정에 의해 꼭두각시대표로 전락할 것이라는 '꼭두각시 대표론'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정치력 발휘한 장상 전 총리서리 민주당 최고위원
비록 장상 전 민주당 대표가 대표 경선전에서 한화갑 전 대표에 대한 반감,사당화 청산 바람에 대표경선에서 패배하기는 하였지만 정치권에 입문한지 일년도 안되어 당대표를 거쳐 선출직 경선에 출마한 것은 장상 전 대표의 정치력과 정치인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당대표 출마선언에 앞서 가졌던 언론과의 기자간담회에서 장상 전 대표는 정치 초년생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시 민주당내 문제와 정치 현안에 대해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었고 당운영과 정국대처 또한 공감을 사기에 충분한 설득력있는 해법을 제시하여 참석자들로부터 정치적 식견,경륜을 갖춘 정치 지도자라는 평을 들었다.
호쾌한 성품과 선이 굵은 여장부다운 면모로 큰누님,여걸이라는 세간의 인물평이 틀리지 않았으며 신학전공 교수출신이면서도 종교 편향적인 모습 또한 찾아볼 수 없는 불편부당,균형감각을 갖춘 점도 정치지도자로서 부족함이 없다는 여론이 높았다.
이처럼 교육자 출신이면서 정치 지도자로서 능력과 자질,덕목을 갖춘 장상 전 총리 서리 같은 정치인에게 국민과 국가사회를 위해 헌신봉사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가 주어진 다면 한국정치 발전을 위해 다행이 아닐까 하는 말이 나오던차에 2008년 7월 장상 전 총리 서리가 몸담고 있는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곧 2명의 지명직 최고위원을 임명하면서 여성몫 최고위원으로 물망에 올랐던 장상 전총리서리와 한명숙 전 총리 가운데 최종 장상 전 총리서리를 임명하면서 장 전 총리서리는 당 최고위원으로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큰누님 여걸로 통하는 장상 전 총리서리가 최고위원으로 임명되면서 민주당은 환상의 노장청지도부가 탄생되기에 이르렀고 국민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이북출신에 구 민주당 대표를 지낸 장상 전 총리의 가세로 구 민주당 출신 박주선,김민석 2명의 최고위원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 구 민주당계와의 화학적 융합을 통한 통합효과와 함께 학계,여성계,이북출신 관련단체 대상 외연확대에도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상 최고위원 멸사봉공위한 재보선 출마 결단
그동안 최고위원으로서 당내화합과 민주적 당운영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 장상 최고위원이 3월 24일 문국현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7월 서울 은평에서 실시되는 재보궐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자타가 공인하는 여장부 장 최고위원의 이날 출마결단은 민주당에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는 점에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장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7월 28일 은평에서 실시되는 국회의원 재선거는 집권 2년 반의 MB 정권에 대한 서울시민의 중간평가가 될 것"이라면서 "나라와 은평을 살리는 살림꾼이 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이어 장최고위원은 이번 은평 재선거는 "MB정권에 대한 '4대 심판선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구체적으로 △인터넷, 언론자유 침해로 인한 민주주의 후퇴, △ 남북관계 후퇴, △서민경제 파탄, △ 국민신뢰 파탄 등을 적시하였다.
이어 장최고위원은 이명박정권의 강부자위주 경제정책과 관련 "부자들과 대기업은 세금을 깎아주고 서민들은 오히려 부담이 늘었고, 실업자는 늘고 중산층과 중소기업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질타하고 삽질경제로 인해 " 2007년 299조원이던 국가채무가 2010년 407조원, 2012년 475조원이 된다는 예측이 나왔다"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를 지적했다.또한 "경제도 어려운데 복지비용 줄여가면서 4대강 사업 추진하고 있고 철석같이 약속한 세종시 건설을 흔들어대는 행태는, 정부 스스로 정부를 흔드는 일"이라고 꼬집기도 하였다.
대학총장출신답게 교육문제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공교육 강화와 정상화를 제1의 정책목표로 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