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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거리엔 추적추적 비가 내려 우편물을 배달하는 제 발걸음도 조금은 무거웠습니다. 점심시간, 늘 찾아들어가는 카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 얹혔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속이 조금 뜨끔 뜨끔 거렸었습니다. 왜 이렇게 속이 힘들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습니다. 오늘 아침에 좀 힘들게 일어났습니다. 어젯밤 잠들기 전, 조금 힘들게 잠이 들었던 탓입니다. 사실, 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아마 눈물 흘리며 잠들었던 사람이라면 알 겁니다. 다음날 일어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아키네이터 Akinator the Web Genius 라는 게임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한번 해 보십시오. 인터넷 스무고개라고 할 수 있는데, 막내 지원이가 이 게임을 소개시켜줬습니다. 지원이는 엊그제부터 제게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생각해 보라고 하고, 이 게임은 내게 질문을 해 옵니다. 마치 스무고개처럼. 그럼 저는 거기에 답을 해야 합니다. 이 게임은 짧은 영어로 이뤄져 있으니, 아마 집에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초중생 정도가 있는 집이라면 아이들에게 권해볼 만도 합니다. 전화기에 다운받아 플레이도 가능하고, 인터넷에선 http://en.akinator.com/ 를 방문하여 플레이 해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엔 알 만한 캐릭터들을 생각해서 이래저래 테스트 해 봤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다 추측해 내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걸 이용해서 거꾸로 지원이에게 우리 역사 같은 걸 가르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고, 이순신, 세종대왕, 유관순... 등등을 생각하고 게임을 진행하도록 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지원이는 자기 전화기를 이용해 답을 찾아내면서 "이게 누구냐"는 질문을 해 왔고, 저는 이런 저런 설명들을 하면서 우리 역사에 대해 나름 설명을 해 줬습니다.
문제는 제가 '노무현'이라는 답을 마음 속에 숨겼던 거였습니다. 프로그램의 질문은 점점 대답에 근접해 오고 있었습니다. 아키네이터 게임의 진행자 캐릭터인 '지니'는 제게 질문을 던졌고, 저를 엎드리게 해 놓고 꾹꾹 누르며 마사지를 해 주며 지니의 질문을 읽어주던 지원이의 입에서는 "Is he Korean?" 이라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 다음 질문은 "노벨상을 받았는가?" 였고, "이미 사망했는가?" 였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질문은 완전히 저를 칼로 쑤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죽음이 자연사였는가?"
지원이에게 "아니."라고 말하자 아키네이터는 답을 찾아 냈고, 지원이는 그 답을 읽었습니다. "노-무-현." 그리고 나서 저는 엎드린 채로 끄억거리며 "맞어."라고 이야기를 했고, 제 어깨는 들썩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지원이가 제 등에 손을 딱 붙이더니 제 등을 쓸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지원이도 그 이름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원아, 아빠 가서 자야겠다."
그렇게 말하고 저는 지원이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고 제 방으로 들어가 꺽꺽거리며 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오늘 일하면서 팟캐스트를 통해 들었던 뉴스들, 기가 막힙니다. 중앙대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 소식을 들으며 눈물을 흘립니다. 일하다가 앉지 마라, 장갑낀 손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지 마라, 콧노래를 부르지 마라, 학생들과 말하지 말아라... 이런 조항이 쓰여진 계약서에 서명을 하라는 고용주측의 횡포. 그리고 교학사 교과서 문제를 둘러싼 논란... 마을 한 가운데에 숙영지를 친 경찰이 밀양 주민들에게 가한 폭행들... 전혀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소식들이 들려오는 내 조국. 공공재들은 영리를 위해 기업화되는 길을 가고 있고, 극단적 양극화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공권력의 난무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정치는 정책의 싸움이 아니라 정글의 싸움으로 변질시켜 삶의 환경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저들이 '노무현이라는 가치'를 부인하며 만드는 세상의 맨 모습입니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공과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비판받아 마땅할 점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적어도 자기가 잘못했던 것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있었고, 그걸 고쳐보려는 나름으로의 노력들도 있었습니다. 그 노무현 대통령이 마이너리티라는 이유로, 주류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렇게 밟히고 결국 죽음으로 내몰렸던 것은 결국 노무현을 지지했던, 그러면서도 지켜주지 않았던 우리의 잘못이었습니다. 그가 이루려 했을 세상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가는 세상을 보면서 눈물이 흐릅니다. 아마 우리가 지금 영화 '변호인'에 열광하는 이유도, 제가 그렇게 이곳에서 변호인이 개봉되기를 기다리는 것도, 그가 이루려 했던 세상에 대한 아쉬움임과 동시에 우리의 미안함이기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속은 가라앉았습니다. 그런데 눈가는 계속 부어 있었습니다. 아마 많이 울었던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