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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7일부터 미 전역에서도 개봉 예정이었던 영화 '변호인'의 상영 계획이 돌연 보류됐습니다. 이게 보류인지, 혹은 무기 연기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영화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미주 동포들에겐 실망스런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애틀에서도 한인들이 많이 몰려 사는 페더럴웨이나 린우드 등에서 상영한다는 소식이 있어서 열 일 제쳐두고 꼭 가서 보리라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기니 허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미주 중앙일보에 따르면, 배급사인 NEW가 갑작스레 해외 개봉이 어렵겠다는 입장을 전해와서 개봉이 보류됐다는 것입니다.
또, 이 신문에 따르면 영화의 미국 상영을 추진했던 한 관계자가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영화 개봉이 2월이 될 지, 혹은 아예 못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심지어는 미주 중앙일보의 해당 기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2241507) 에서도 "이 영화에 대한 정치저 해석이 많아지자 배급사가 부담을 느꼈거나 혹은 모종의 외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고 쓰고 있습니다.
변호인보다 늦게 개봉한 다른 흥행 영화인 '용의자'는 며칠 후인 10일부터 개봉을 결정한 상태여서, 이 신문의 이같은 해석은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도대체 무엇이 변호인이라는 영화의 미국 내 개봉을 막았을까요? 외압 말고는 딱히 따로 해석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변호인'의 미국 개봉을 막아야 했을까요? 그것은 당연히 이 영화가 가지고 올 어떤 '파괴력'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변호인'이란 영화를 통해 '파괴될 수 있는' 그 무엇이란 게 어떤 것일까요?
한국 정치인들은 틈틈이 미국을 방문해 자기 세를 넓히려 하고, 이곳에서는 가끔씩 한인회 같은 교민단체들이 '국회의원 *** 초청 간담회' 따위를 엽니다. 이같은 행사가 열리면 늘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참석하죠. 제가 한국일보 시애틀 지사와 오리건 지사의 기자로 일할 당시, 이런 행사에 가는 게 솔직히 제일 시간 아깝다고 생각되는 일이었습니다. 심지어는 회기 중에 이곳에 와서 며칠 즐기다가 가신 한국 국회의원이 계셔서 그 분의 행태를 기사로 쓴 적이 있었고, 방송인 출신의 이 분은 적지 않은 망신을 당하신 적도 있었죠.
미주에 변호인 같은 영화가 상영될 경우, 틀림없이 이런 문화적 현상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가 닿게 됩니다. 마치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한인회 단위의 분향소에 사람들이 가서 절하고 역시 추모식이 있을 때마다 찾아와 눈물 흘리고 갔던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그러나 문화적 컨텐츠, 그것도 영화 같은 경우엔, 그것도 사회적으로 '신드롬'이 되고 있는 한국 영화 같은 경우엔 이곳 한인 사회에서도 비슷한 신드롬을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영화란 매체가 저들에겐 공포스러운 것이, 이 영화를 보려면 '아이들도 데리고 가고', 무엇보다 '집안 어른들도 모시고 갈 것'입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분명히 실존 인물이었던 노무현의 이야기이고, 지금까지 제대로 된 언론을 접하지 못해 노무현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나이 드신 어른들은 아마 자식들이 영화 관람 시켜준다고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따라나설 겁니다. 그리고는 '진실'을 접하게 되시겠죠.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보수적 시각'으로 무조건 '나랏일'을 생각하며 애국심에 불타올라 저 수구세력을 무조건 지지하던 사람들 중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혹은 '돌아서는' 사람들이 생기게 될 겁니다. 저들은 그걸 제일 무서워 했겠죠.
잘 만들어낸 영화 한 편은 그저 추억을 살려내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저들에겐 '괴벨스'가 하나 앉아 있습니다. 그게 유신 시대의 실세 - 요즘은 신 386세대라는 말이 유행하더군요. 30년대 출생, 80대의 나이, 60년대에 잘 나갔던 사람들이라는 뜻이던데 - 들이든, 그 아래서 알아서 기는 사람들이든 간에.
이곳에 변호인이 개봉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함께 영화를 보길 바랍니다. 도대체 영화 하나에 이렇게 쫄 수 밖에 없는 이 세력, 뭡니까? 이거. 박근혜 대통령께서 늘 말씀하시고 강조하시는 창조경제가 바로 이런 건데. 해외에 우리의 문화 컨텐츠를 수출해 경제 활성 효과를 얼마나 크게 볼 수 있는데 이 창조경제의 실현 기회를 정치논리로 박차버리고 말입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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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 변호인이 미국에서 2월 7일 개봉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소식을 퍼날라 주시고 읽어주시고 함께 목소리를 내 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소식을 퍼지게 하는 데 큰 일조를 해주신 네티즌 수사대 자로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영화의 개봉 소식을 듣고, 이것이 바로 네티즌들의 힘이라는 생각을 안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승리의 기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교학사 교과서 문제에서 보듯, 깨어 있는 네티즌들의 힘은 온라인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퍼져 나가 상식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가슴뿌듯함을 안겨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이런 믿음에 힘을 실어준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