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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과 희생 없이 어디 감동이 있던가. 지금 국민 다수는 야권을 향해 그러한 분투를 보기 원하고 있다.
피죽마저 메마른 시절, 민중의 피고름을 쥐어짠 대가로 주지육림에 날밤 새며 정신줄 놓았던 임금과 탐관오리가 있었다. 그것들 때려 잡자고, 그래서 사람 사는 세상 만들자고 천한 신분 전봉준이 죽창을 들었다.
왜놈 군홧발에 누이의 젖가슴이 유린되고, 친일 매국의 배부른 돼지떼가 동포의 영육을 노략하던 때가 있었다. 그것들 찢어 죽이자고 김구가 일어섰다. 안중근과 윤봉길이 실천했다.
그런데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아방궁 파티에 침 질질 흘리며, 그에 기생해 보겠다고 꼬리 촐랑대는 야권의 모습이 보인다. 애처롭게 주인의 고깃점을 기다리는 개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 한편 짠하기도 하다.
김대중이 어떻게 싸웠던가? 김근태가 또 어떻게 싸웠던가? 숱한 무명 용사들이 또 어떻게 헌신했던가? 그들이 일구어 온 그나마의 민주주의 앞에 정녕 부끄럽지도 않던가. 이름은 차용하면서도 내용은 없다.
그러한 야권 제 세력의 모습에서 썩은 고기를 찾아 으르렁대는 하이에나 떼가 자꾸만 연상된다. 왜인지 모를 분노가 저기 저 끝모를 밑바닥에서부터 스물스물 꿈틀거리며 올라온다.
갑오년 새해가 밝았다.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신년을 맞아 다양한 형태의 소망과 덕담이 오간다. 물론 건강을 기원하고 복을 구하는 마음은 인지상정일테다. 충분히 이해된다. 인구 사이의 대체적 정서가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볼 일이다.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국민 다수를 이롭게 할 수 있는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민생 안정, 민주주의 회복, 평화 정착 등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논하고 주장하는 이들을 향해 종북 딱지를 붙여 탄압하는 정권이 있다. 과연 이런 권력을 그냥 두고서 그게 가능한 것일까? 단언컨대 어렵다.
그래서 강조하는 바다. 새해 나눠야 할 최고의 덕담과 소망은 따로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이명박 구속, 박근혜 사퇴다. 바로 이것이 당면한 가장 크고 거룩한 정의다. 그래야 민생, 민주, 평화도 실현 가능하게 된다.
<정성태 : 시인 / 칼럼니스트>